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ALY (토스카나)
우리가 토스카나의 몬테칠로에 도착한 시기는 9월 중순. 토스카나에서는 추수를 마친 시기였다. 이 지역은 평지는 찾아보기 힘들고, 능선 옆에 능선이, 그리고 능선 뒤에 능선이 겹겹이 보이는 참으로 평화로운 풍경이다. 이 언덕 위에 여유롭게 집들이 한 채씩 보인다. 그리고 토스카나의 특색인 핫도그 모양으로 부드럽게 길쭉한 모양의 나무들이 일렬도 곳곳에 서있어 이국적인 풍경을 만든다.
추수를 끝낸 언덕들은 볏짚 색으로 물들어져 있고, 같은 언덕에 자리 잡은 추수 전인 포도밭에는 보라색으로 익어가는 포도들이 보인다. 보통은 8월 정도에 비가 내려 다시 초록으로 뒤덮인 언덕을 볼 수 있다고 했으나 아직 비가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가 묵을 숙소는, 이 중 하나의 언덕에 자리 잡은 벽돌로 지은 집이다. 도로를 벗어나 울퉁불퉁한 오프로드로 차를 운전해 언덕 위를 올라가니 이 집의 주인이 우리를 맞아 준다.
이 집의 주인인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커플은 둘 다 로마 출신으로 이곳에 정착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고 한다. 농사지은 밀로 파스타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일이라 오로지 우리만 숙소에 머무를 예정이라 했다. 이 언덕 하나와 모든 풍경이 남편과 나 둘이서만 즐기게 되었다.
볏짚 색 언덕의 능선 위로, 분홍빛에서 살구 빛으로 물든 노을 지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니 너무나 온몸으로 평온함이 스며든다. 이들이 추천해준 레스토랑은 차로 약 10분 거리에 있었다. 유럽 특유의 오렌지 빛 따스한 가로수길에 코블 스톤의 거리에 있는 레스토랑이다. 입구로 들어가니 테이블들이 놓여 있고, 웨이터를 따라가니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던 테라스가 펼쳐진다.
애피타이저로 포르치니 버섯 샐러드를 시켰다. 이탈리아 곳곳에서 나는 이 버섯은 이탈리아 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다. 트러플만큼 그 고유의 향이 강한데, 리조토 그리고 피자 위에 재료로도 사용된다. 그리고 생으로 세로로 잘게 찢어 샐러드로도 먹는다
난 이 버섯을 꽤 좋아한다. 한국에서는 말린 포르치니 버섯을 파는 걸 구할 수 있는데 이탈리아에 비해 가격이 꽤 비싸 자주 사 먹지는 못했다. 그런데 생버섯으로 만든 샐러드를 파니 그냥 지나칠 수가 있나. 올리브유와 소금만 심플하게 두른 거 같은데, 올리브유와 포르치니 버섯이 내는 맛과 향과의 조화가 어마어마하다.
내가 서울에서 먹던 그 엑스트라 버진 오일의 올리브 오일과는 향의 차이와 맛의 깊이가 차원이 다르다. 슈퍼에서 파는 된장과 집에서 만든 조선 된장의 차이만큼의 차이다. 씁쓸하면서도 그 향이 입안 가득 서서피 퍼지는데, 굉장하다. 어디서 살 수 있는 라벨도 살펴보는데 유통기한 날짜가 손으로 표기되어 있다. 왠지 이 지역에서만 판매되고 전국구로는 판매가 되지 않을 거 같다. 듣기 거북할 수 있겠으나 포르치니 샐러드를 먹고 트림을 하니 포르치니 향이 난다. 향긋한 트림이라니.. 큭.. 자주 먹고 싶다.
남편 말로는 한국에도 뒤져보면 분명 이 포르치니 버섯이 자라고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자기가 2년간 살았던 스페인에서는 뒷산에서 포르치니가 곳곳에 자라고 있었는데, 스페인 사람들은 이 버섯을 먹지 않아 여기저기 쉽게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다. 포르치니 버섯이 한국에서 자라고 있는지.
8년 전 남편과 찾았던 탄자니아의 잔지바르 섬으로 여행 갔을 때의 일이다. 썰물 때가 오니, 해수욕장에 성게가, 수천 개의 성게가 널려 있었다. 남편과 나는 믿을 수가 없어 바구니와 집게를 빌려 그중 탐스럽게 생긴 성게를 한가득 담아왔다. 보라색 성게 검은색 성게 손바닥만 한 성게. 어떻게 여는지는 몰랐지만 힘들게 힘들게 성게를 열었는데, 노란 살을 기대했건만. 심해에서 자라는 성게가 아니어서 그런지 모래와 미역만 가득했다. 그렇게 5개 정도를 오픈하고 포기했다. 이곳 사람들이 안 먹는 이유가 있었던 건가. 이곳의 성게들은 섭식하는 게 달라서 먹을 게 없는 건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딴 얘기로 빠졌다.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와서, 웨이터에게 와인을 추천해 달라고 하니, 60 유로의 와인을 추천해주었다. 남편이 노노. 너무 비싸. 좋은 가격대에 맛있는 와인으로 골라줘.라고 하니 14유로의 이 지역 와인을 추천해 준다. 이탈리아 와인의 장점은 따자마자 마셔도 꽤 맛있다는 점이다.
웬걸.. 생각보다 묵직하고 체리향으로 시작해 오크향으로 마무리되는 너무나 멋진 와인이었다. 남편이 꽤 만족해했다. 이탈리아에선 이렇게 좋은 가격으로 훌륭한 와인을 마실 수 있다고, 자랑스러워하며 말한다. Leone Rosso 빨간 사자라는 이름과 와인 에티켓 라벨의 디자인에서 느껴지는 인상은 살짝 귀여움이 느껴져 큰 기대를 안 했는데, 입맛에 맞아 와인 항명을 금새 다 해치웠다.
세컨드 디쉬로는 ‘비스테카 피오렌티나’ (스테이크)를 시켰다. 우후.. 미디엄으로 시킨 고기는 겉에만 살짝 구워져 있고 피는 흐르지 않지만 선홍빛의 날것의 느낌이 나는 스테이크다. 잡내 없이 촉촉하고 지방이 없는데도 너무나 부드럽다. 나의 어휘로는 이렇게만 말할 수 있는 것이 미안할 정도의 맛이다.
워낙 유명하기도 하지만, 토스카나 지방에 들린다면 비스테카 피오렌티나 스테이크를 먹으며 몬탈치노의 레드 와인을 곁들이길 추천한다. 물론 실력있는 레스토랑에서 먹어야 그 맛도 훌륭하다.
나의 여행 팁이라면, 그 지역 로컬들에게 ‘당신이 좋아하는 레스토랑을 알려 줄 수 있나요?’ 혹은 ‘괜찮은 레스토랑 추천해주세요’ 물어보는 것이 좋은 가격에 뛰어난 음식을 서빙하는 레스토랑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