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졸쪼 Dec 23. 2017

염세주의자의 세상살이

그렇다. 난 염세주의자다. 너같이 발랄한 애가 어떻게 염세주의자냐고 묻는 분들이 많은데 염세주의자라고 해도 일단은 세상을 살아가야 하니 지금의 발랄함은 학습된 사회성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무의식과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상상 그리고 삶의 연대기 정도를 측정해서 염세주의자 자격증을 내주는 시험이 있다면 나는 무조건 1급 자격증을 얻으리라. 이 시험이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자신 있다. 누구와 붙어도 상관없다.     



왜 염세주의자가 되었는지는 꽤나 재미없는 이야기이므로 슬픈 날 술자리에서나 풀어내기로 하고, 오늘은 왜 내가 삶을 포기하지 않은 염세주의자가 되었는지를 말하고 싶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염세주의자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매일 밤 잠들며 내일 아침에는 눈을 안 떴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 정말 매일 밤 그렇게 생각했다. 하루하루 웃을 일이 있었고 자랑할 만한 일도 많았지만 그런 것은 내 안의 텅 빈 우물에 비하면 너무나 소소하고 의미 없는 기쁨이었다. 그따위 기쁨을 주며 삶을 살아내라니. 내게 삶이란 알사탕 하나를 주며 1,000만 원을 내놓으라는 폭력배와 같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이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사춘기도 지났고 청소년 때보다는 조금 더 즐거운 일들이 생겼지만 기본 염세주의자로서의 끈은 놓아본 적이 없다. 그것은 공기 중에 녹아든 습기처럼 늘 나를 축축하게 감싸고 있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극단의 직전에서 돌아온 일도 있다. 온몸에 힘을 줘도 이가 딱딱 부딪칠 정도로 공포를 느끼다가 삶의 노선으로 발길을 돌렸는데, 며칠 동안은 그런 경험을 했다는 사실보다 기껏 공포 따위에 짓눌려 원하던 바를 이루지 못했다는, 내가 이토록 나약한 인간이었다는 생각에 오랜 기간 씁쓸했다. 실패한 작전은 결코 무용담이 될 수 없었다.



염세주의자로 살며 유학도 다녀오고, 졸업도 하고, 취업도 했다. 그래. 염세주의자인 주제에 유학도 다녀오고, 염세주의자인 주제에 졸업도 하고, 염세주의자인 주제에 취업도 했다. 삶이 지긋지긋하다면서도 남들 하는 건 다 하고 사는 내 모습에 스스로도 기가 찼다.



그러던 어느 날, 삶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아주 작은 출판사에 취업했는데 그 출판사에서는 《음양사》라는 책을 출간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이 문장을 읽었다.     



남들과 다르게 태어난 사람은 인간 세상에 익숙해지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으니,
죽을 때까지의 시간을 무언가로 채워야 합니다.

좀 중2병스럽기도 하지만 나는 이 문장에서 큰 위안을 얻었다. 조금 보태어 말하자면 구원받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 글은 내 머릿속에서 종을 울려주었다. 내가 특별한 존재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어딘가 모자라게 태어났고, 이 점은 매일 나를 조금씩 갉아먹고 있으며, 언젠가는 이것에 먹혀 나를 완전히 잃을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해왔다. 그런 나에게 이 문장은 어떻게든 살라고 강요하는 대신, 죽음은 언젠가 반드시 올 테니 죽을 때까지만 무료하지 않게 버텨보라고 했다. 또 ‘어딘가 모자란 인간’이라고 스스로 불러왔던 나를 ‘남들과 다르게 태어난 사람’이라고 불러주었다. 과분할 정도로 다정한 표현이었다.



어차피 스스로 생을 접을 수는 없으니 죽을 때까지의 시간을 다른 무언가로 채우자는 것. 삶에 대한 책임감의 반대편에 서서, 삶의 중심까지 들어가지 않아도 되니 설렁설렁 이곳에서 천천히 끝을 기다려보자는 이 말은 오히려 나를 삶의 한가운데에 안착시켰다. 이 말은 지금까지 나만의 종교요, 삶의 태도가 되었다.



그 이후로 극단을 생각해본 적은 없다. 뭐, 언제든 생을 끝맺어도 아쉽지 않다는 생각은 여전하지만. 이제는 편안한 곳으로 갔을 젊은 아티스트를 보며 오랜만에 이 문장을 떠올렸다. 그도 이 문장을 봤더라면, 비록 마음속 깊은 우물을 메우지는 못했겠지만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삶이라는 시간을 채웠을지도 모르는데.



남들과 조금 다르게 태어난 그에게 이곳에서 살아가느라 많이 고생했다고 전하고 싶다. 부디 그곳에서는 마음속 우물이 찰랑이기를. 여전히 텅 빈 우물을 가지고 천천히 끝을 기다리는 나는 아마도 그를 평생 잊지 못하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절대 망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