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동요의 역습

핑크퐁과 베이비 샤크

by 박보리

아이 둘을 차분히 키우고 있는 언니가 페퍼 피그라는 유아용 영국 만화를 추천한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아이가 돌 지났을 쯤이라 유아용 영상매체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때였다. 좀 크면 참고해야지 하고 넘긴 그 말. 마침 영국으로 이사하게 되었고 페파피그는 서점에서도 티비에서도 조카네를 만나서도 유치원에서도 쉽게 만나는 캐릭터였다. 아이는 유치원에 갈 때 페파나 페파 동생 조지 인형을 손에 꼬옥 들고 갔다. 아빠, 엄마, 페파(누나), 조지(남동생)로 구성된 이 돼지 가족은 할머니, 할아버지, 친구들, 주변 이웃들로 구성된 다른 동물 캐릭터들과 일상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다룬다. 페파네 돼지 가족을 주변으로 다양한 동물들이 사는 마을에서 일어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다루는데 아이들은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영국 문화를 배우게 된다.


페파 피그의 좋은 점은 어떤 가치판단이 최소로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부정적인 행동을 묘사하여 어떻게 권선징악적 결론이 나는지 혹은 갈등이 해소되는지의 서사 구조가 아니다. 그것이 페파피그의 매력이다. 굳이 나쁜 예를 들어가며 유아용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교훈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가족과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다양한 일상의 표현을 통해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의 주변에 어떤 일들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는지를 묘사한다. 아빠 피그는 좀 허술하지만 아이들과 같은 눈높이로 참 잘 놀아주고, 엄마 피그는 중요할 때 해결책을 내놓고 은근히 자존심도 세다. 2004년 첫 선을 보인만큼 메킨토시급 데스크 컴퓨터가 컴퓨터로 나오는 등 한국의 IT 발달 속도에는 훨씬 못 미치는 옛날 아이템들이 대거 나온다. 그렇지만 오래된 것이 훨씬 오래가는 영국이니까, 핸드폰 신호 안 잡히는 곳이 더 많은 영국이니까 페파 피그는 아직도 잘 나간다.

peppa pig-computer.jpg 페파 피그에 나오는 컴퓨터 그리고 컴퓨터 게임


아이가 만 2살이 되고 밥 먹을 때 보여주는 티비를 끊기로 했다. 그리고 멜론에서 동요를 찾아서 틀어주는데 가사들이 참 마음에 걸린다. 아빠곰은 뚱뚱하고 엄마곰은 날씬하단다.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이 불편한 느낌은 뭘까. 엄마 개구리가 노래를 한단다. 꽥꽥꽥 꽥꽥꽥! 아빠 개구리는 골골골 골골골 노래를 한단다. 엄마 목소리가 굉장히 거슬리는 듯한 이 느낌은 뭘까. 아빠는 왜 골골대지?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엄마는!!!! 네 옆에서 하루 종일 일한 이 엄마는?? 난 이 노래들을 페파 대신 틀어놓고 부르기 참 불편하였고 아무 생각 없이 베이비샤크를 검색해보았다. 한국에 아는 동생이 보내준 노래책이었는데 최근에 애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터였다. 비슷비슷한 동요를 현란한 영상으로 현혹시킨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노래가 은근히 진부하지 않고 제법 열린 결말을 갖고 있어서 맘에 들었다.


한국어 버전은 역시 엄마 상어는 어여쁘고 아빠 상어는 힘이 센이라고 하지만. 영어 버전은 엄마상어도 아빠상어도 뚜루뚜루뚜-다. 영어로 옮기면서 의도하였든 아니하였든 아주 신의 한 수를 둔 것이다. 뚜루뚜루뚜- 무어라고 정의하지 않았다. 부르는 사람 마음에 따라 뚜루뚜루뚜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아빠가 예쁠 수도 있고 엄마가 힘이 셀 수도 있는 것이다. 나도 신나서 같이 뚜루뚜루뚜가 절로 나온다. 이 열린 결말이 뭐라고.


