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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쪼 Dec 19. 2017

절대 망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나는 무신론자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무신론자라기보다는 ‘무관신론자’다. 신이 있든 없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커피숍 내 옆자리에서 부처와 예수가 계모임을 한들 나와 무슨 상관인가. 이는 석유공사에 다니는 내 친구가 어떤 일을 하는지 듣고 ‘아, 저쪽 동네에서는 저런 일을 하는구나’ 하는 것 이상의 느낌이 들지 않는 것과 같다. 그들이 있다 한들 내가 나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고, 만약 정말 신이 존재한다면 신 역시 중생들을 일깨우고 자신이 깨달은 무언가를 설파하는 ‘그들의 삶’을 사는 게 아닌가? 그런데 최근 ‘무관신론자’인 나를 약간 ‘관신론자’로 돌이켜 세운 사건이 있었다(사실 사건이라고 하기에는 약간 소소한 감이 있으니 너무 기대는 마시길).
  


내게는 한 번 얼굴도 본 적 없지만 친구라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의 인연은 내가 그분들에게 한 책의 표지 디자인을 발주하며 맺어졌는데, 책이 나온 이후 이 작가님들이 자비로 출판한 자신들의 책을 내게 보내주었고, 내가 감동을 받아 그분들의 굿즈를 좀 샀더니 덤을 이만큼 넣어서 보내주고, 그게 또 고마워서 물건을 사니 또 덤을 이만큼, 그러면 내가 또 물건을 사고 그럼 이제 자동적으로 덤이……. 이런 식으로 우리는 서로가 파산으로 가는 급행열차를 탔다. 그래서 이 파산의 고리를 끊고자 내가 이렇게 메시지를 보냈다.
  


‘작가님. 이건 진짜 우리 다 파산으로 가는 급행열차예요. 이제 그만 보내세요.’
  


그러자 그분들은 이렇게 답했다.
  


‘괜찮습니다. 저희는 절대 망하지 않으니까요.’
  


와…… 완전 멋있어. 이분들은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라 수입도 일정하지 않을 테고 이 바닥 단가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이분들의 사정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와, 이건 너무 멋있는 대답이잖아.
  


그 답을 듣자마자 나의 절친 낢 과장님이 해준 말이 떠올랐다. 내가 지금 회사에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낢 과장님과 단둘이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어쩌다 보니 구남친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구남친과는 우리 둘의 문제 외에도 환경적인 문제가 엮여서 매우 지질하게 헤어졌는데, 이 이야기를 들은 낢 과장님은 이렇게 말했다.
  


“나도 쪼 씨랑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그래도 난 남편이랑 결혼했어.”
“불안하지 않으셨어요?”
“전혀. 난 내가 절대로 망하지 않을 걸 알거든.”
“그걸 어떻게 아세요?”
“신을 믿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절대 고아가 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어.”
  


절대 망하지 않으리라는 확신. 절대 고아가 되지 않으리라는 확신. 지금껏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설정이었다. 나를 늘 지켜봐준다는 존재가 있고 그 존재가 세상을 주무르는 전지전능한 존재라는 것. 이건…… 이건 정말 든든한 빽이잖아!


당장 교회로 달려가지는 않았다. 나는 여전히 의심 많은 무관신론자이자 최고의 게으름뱅이이기 때문에 확실하지 않은 무언가에 내 주말을 바치는 짓은 하지 않는다. 나를 지켜봐줄지 말지 모르는 신을 믿기보다는 24시간이나마 내 멘탈을 이어 붙여줄 주말을 확보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니까. 하지만 신이 있든 없든, 내가 절대 위기에 처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절대 이기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전전긍긍하며 배팅을 거는 사람보다는 절대 잃지 않을 거라는 배짱으로 배팅을 거는 사람은 늘 주위의 시선을 끄는 법이니까.


이와 같은 맥락이 아닐까. 절대 고아가 되지 않을 거라는 느낌. 절대 망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 신이 있든 없든, 나는 이들이 절대 고아가 되지 않고 절대 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기도한다. 그들의 바람이 이루어져야 그들을 지켜보는 나도 언젠가는 ‘절대 망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게 될 테니. 나는 오늘도 나 자신을 위해 그들을 응원한다. 쓰고 보니 참으로 소인배의 삶이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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