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가 神이다

by Lohengrin

참 간사하죠.


온도에 말입니다.


아침 출근준비하면서 어떤 옷차림을 할까 주저주저합니다. 반팔 폴로티를 꺼낼까 아니면 긴팔 셔츠를 입을까 그것도 아니면 반팔에 얇은 카디건을 걸칠까? 하의야 뭐 남자들은 그냥 바지를 입으니 크게 고민하지 않습니다. 상의와 신발에 칼라를 맞추는 정도면 됩니다. 그래서 결정한 출근 복장은 차이나 칼라의 옅은 청색 긴팔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흰색 로퍼를 신었습니다.


기상 관측이래 최고로 더웠다는 둥 초고온의 추석을 성토한 지가 5일밖에 안 지났습니다. 남부지방에는 추석 이후 하루에 400mm 가까운 폭우가 쏟아져 장마철과 태풍의 공포를 소환하기도 했습니다. 기온과 날씨가 기상청의 전매특허 멘트였던 '곳에 따라'를 떠올리게 하는 요즘입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춥다'는 단어가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휴대폰 첫 화면에 떠있는 지금 이 시각 온도를 봅니다. 영상 17도입니다. 어제는 18도였는데 1도 내려갔습니다. 낮기온은 또 살살 올라가서 영상 24 - 25를 기록할 것이라고 예보합니다. 일교차가 거의 10도 정도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일교차가 심한 환절기가 되면 걱정하던 것 중에 하나가 연세 드신 어르신들의 부고 소식입니다. 1년을 놓고 보면 부고 소식을 가장 많이 접하는 날들이 바로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오는 시기와 일교차가 심한 요즘 같은 날들, 그리고 본격적인 추위로 접어드는 늦가을인 듯합니다. 항온동물이기에 그런 듯합니다. 일정하게 체온을 유지해야 신진대사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데 급격한 기온변화가 오면 신체 기관들이 제 기능을 발휘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나마 신체건강한 젊은이들이야 금방 금방 적응하지만 나이 든 사람들은 항상 조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아파트 현관을 나서는데 골목 바람이 제법 붑니다. 서늘한 기운이 먼저 다가옵니다. 긴팔셔츠를 잘 입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철에 오릅니다. 월요일이어서 그런지 앉을자리가 없을 정도로 제법 붐빕니다. 사람들의 옷차림을 살펴봅니다. 전철 안도 벌써 긴팔옷을 입은 사람이 절반이상을 넘어 70% 정도 됩니다. 전철 천정에서 내려오는 에어컨 바람이 차갑게 느껴집니다.


전철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 사무실로 들어옵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사무실에 도착해서 컴퓨터를 부팅시킬 때 책상 위에 놓인 작은 탁상용 선풍기도 함께 전원을 켰는데 오늘은 켜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 잘 닦아서 서랍에 넣어놔야 할 듯합니다. 며칠 더 놔둬봐야 할까요? 요물 같은 게 날씨인지라 며칠의 여유는 두고 정리를 해야겠지요.


이렇게 또 한 계절을 보내고 새로운 계절을 맞습니다. 계절에 경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피부에 닿는 온도로 감각적으로 압니다.


윤회하듯 돌아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 있으니 '이 또한 지나가리'를 되뇌던 더위도 속절없이 물러갑니다. 어찌할 수 없는 태양계 물질들의 위치 좌표에 의해 만들어지는 현상이고 그 때문에 생겨난 생명이기에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닙니다.


스산해진다는 것은 체온이 내려감을 막으라는 자연의 경고를 피부 감각이 눈치채고 있는 현상입니다. 꽃보다 예쁘다는 단풍이 들고 흰 눈이 세상을 변색시키는 현상은 체온을 유지한 다음에 보이는 광경일 뿐입니다.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 아무것도 아닌 것이 생명으로 오면 처절한 생존의 싸움 현장이 됩니다. 그 치열함을 잊고 줄이고자 사랑을 하고 공감을 하고 아름다움을 찾습니다. 그 과정을 '산다'라고 합니다. 산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생명을 부여받는 존재들이 가는 길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보듬어 안고 가야 합니다. 그래야 바깥의 저 스산한 바람이 차갑지 않고 시원하게 느껴지게 됩니다.


낮에는 작렬하는 태양의 위세에 땀 흘리며 긴팔 셔츠 입고 나온 것을 한탄하며 더위를 성토하고 또 짜증 내고 있을까요? 간사(奸邪) 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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