물론 모든 영국 애니메니션을 칭찬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또 하나 자주 보는 걸로 피터 래빗이 있는데 이는 시골생활을 동경하는 아빠의 취향과 색감과 영상이 부드럽고 이뻐서 좋아한 엄마의 취향으로 틀어준 만화다. 이 만화에는 캐릭터별로 변하지 않는 부정적 혹은 긍정적인 절대적인 정체성과 성격이 부여되어 있다. 예를 들면 늑대-미스터 토드-는 나쁜 동물, 토끼-피터 래빗-는 포기를 모르는 선한 동물. 그림은 참 예쁘지만 동물별로 고정관념을 심어주는 것 같아 맘에 걸린다. 이런 고정관념은 무의식 중에 인종차별로 뻗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면 백인은 선하고 우월하다 이런 식의. 자연은 약육강식과 먹이사슬을 통한 순환적인 생태계를 갖고 있고 늑대는 그중에 상위 체인에 속해서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고, 인간이 사는 사회는 좀 다르라는 것을 아이가 언제쯤 알게 될까. 주인공인 토끼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데 때로는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도 있는 법이고 항상 이기는 삶만을 살 수는 없으며 실수를 통해 배울 수도 있는데 너무하다는 생각도.

Peter-Rabbit-Silvergate-Media.jpg 색감과 그림이 예쁜 피터래빗


그렇게 70% 페파피그 30% 피터래빗의 티비지분을 갖고 있던 우리 집 꼬마는 2살이 되고 베이비샤크와 그 외 핑크퐁 노래와 함께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율동도 해가면서 잘 따라와 주길래 기특해하고 있던 중 어느 날이었다. 유치원에 픽업하러 갔는데 베이비샤크가 틀어져있고 아이들이 다 춤을 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언젠가도 열심히 춤을 추고 있었는데 아마 그때도 베이비 샤크였으리라. 단지 엄마가 인지를 못 했을 뿐. 마침 유치원에서도 율동과 함께 틀어주고 집에서도 틀어주고 하는 행운이 겹쳐서 티비를 잘 끊은 것이었구나. 깊은 깨달음을 얻으며 선생님에게 이거 한국 꺼야라고 했는데 아니란다. 이거 유튜브에 핑크퐁 치면 나온단다. 검색족답게 인터넷 검색해서 확인 후 다시 한번 말해주려 했으나 역시나 유치원 안에서 신호가 잘 안 잡힌다. 하아. 반갑지만 핑크퐁 한국 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던 그 순간! 너무나 당당하게 한국꺼일리가 없다는 듯 유튜브에 검색하면 너도 찾을 수 있다던 선생님!


집에 가서 검색을 더 하고 스타트업 컴퍼니인 스마트스터디가 핑크퐁을 만들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희열을 느꼈다. 것도 실리콘 밸리에서나 들릴 법한 스타트업 기업이라니. 교육, 인터넷(유튜브), 애니메이션 어찌 보면 이 뻔하고 진부한 조합이 한국에서 스타트업 기업으로 시작해서 영국 유치원에도 닿았구나.




2003년에 시작해서 해외에서도 성공적이었던 뽀로로가 지금도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지금도 같은 인기를 누리는지 물어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아마 아닐 것이다. 핑크퐁과 베이비샤크의 다양한 동요를 듣고는 영국인 남편이 노래별로 영국 동요라며 영어로 뽑아낸다. 해외 동요들을 포함하여 다양한 동요를 수집하여 편곡하고 애니메이션을 입힌 노력이 보인다. 고전 동요계의 모던 K-POP느낌이랄까, 방탄동요단이랄까. 새로운 해석과 예쁜 애니메이션으로 오래되어 화석이 되어버린 듯한 가사를 갖고 있는 다양한 동요들을 재탄생시킨 핑크퐁, 베이비샤크의 성공을 영국에서도 진심으로 축하한다. 영국에서 2004년 첫 선을 보여 2018년에 뚱뚱한 컴퓨터가 아직도 나오는데도 먹히는 페파피그처럼, 핑크퐁-베이비샤크-의 롱런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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