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10개월에 런던에서

새똥 맞고 써보는 감상록

by 박보리

임신 막달이 되고 나니 툭 불거진 배가 조롱박마냥 아래로 처지기 시작하고 임신 초기처럼 다시 낮에 잠이 수시로 오기 시작한다. 새벽 5시에 일어난 아들 때문에 새벽잠을 설친 어제 오전에는 아들 방에서 졸며 육아 보초를 서고 있었다. 간간이 졸린 눈을 뜰 때면 아들은 온갖 장난감과 인형들을 가지고 놀고 있었고, 서랍장 마지막 칸에 올라타 있었고, 새 배게보를 꺼내서 침대에 올려놓았고, 음악이 흘러나오는 러닝테이블은 내가 누워있던 침대 앞에 두고 이 음악 저음악 틀다가 결국에는 뒤집어 놓았다. 아마도 엄마 깨우기에 지친 순간 뒤집어버린 것 같다. 그 순간은 몸을 일으켜 쪽쪽이를 씻어다가 입에 물려줬다. 그랬더니 옷장 앞에 가지런히 잠 잘 준비를 마친 인형들 옆에 가서 드러눕더니 잠이 코코 든다. 그 모습을 가는 눈을 떠 확인하고는 아이를 침대로 옮길 생각도 못 하고 나도 눈을 스르륵 감고 잠이 들었다.


임신 10개월 차 막달, 내가 거의 1년간을 뱃속에 생명을 품은 것이다. 첫째를 제왕절개를 한 나는 의사 선생님이 셋 이상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음을 확인했었더랬다. 제왕절개로 출산하면 다음번에도 제왕절개를 해야 안전하고 세 번 이상의 임신과 수술은 권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내 임신은 내 생에 마지막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첫 아이를 간절히 기다렸던 기억 때문에 둘째가 갑자기 그것도 영국에 이사하자마자 생겼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생뚱맞게도 어떤 배우의 사촌이 태어난 곳이 런던이라 이름이 런던이 되었다고 들은 적이 있었는데, 속으로 나도 '런던이'를 낳겠네라고 생각했었다. 그럼 첫째는 '홍콩이' 혹은 우리가 살던 '똥로완'이라지.


주변에 임신한 한 엄마는 아예 6개월 쯔음부터 큰 아이와 한국을 가서 둘째를 낳는다고 하였다. 임신 후 유난히 한식만 먹는 나는 너무너무 부러웠지만 최소 3개월은 한국에 있다가 와야 하는데 자신이 없었다. 남편도 마음에 걸리고 아들도 마음에 걸리고 딱히 반가워하지 않을 친정부모님도 걸리고 장거리 비행도 걸리고 나에게 한국 출산이라는 건 해당사항 없음에 체크. 그렇담 이 낯선 도시 런던에서 아이를 잘 낳을 수 있을까, 산후조리를 할 수 있을까.


오만가지 생각 속에서 산부인과 전문의를 찾았고 마지막 달은 매주 그녀를 보아야 한다. 그런데 그녀는 항상 피곤해 보인다. 최근에는 볼 때마다 내가 의사의 컨디션이 괜찮은지 물었다. 그녀는 만성피로라 하였고 애한테 감기가 옮았다고 하였다. 일찍이 일반의인 남편 동생에게 내 담당 의사 이름을 줘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특별할 게 없다. 일단 영국에서도 유명한 프라이빗 산부인과에서 일하는 컨설턴트이므로 믿는 수밖에. 의심이 최고치를 찍었을 때에는 이 병원 원장의 딸이라서 이름을 올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여하튼 이제 예정일을 한 달 앞둔 시점에 병원과 담당의를 바꾸기란 무리수다. 남편 말처럼 바쁘다는 것은 그만큼 능력이 있다는 반증이라고 믿는 수밖에.


그녀가 저번 주 다시 한번 강조했다. VBAC, 제왕절개 출산 후 자연분만으로 다음 아이를 낳을 때는 200명당 1의 자궁파열의 위험이 있다. 의사는 마치 그 위험성을 임산부에게 설명했음을 증명하듯 꾹꾹 내 기록지에 눌러 적었다. 0.5%의 자궁파열의 가능성. 자궁파열은 출산의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에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최악의 경우에는 산모와 아이에게도 위험한 선택. 첫 아이는 배를 인위적으로 갈랐기 때문에 둘째라도 처음 출산하는 것과 같다. 즉 둘째라고 해도 첫 출산과 같아 무엇이 이슬인지 무엇이 진통 일지 전혀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응급 제왕절개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은 물론이다.




