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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쪼 Mar 08. 2018

지나친 성실함과 자존감은 반비례 관계

아주 긴 터널에 갇혀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시기가 있다. 뭔가가 잘 풀리지 않거나 낮은 자존감 때문에 현재의 내가 너무나 작아 보일 때.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면 눈의 고장이 펼쳐져야 하는데 낮은 자존감이 만들어놓은 긴 터널을 빠져나와봤자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출근길 아니면 내 방 천장뿐이다. 열심히 열심히 달려봤자 내 세계는 긴 터널 아니면 우중충한 출근길밖에 없다는 것이 때로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괴롭다. 그럴 때 엉엉 울기라도 하면 좀 후련하건만 소피 할머니(<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시라) 말처럼 나이를 먹으면 울 일도 별로 없다.



이럴 때 나는 <기분이 좋아지는 노트>를 펼친다. 책이나 영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좋은 문장을 적어두는 노트인데, 나는 꿀을 모으는 꿀벌마냥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노트를 부지런히 업데이트해둔다. 노트에는 이런 글들이 적혀 있다.



만약 그 사람의 장점이 없다면 그때는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안 좋은 일에서 빨리 손을 뗄수록 더 빨리 좋은 일이 생기는 거야. 희망은 그때 다시 가져도 돼.


오늘은 웃어봐. 기분이 어떤가는 중요한 게 아니란다. 중요한 건 밖으로 보이는 모습이야. 나쁜 기분을 밟고 지나갈 수 있도록 발밑으로 내려보내. 그게 익숙해지면 파티에도 초대되고 남자들도 널 좋아하고 자연히 행복도 따라올 거야.


왜 그렇게 중요한 일을 이 나이가 되도록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느냐고 힐난할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어려울 것 같은 문제는 마감이 임박할 때까지 미루고 싶은 게 인간의 솔직한 심정이 아니냐고 할 수밖에…….


그래. 물론 인생은 고통과 고난으로 가득해. 하지만 요령이 있으면 순간에 주어진 몇몇 완벽한 경험들을 즐길 수 있어. 


우리가 실제로 겪는 고통이란 상상속의 그것보다 늘 하찮을 정도의 무게를 지니고 있다.


잠은 우리의 고단하고 아픈 하루를 단절시켜주는 아주 효과적인 약이다.




몇 년 전 이 노트를 처음 만들었을 때가 기억난다. 메인 업무가 굉장히 많았는데 시간도 없었던 데다 페이퍼 워크가 막 밀려오던 시즌이었고, 설상가상으로 개인사까지 겹쳐 어느 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아주 좁은 벽 사이에 끼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며칠 내내 머리가 무겁고, 역류성 식도염과 함께 무언가가 찌르는 것처럼 귀 안쪽이 따가워 견딜 수가 없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평소처럼 알콜로 휘발시켜버릴 문제도 아니었고, 주변인들에게 할 만한 이야기도 아니라 호소할 곳도 없었다. 어떻게 하면 적어도 이 물리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를 계속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웃지 마시라, 컴퓨터에서 ‘노엘 겔러거 어록’을 검색해 노트에 마구 적어내려갔다. 웃기려고 한 짓이 아니다. 정말 목이 메어오는 상황에서 살려고 한 행위였다. 한 사이트의 어록을 다 베껴 쓰면 다른 사이트에 들어가 새로운 어록을 찾았다. 새로운 글을 찾아낼 수 없을 때까지 찾고 또 찾아 계속 써내려갔다.



“앉아서 ‘왜 나한테 이런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 20년 동안 딱 한 번 일어난 일이잖아.”


“자신에게 영향을 준 인물로 나를 꼽은 이 자리의 뮤지션들. 고맙긴, X발 별말씀을. 별거 아니었어.”


“우리 밴드는 예전에 끝났어. 돈 때문에 하는 거지.”


“너희 <Live Forever> 듣고 싶어?” “YEAH!" "그럼 1집 3번 트랙 사서 들어!”


“미안한데, X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나보고 뭐 하라고 시키지 마.”


“‘오아시스’를 한 단어로 말해보자면?” “나!”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돈이 없어서 공연을 보지 못하는 팬들에게 한 말씀 하시면?” “정말? 전혀 몰랐어요. 그런 일이 있었나? 이건 모두가 미국 잘못입니다. 미국을 탓하세요.”


“감사합니다. 단언하건대 이건 제가 받은 상 중에 가장…… 최근에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오만한 게 아니다. 단지 우리가 세계 최고의 밴드란 걸 믿을 뿐이다.”


"만약 네가 어느 날 밤 네 아비에게 X나게 맞아서 기절하고, 문밖으로 버려지고, 몇 시간 후에 깨어나서는 그래도 죽지 않을 거란 걸 안다면, 무서울 게 하나도 없어지는 거지."



약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찌르는 듯했던 귀 안의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믿기지 않는다고? 무언가로부터 심한 압박을 받은 날 반드시 해보시길. 이거 정말 효과가 있습니다.



성실한 천재의 조언이 필요했다면 마이클 조던의 명언을 필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 일에 최선을 다했고, 개인적인 문제도 내가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가 아니었다. 그래서 더더욱, 나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내디딜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겸손함을 머금은 천재의 명언은 나를 더 좌절하게 만들 것 같았다. 그래. 당시 나에게 필요한 것은 “더 노력해야겠어”라는 겸손함이 아니라 “너의 노력은 늘 너무 과해” “그딴 게 너한테 정말 중요한 일이야?”라고 지적할 수 있는 오만함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지나친 성실함은 개인의 자존심을 먹이로 하여 성장한다는 것을. 성실함이 일정 수준을 지나 최고점을 치면 자존감은 바닥으로 급락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자존감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바로 이 오만함이 붙들어준다는 것을.



멘탈왕 노엘 갤러거 덕에 나는 며칠 동안 괴로워하던 문제에서 벗어나 평온하게 맥주를 마셨다. 물론 물리적으로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더는 내가 할 수 없는 문제라 생각하니 그것들에 당당히 맞설 용기가 생겼다. 그리고 실제 누굴 만나든, 무슨 일을 하든 평소 스스로를 조이던 압박에서 많이 벗어날 수 있었다.



그날부터다. 이 노트에 용기가 되어주는 문장을 적어두기 시작한 것이. 물론 근자감 가득한 문장만 적어두는 것은 아니다. 위에 적은 것처럼 가슴이 따뜻해지는 문장도 많다. 이런 식으로 노트의 볼륨이 두둑해질수록 최고점과 최하점만을 쳤던 나의 자존감은 줄넘기 같은 곡선에서 벗어나 제법 심심한 능선을 그리게 되었다. 컨디션이 나빠지더라도 나를 원래 상태로 되돌려줄 빽이 있다는 것은 실로 든든한 느낌이었다.



그래.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난들 어떠한가.



안 좋은 일에서 빨리 손을 뗄수록 더 빨리 좋은 일이 생기는 거야. 희망은 그때 다시 가져도 돼.



정말 그렇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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