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전 세계적으로 약 4,000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14만 명을 부상자로 만드는 무시무시한 무기가 우리 곁에 있다. 총기나 대포보다 더 잔인하게 일상을 파고드는 이 살인 무기의 정체는 역설적이게도 현대 문명의 상징인 ‘자동차’다. 국지전보다 더한 피해를 주면서도 우리는 어떻게 이 거대한 기계가 거리를 활보하도록 용인하게 되었을까?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는 도구의 경제적 가치가 그 피해를 상쇄하는 지점에서 타협해 온 과정이었다. 1865년 영국에서 시행된 ‘레드플레그법(Red Flag Act)’은 그 혼란을 여실히 보여준다. 증기 자동차의 등장에 위협을 느낀 사회는 붉은 깃발을 든 사람이 자동차 앞에서 걷게 하며 속도를 시속 3km대로 제한했다. 변화에 대한 공포를 제도라는 틀로 억누르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은 막을 수 없다. 인류는 공포를 규제로 억누르는 대신, 차선을 그리고, 신호등을 세우고, 안전벨트와 에어백을 장착하며 ‘사회적 합의’라는 안전망을 구축했다. 보험을 통해 경제적 손실을 보전하는 시스템까지 마련하며 비로소 자동차는 살인 무기에서 편리한 이동 수단으로 거듭났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인공지능(AI) 역시 정확히 이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스마트폰의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정보를 검색하던 시대의 끝에 서 있다. ‘검색의 종말’은 곧 ‘정답의 시대’를 의미한다. 소비자가 수많은 웹페이지를 헤매며 확인하는 대신, AI가 최적의 답을 제시하는 개인 비서(Agent)의 시대, 그리고 AI가 물리적 실체를 갖는 ‘피지컬 AI’의 입구에 도달한 것이다. 단 3년 만에 세상의 질서는 재편되었다.
어떤 이들은 "AI 없이도 사는데 지장 없다"라고 항변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질'의 문제다. 매일 흰쌀밥만 먹고도 살 수 있지만, 신선한 샐러드와 고기, 때로는 근사한 외식을 즐기며 미각의 즐거움을 누리는 삶과는 그 밀도가 다르다. AI를 활용한다는 것은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더 풍요로운 선택지를 갖는다는 의미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는 인간의 외로움을 통해 가능해진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우리는 외로움과 고독을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고독은 자아가 강한 사람이 스스로를 창작의 시간으로 밀어 넣는 숭고한 행위인 반면, 외로움은 자아의 결핍을 타인이나 조직을 통해 채우려는 고통스러운 갈증이다.
인간은 혼자 있으면 편안하지만 외롭고, 함께 있으면 외롭지는 않으나 불편하다. 이 오묘하고도 모순적인 심리적 지점에 AI가 들어선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감 없이 나를 완벽히 이해하고 위로해 주는 존재. 미래의 인간은 외로움을 탈출하기 위해 기계와의 관계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100조 개의 신경세포가 모여 자아와 감정이 생겨났듯, "Scale is all you need"라는 구호 아래 거대해진 AI 모델은 인간이 풀지 못한 언어와 공감의 영역을 해결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신경세포 하나는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그것이 모여 임계점을 넘는 순간 자유의지와 감정이 태어났다. AI 역시 마찬가지다. 고도의 전문적 기술이 필요한 영역은 이제 AI가 인간보다 더 쉽고 빠르게 수행한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남겨진 숙제는 무엇인가? 바로 AI에게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가치(Value)’를 제시하는 일이다.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사라진 네안데르탈인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집단지성을 발휘해 살아남은 호모 사피엔스의 길을 갈 것인가. 이제 개인의 역량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느 커뮤니티에 속해 있는가'이다. 나의 관심사와 생각이 집단지성 속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 그리고 그곳이 새로운 영감을 주는 곳인지가 생존의 척도가 된다.
AI가 만들어내는 무작위성(Randomness)을 단순한 오류가 아닌 창의성의 씨앗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커뮤니티 안에서만 우리는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다. 나를 둘러싼 AI 환경이 곧 나를 정의하고, 내 삶의 풍요를 결정하는 지표가 되는 시대. 우리는 지금 그 거대한 변곡점 위를 걷고 있다. 내 주변의 사람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둘러볼 일이다. 유유상종이고 근묵자흑이다. 그래서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하고 좋은 말, 좋은 행동을 해야 한다. 내가 그렇게 해야 하고 또 내 옆의 사람도 그러해야 한다. AI시대에 세상을 슬기롭게 사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