인간의 기록은 경신이, 자연의 기록은 유지가 중요

by Lohengrin

올해는 여름의 기온으로 기록할 수 있는 모든 숫자를 다 갈아치웠다. 최저가 아니고 최고로 말이다. 한반도 역대 최악의 폭염이었다는 1994년과 2018년의 기록을 모두 제쳤다. 심지어 절기상 여름을 지나 가을로 접어들었고 추석연휴가 5일 앞으로 다가와 있음에도 폭염의 기세는 맹렬하다. 서울에서도 어제저녁 폭염경보가 내렸다. 9월 서울 폭염경보 발령은 2008년 제도시행 이후 처음 있는 일이란다. 폭염경보는 최고 체감온도 35도를 넘는 상태가 이틀이상 지속되거나 더위로 피해가 예상될 때 발령된다. 폭염경보와 더불어 열대야 현상도 같이 나타났는데, 서울에서 열대야가 가장 늦게 관측된 1935년 9월 8일 기록을 89년 만에 가볍게 경신했다. 오늘도 폭염이 예측되고 있어 기록경신은 이어질 전망이다.


"올해 여름이 가장 시원했다"라는 자조 섞인 위안으로 폭염을 견뎌내야 한다. 내년의 기온을 예측하기에는 변수가 너무 많겠지만 이 기세라면 올해 여름의 온도보다 높을 것이라는 추측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듯하다.


지금 지구촌은 기후변화의 심각한 질병 속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이미 되돌릴 수 없는 특이점을 넘어섰다는 기후 비관론이 고개를 들 정도까지 됐다.


문제는 이 기후변화의 주범이 인간이라는데 있다. 화산폭발이나 지각변동으로 한방에 기후가 바뀌기도 하지만 작금의 기후변화는 전적으로 인간이 만들어낸 현상임은 부인할 수 없는 팩트다. 기후위기를 조장하여 장사를 한다고 주장하는 부류들이 있기는 하지만, 수많은 연구 자료와 여러 데이터들이 가리키고 있는 지점은 바로 인간이다. 바로 석유와 석탄, 가스와 같은 에너지원을 꺼내씀으로써 지구 에너지의 자연스러운 순환 고리를 심각하게 왜곡시켰다.


인간의 욕심이 자초한 '제6의 생명 대멸종'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것도 죽고자 스스로 목을 매는 형국으로 말이다. 빨리 죽고 싶어 안달이 난 종족처럼 에너지원을 채굴해 쓰고 있다.


우리는 매일 '덥다'는 현상을 경험하면서도 에너지원을 바꿀 생각까지는 미처 하지 못한다. 더우니 일단 에어컨 찾고 얼음 든 아이스 음료를 마시며 위기 모면을 할 뿐이다. 그 에어컨과 얼음조각이 어떻게 작동하고 만들어졌는지 들여다보지 않았기에 심각함을 묻지 못한다.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기에 아무 생각 없이 자동차를 타고 전철을 타고 에스컬레이터를 오른다.


모든 움직임의 바탕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지금은 석유와 가스, 원자력을 이용하여 그 동력을 충당하고 있다. 지구 온도를 올리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는 에너지원으로의 전환이 시급하지만 이미 기존 에너지원에 중독된 산업은 쉽게 바꾸려고 하지 않는 관성에 빠져 있다. 심각성을 인지했다면 빨리 전환하는 것이 상책이다. 기존에 투자해 놓은 것이 아까워서 주저주저하다가는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바로 국가 지도자들의 결단이 중요한 이유이고 지도자를 잘 뽑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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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에 기후변화와 관련된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기후위기를 분석하는 데이터 회사인 영국의 Climate X가 밝힌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아 2050년 안에 사라질 유네스코 세계유산 50곳 목록"에 관한 것이다. 이 목록에 한국의 유네스코문화유산이 3군데나 포함됐다.


Climate X는 기후변화가 유네스크 세계유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기 위해 100년의 시간 범위 안에서 8가지 지구가열화 시나리오를 설정하고 폭염과 열대성 저기압, 홍수 등 16가지 기후재난 발생 가능성을 시뮬레이션했다. 그 결과 기후변화로 위험에 처할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는 인도네시아 발리의 수박(Subak) 시스템이 가장 심하게 영향을 받을 것으로 조사됐다. subak은 논에 물을 대는 계단식 관개 시스템이다. 홍수와 극단적 폭염, 가뭄의 영향을 받아 사라질 유네스크 세계유산 1위가 됐다. 2위는 호주의 카카두(Kakadu) 국립공원이 홍수와 야생화재 위험에 처할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은 홍수위험으로 조선왕릉이 36위에, 역시 홍수와 가뭄 위험으로 인해 종묘가 46위 그리고 강의 범람과 홍수위험으로 불교산사 승원이 50위를 차지해 향후 25년 정도면 사라질 운명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런데 이 목록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기후변화로 사라질 운명에 처할 대부분의 세계문화유산들이 '강의 범람'이나 '홍수'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대륙의 내륙에 위치하는 등 지리학적 위치로 가뭄의 영향을 받는 일부 세계문화유산을 제외하고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폭우 발생 등 물의 폭력에 직면할 가능성이 큼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온 세계가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이 지구기후 변화이자 지구온난화다. 그런데 우린 걱정만 하고 있는 수준은 아닌가 되돌아본다. 내가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니고, 종이컵 안 쓰고 에어컨 안 튼다고 지구온난화가 늦춰질 것 같지는 않으니 그냥 편하게 사는 게 최고라고 자위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더운 습기가 피부에 닿아 땀을 삐질삐질 흘리게 하는 자연의 경고조차 애써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구조차 에너지를 너무 쓰느라 열이 올라있는데도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구가 살아야 내가 사는 것이라는 아주 원초적 인과조차 무시하고 사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돌아보는 뜨거운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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