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졸쪼 Feb 14. 2018

신년 목표는 '죄책감 없는 시간 낭비'

죄책감 없이 나만의 시간을

올해 토정비결 보셨는지? 나는 올해 대운이 올 것이라는 점괘를 2년 전부터 들었기 때문에 오늘을 손꼽아 기다렸다. 2018년이 시작된 지 벌써 두 달,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 좀 불안하긴 하지만 역시 한국은 음력이 아닌가!(떨리는 마음을 다잡고 있다.) 회사를 그만둬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으며 놀고 있으니 맘 편한 백수야말로 대운이 아닌가 싶지만 부디 올해의 운이 이 정도에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덜덜.



월요일에 친구를 만나 이슬람 사원에 다녀왔다. 곧 구정이고 하여 어느 신에게든 소원을 빌고 싶어 갔는데 신자가 아니라 실내에는 못 들어가고 한낮의 서울 시내만 보고 내려왔다. 탁 트인 전경에 ‘그래, 세상에 신은 여럿이니 소원이야 아무데나 들어가서 빌고 나오면 되지’ 하고 생각하며 후련한 마음으로 내려오는데 곰곰 떠올려보니 딱히 빌고 싶은 소원도 신년 목표도 없다. 로또, 재취업, 건강, 뭐 이런 것들이 있긴 하지만 이런 것들이야 노상 바라오던 것이 아닌가.



문득 지난날에는 무엇을 결심했나 되짚어보니 토익 000점, 영어 회화 공부, 이직, 퇴근 후 자기계발…… 지금 바라는 것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도대체 나란 인간은 어떻게 살아왔기에 20대 때 목표들을 아직도 껴안고 있는 거지? 그런데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9시부터 6시까지 즙이 되도록 일한 후 집에 돌아와 1년 내내 저것들을 해낼 리가 없었다. 저것들은 최대한 기간을 짧게 설정해서 클리어할 단기적인 목표였을 뿐, 한 해의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이런 일들을 연간 목표로 잡아놨으니 중간에 의지가 결여되고, 그러다 보니 연초부터 흐지부지 상태, 노는 것도 안 노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태도로 연말까지 지내다가 다음 해에 다시 목표로 설정…… 이 무한 루프에 빠져 살아왔던 것이다!



이런 것들을 한 해의 목표로 잡았던 이유는 충분히 예상이 된다.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놀지 말고 뭔가를 더 해야만 한다는 불안감 때문이었겠지. 하지만 3n년간 살아보니 아무리 열심히 살고 만약을 대비했어도 크고 작은 위기들은 정기적으로 나를 찾아오곤 했다. 그래. 어차피 때가 되면 저런 것들을 클리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이라면 연간 목표야말로 나를 위한 것으로 설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고민 끝에 나는 다음의 목표를 설정했다.

   


내 시간을 갖는 데에 죄책감을 갖지 말 것.



당연한 얘기이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자신만이 쓸 수 있다. 내가 할 일이 없다고 해서 바쁜 친구에게 내 시간을 잘라 줄 수 없고, 그 반대의 상황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써야 할 시간이 한정되어 있고, 어차피 크고 작은 미션들이 나를 찾아올 것이며, 그것들을 해결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그것들이 찾아오지 않는 한은 시간 낭비든 뭐든 죄책감 없이 최대한 즐겁게 사는 것이 이익이다.



업무와 관계가 없어도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배우고, 돈이 되든 되지 않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프리랜서로 살아간다면 좋아하는 일을 주로 하되 싫어하는 일은 조금만 하고, 만약 다시 취업을 해 9 to 6의 삶을 살게 된다면 업무 외의 시간은 온전히 나를 위해 쓸 것이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 하나. 이러한 것들을 위해서라면 올해 번 돈은 다 써버리자는 것. 잠깐씩이나마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을 벌고 있고 작년까지 모아둔 돈이 있으니 올 한 해쯤 모으지 않아도 큰일은 없을 것 같다. 이렇게 생각만 했는데 벌써 너무나 신나는 한 해가 될 것 같다.



남의 기준에 맞추어 살아온 3n년. 앞으로 30년은 더 살 텐데 그중 1년 이렇게 산다고 손해는 아니겠지. 이 정도 되면 올해 대운이 들지 않아도 꽤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하지만 이런 통 큰 한 해 목표를 설정한 이상, 역시 내가 가장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 벌써부터 기대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길고양이와 집고양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