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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쪼 Dec 25. 2017

'비둘기통신'이라는 이름에 대하여

잡문을 쓰고 있습니다. 글을 고치는 게 직업이라 문장이라면 지긋지긋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글을 다 쓰게 되었네요. 옆자리 사람이 책상을 정리하면 나도 왠지 하고 싶어지는 것처럼 제 주변의 멋진 분들이 자극제가 되어준 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에세이 작가 중 무라카미 하루키와 마스다 미리를 좋아합니다. 물론 저랑 같이 작업한 분들도 모두 사랑하지만 팔불출 같으니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는 걸로(저랑 조금만 이야기를 나눠보면 제가 그분들을 말도 못하게 사랑한다는 점을 알게 될 겁니다). 어쨌든, 절대 만날 수 없지만 팬심을 불러일으키는 작가는 그 둘을 꼽을 수 있겠네요. 그중 하루키의 ≪무라카미 라디오≫는 정말 좋은 책입니다. 제목도 멋지고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추면 누구든 주절주절 하루키 아저씨가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뜻이지요.



잡문을 쓰기로 결심한 후 블로그 카테고리의 제목을 고민해보는데 ≪무라카미 라디오≫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그 제목이 좋다고 감히 ‘졸쪼 라디오’라고 따라 할 수는 없잖아요? 어디 감히 하루키 님과 대적하려고. 하루키 아저씨가 서글서글 좋은 분이기는 하지만 다 받아준다고 기어오르면 주옥…… 아니 팬분들에게 돌팔매질을 면치 못하리란 건 안 봐도 뻔합니다.



그럼 라디오보다 한 단계 낮은 게 없을까 고민하던 중 무전기가 떠오르더군요. 하지만…… 왜 <시그널>에서는 무전기를 선택한 거지. <시그널>도 어마어마한 드라마라 차마 무전기를 사용할 용기는 나지 않더군요. 라디오, 무전기보다 하나 더 낮은 뭔가가 없을까? 뭔가 소통의 아이콘이면서 딱 들었을 때 어감이 나쁘지 않은…… 봉화? 아, 이건 아냐. 이건 너무 구한 말, 조선시대잖아. 이래저래 머리를 쓰다 보니 시간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 ‘비둘기’라는 것이 떠오릅니다. 아, 전쟁터나 수도원, 왕궁에서만 사용하던 그것. 얼마나 고전적인지.



이 매거진에서는 그 시절 비둘기를 통해 전하던 메시지들만큼 중요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을 겁니다. 오히려 시시껄렁한 일상에 대한 글이나 농담이 가득하겠죠.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비둘기도 새장에만 갇혀 있는 것보다는 가끔 바깥바람도 쐬고 친구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을까요? 요즘 비둘기들은 충분히 바깥바람도 쐬고 친구도 만나는 것 같습니다만.



비둘기처럼 산책이나 나가는 기분으로 내킬 때마다 주절주절 글을 써보려 합니다. 다들 멋진 글을 쏟아내는 가운데 구경만 하고 있기에는 몸이 근질거려서요. 지금 저는 멋진 사람들을 잔뜩 모은 파티의 한가운데 있는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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