첫째와 같은 산후조리사를 불렀다. 정해진 날짜에 온 첫째는 거의 모든 일정이 달력에 차곡차곡 쌓였다. 어느 어느 날 산후조리사가 한국에서 오고 친정부모님은 이 날 한국에서 오시고 시댁 부모님은 이때 영국에서 오시고 가사도우미가 필리핀에서 모든 비자 수속을 마치고 언제부터 일을 시작하고 남편이 이때 출산휴가를 받고 등등등. 둘째를 자연분만하려고 하니 언제 애가 나올지 모르겠다는 이 막연함. 달력에 뭐 하나 깨끗하게 계획하지 못하겠다. 이 와중에 남편은 담석이 왔었다. 이 양반이 언제 다시 방바닥에 누워 배 아프다고 할지 모르는 불안함 추가.


혹시나 제왕절개로 갈 경우 최대 5일 병원에 있을 터인데 그동안 시어머니에게 집에 오셔서 손주를 좀 봐달라고 했다. 안 그래도 빼곡할 12월의 시엄마는 날짜를 달라고 넌지시 이메일로 묻는다. 애가 언제 나올지 모르는데.. 내가 병원에 간 후 오면 좋겠는데.. 괜히 오시라고 했나 싶었다. 남편에게는 항상 내 몫이었던 아들 잠재우기 훈련도 시킨다. 첫날은 무려 4시간이 걸렸다. 레드썬 하면 바로 잠드는 사람이 애를 다독여가며 재우려고 하니 요령이 없다. 아이는 아빠는 놀아주는 사람으로 인식해서 아빠랑 있으면 눈을 비벼가며 잠을 안 잔다. 진통이 오면 볼까 해서 4시간 동안 깜깜한 애 방에서 고군분투하던 남편의 모습을 베이비 모니터로 몇 장 찍어놓았다.


첫째 방을 작은 방으로 옮기려고 이것저것 주문한 아이 가구와 소품, 나의 수유 의자 등이 택배로 속속 도착하고 있다. 하나라도 놓쳐서 일정에 차질이 생길까 집에서 꼼짝 않고 받고 있다. 금요일까지 몇 개 더 오고 나면 주말에 첫째 아이 방을 바꾸고 적응시켜야 한다. 아직 애가 없는 몸이 가벼운 친구의 도움으로 한국 마트에서 이것저것 필요한 것도 주문했다. 눈물을 머금고 초마 짬뽕, 홍시, 고구마, 딸기잼 롤빵, 도토리묵을 뺐다. 택배비까지 나오면 한국 다녀오는 왕복항공권 가격이 나올 것 같다. 날씨가 선선해졌기 때문에 과감하게 식품들을 주문해본다. 영국 겨울 출산과 산후조리를 위해 수유복과 자연분만 시 유용하게 쓰일 회음부 방석, 손목 발목 보호대 등도 넣었다. 실내여도 쌀쌀할지 모르는 영국 병원에서의 출산을 위해 뜨근하게 올릴 어깨 팩도 한국에서 주문하고, 도톰한 겨울용 나이트가운도 집 앞 자라홈에서 사 넣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기 섬유 세척제, 젖병소독기, 젖병 꼭지, 모빌, 아기띠, 가습기, 첫째 방에 깔 러그와 벽 스티커, 소형 청소기 등을 주문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 유축기, 막 입을 아기 옷, 아기 방 플레이 매트, 베이비 모니터, 스윙체어를 더 사야 한다. 첫째 방을 뺀 후에는 둘째가 쓸 물건들을 싹 빨아놔야 한다. 남편 건강 관리도 시켜야 하고 나의 유일무이한 보호자로서 혹시 모를 응급상황을 대비하여 VBAC 공부도 시켜놔야 한다. 무엇보다 내 마음이 내 몸이 준비가 되어야 한다. 이제 한 달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불만스러웠던 오르락내리락 계단 많은 영국집이 도움이 될까. 이렇게 마음의 소리를 글로 적고 나니 더 떨린다. 모호했던 불안함에 기대와 설렘이 더해지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고전 동요의 역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