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에 살며 아쉬운 것 하나.
높은 일조량 때문인지, 포르투갈의 과일들은 참으로 맛있다. 그냥 맛있는 게 아니라 싸고 맛있다. 포르투갈의 남쪽 알가베에서 재배하는 오렌지는 그냥 먹어도 달콤한 과즙이 가득해 맛있고, 주스로 갈아먹어도 너무 맛있다. 그래서 그런지 리스본의 카페 메뉴엔 빠짐없이 오렌지 주스가 등장한다. 슈퍼마켓에도, 심지어 스타벅스에도 오렌지 착즙 기계가 있을 정도다.
6월 말에서 7월이 되면 체리의 계절이 돌아온다. 푼다오 (Fundão) 지역에서 재배하는 체리가 특히 유명한데, 요염하게 검붉게 익은 체리 한 박스가 10유로 정도에 팔고 있다. 포르투갈 지인에게 배운 건데, 체리를 먹기 전에 얼음 조각들을 함께 두면, 과육이 차가워지면서 체리 맛이 좋아진다고 한다. 현지인의 조언을 귀담아듣고 배운 대로 체리를 한번 씻어 내고, 얼음 조각들을 소쿠리에 체리와 함께 담아 두고 먹었다. 기분 탓인지 정말 당도가 높아진 것인지, 먹을 때마다 체리가 시원하면서도 새콤 달콤하니 맛이 좋았다.
두어 달 전 포르투(Porto)로 친구들과 우정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포르투의 과일 가게 한편에 납작 복숭아를 팔고 있었다. 보통 제철 과일들은 여러 박스에 그득그득 풍성하게 쌓아 올려 파는데, 겨우 한 귀퉁이에 납작 봉숭아가 몇 개 놓여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 복숭아 철은 아님을 짐작케 했다. 아무리 과일이 맛있는 포르투갈이지만, 제철이 아닌 과일을 먹으면 실패를 할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새삼 깨달았다.
과일가게 한편에 있던 연두 빛이 살짝살짝 도는 납작 복숭아를 본 친구 지혜는, '나 납작 봉숭아 한번 먹어 볼래!' 라며 주문을 했다. 유럽으로 여행 간 이들이 인스타그램에 그리도 납작 복숭아를 찍어 올린다며, 맛이 궁금하다고 했다. 과일가게 아주머니한테 맛있는 걸 골라달라고 했더니, 과일 가게 아줌마는 그중에서 성심성의 것 맛있어 보이는 걸 골라 주는 듯했다. 하지만 아직 제철이 아니라 그런지, 납작 봉숭아는 맛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과육은 단단하였고, 과즙에는 단맛은 빠진 아삭아삭한 복숭아였다. 이를 맛본 지혜는 '납작 복숭아도, 뭐 그냥 복숭아 맛이네.' 라 한마디 던졌다. 그럼 그렇지, 사진 올린 이들이 별맛 아닌 것을 유난스럽게 SNS에 올렸다는 말을 직접 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말로 들렸다.
하지만 바로 한 달 반 뒤, 7월 말의 납작 복숭아는 그 맛이 180도로 바뀌었다. 리스본에 놀러 온 나의 여동생도 납작 복숭아를 보더니, 본인도 한번 먹어 보겠다며 맛있어 보이는 놈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이 모습은 흡사 어디서 본 것을 재현하는 듯한 느낌인데, 바로 한 달 전 지혜의 모습과 겹쳐져 보였다.
5개를 골라 담았는데 가격은 2유로가 채 안됐다. 저번과 달랐던 점은 이번 납작 복숭아는 꿀 맛이었다는 거다. 그냥 맛있다는 표현으로 꿀맛이라고 한 게 아니라, 너무 잘 익은 납작 복숭아 맛은 정말 맛이 꿀과 비슷했다. 찐득하게 달콤한 맛. 한입 베었을 때 아삭아삭한 게 아니라, 그렇다고 물렁한 것도 아닌 시럽을 머금은 것 같은 그런 부드러운 복숭아 맛이었다.
동생은 포르투갈의 우리 집에서 지낸 3주 동안 복숭아가 떨어지지 않게 매번 장을 보고, 저녁을 먹고 후식으로 납작 복숭아를 챙겨 먹었다. 복숭아 껍질을 벗기는 건 다소 귀찮은 일이지만, 심지어 납작하고 울퉁불틍한 표면을 깎아내면, 양이 그리 많이 나오지도 않는다. 하지만 복숭아 색깔을 닮은 리스본의 여름날의 노을을 보며 (정말 복숭아 색깔로 물이 든다.) 먹는 납작 복숭아는 하루를 달콤하게 마무리해주었다. 매번 사다 보니 과일마다 매번 맛은 조금씩 다르지만, '에이 ~~ 그냥 복숭아 맛이네'가 아닌, '아 ~~ 이래서 다들 먹는구나' 하는 달콤한 맛이었다.
동생이 처음 리스본에 도착했을 때엔, 함께 할 시간이 3주나 되니 엄청난 시간을 함께 할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 3주는 야속하게 쏜살같이 지나가고 동생은 벌써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난 납작 복숭아를 보면 동생이 떠 오른다. 한국으로 돌아간 동생이 평소에 장을 보던 어플에서, 납작 복숭아 5개가 2만 3천 원에 팔고 있다고 연락이 왔다. 항공으로 운송해서 그런가. 비싸긴 비싸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가격 차이가 거의 10배나 되니 말이다.
리스본에 머물며 저녁 식사마다 복숭아를 깎아 주던 동생은 한국으로 돌아가 이제 없지만, 함께 바라보던, 복숭아를 닮은 노을은 매일 저녁 하늘을 물들인다. 동생이 떠난 빈자리가 허전함과 그리움으로 찾아 오지만, 그래도 예쁘게 물든 하늘을 보며 느끼는 그리움이란, 술에 물 타듯 그리움도 조금은 그 아름다움으로 희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