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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쪼 Dec 29. 2017

될놈될의 법칙

회사 송년회 때 이벤트에 당첨되어 경품을 받았다. 그래, 뭐 어쩌다 한 번은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작년에도 당첨되어 무려 2등 상품을 받았다는 사실. 이 정도면 자랑할 만하죠? 네. 제가 바로 그 ‘될놈될’의 주인공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될놈될’이란 ‘될 놈은 된다’의 줄임말이다.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느냐 하면 최근 몇 년간 나의 ‘될놈될력(力)’이 부쩍 정점을 찌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힘 빼기의 기술> 덕에 '올해의 기획·편집상'을 받았고, 이 책 발간 당시 편집 후기가 예스24의 채널인 ‘내가 만든 책’ 코너에 실렸으며, 연말 송년회에서는 2년 연속 경품을 수령했다.



그뿐 아니다. 조카의 운동회 때는 추첨을 통해 1등 상품인 쌀을 한 가마니 받았고, 재롱잔치 때는 사회자의 말에 열심히 반응했더니 꽤 비싼 팝업 동화책을 얻었으며, 구남친이 같이 응모해달라고 한 유명 면도기 댓글 이벤트에서 구남친은 떨어지고 나만 상품을 수령했다. 그 외에도 각종 영화·연극 이벤트 당첨 등 최근 몇 년간 내 삶이란 그야말로 될 놈의 일상이다.


     

이렇듯 내게 요즘 부쩍 행운이 찾아오고 있다고는 하지만 내가 아는 최고의 될놈될의 주인공은 ‘김 계장’이다. 김 계장은 우리 언니인데 그녀는 중학교 때부터 각종 라디오·연예인과의 만남에 사연이 채택되었고, 온갖 이벤트 당첨, 하다못해 무료 배송 쿠폰 복권 같은 것도 응모하는 족족 받아내곤 했다.



뭔가를 해내겠다고 다짐하면 반드시 그것을 이루어냈고, 종목과 상품에 관계없이 자기가 무조건 채택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심지어 딸 하나 아들 하나라는 자녀계획에도 성공했는데 옆에서 보면 인생은 불공평하다는 말이 딱 떠오른다. 이렇게 한 사람에게 행운을 몰빵해주다니, 신이 있다면 정말 너무한 거 아닙니까? 그에 비해 경품은커녕 없는 돈에서 아껴 쓰는 법밖에 모르는 나는 ‘될 놈’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이 될놈될의 비밀은 예상치 못한 순간 풀려버렸다. 당시 김 계장은 <선덕여왕>의 광팬이었는데 <선덕여왕> 종영 기념 콘서트에 가겠다고 결심했다(장소는 무려 경주였다. 나 같으면 표가 있어도 안 갔을 거다). 이 공연은 시청자에 대한 감사 표시로 100퍼센트 이벤트 응모와 초대로만 이루어지는 듯했는데(나는 그 드라마를 안 봐서 자세히는 모른다) 김 계장은 반드시 이 콘서트에 가리라고 나와 당시 남친이었던 우리 형부에게 선포했다. 그리고 며칠 뒤, 퇴근해서 집에 돌아왔는데 김 계장이 이벤트에 응모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런. 데.          



김 계장의 응모 방식은 내가 지금까지 예상해왔던 ‘응모’라는 개념을 완전히 박살내버렸다. 김 계장은 <선덕여왕> 콘서트 이벤트 페이지가 열린 모든 사이트에 로그인해 응모를 하고 있었다. 아이디가 없는 곳에서는 새로 가입을 해서 참여했다. 댓글도 남겼는데 그 형식도 정말 입이 딱 벌어질 정도였다. ‘가고 싶다’ 정도의 감성 팔이 글이 아닌 왜 자기를 뽑아야 하는지에 대해 이벤트 담당자에게 논리적으로 어필하고 있었다.



그렇다. 김 계장이 이때껏 될놈될의 주인공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이토록 성실하게, 반드시 ‘될 놈’이 되도록 스스로 확률을 높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됐냐고요? 김 계장님은 경주에 가셨다. 은행에 연차를 내고. 나는 진심으로 리스팩트의 박수를 쳤다. 경주에서 돌아온 날, 김 계장은 <선덕여왕>의 OST인 “빰빰 빠라밤밤밤 빰빰빰빰”을 흥얼거리며 현관문을 열었는데 그 위풍당당함에 후광이 비칠 정도였다. 그에 비하면 귀찮다고 스템프 적립도 안 하는 나 따위에게 행운이 찾아오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대학에 다니던 시절 H 언니가 한 말이 떠오른다. 그녀는 재수 시절, 봄여름 동안 펑펑 놀다가 수능 100일 전부터 커피숍에서 하루 두 시간씩 공부해 우리 학교 우리 과에 붙었다. 정말 마아아아아아않이 공부해서 우리 과에 붙은 나는 그렇게 조금 공부하고도 어떻게 우리 학교에 들어올 수 있었느냐며 비결을 물었다. H 언니는 자기 머리가 좀 좋았노라며 솔직하게 답해주었고, 노력파인 내가 좌절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렇게 덧붙였다.     



“솔직히 나는 살면서 머리 덕을 많이 보긴 했어. 그에 비해서 우리 언니는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거든. 그런데 우리 언니를 보면 노력하는 사람은 무슨 문제가 닥쳐도 다 평탄하게 풀리는 것 같아. 사실 그게 더 대단하지.”


    

그래. H 언니의 언니도 누군가의 입장에서 볼 때는 될놈될의 주인공이 아닌가. 그녀에게 닥친 문제들은 어떻게든 순조롭게 해결이 되었으므로. 특히나 그녀가 즐기며 노력하는 타입이었다면 누군가에게는 행운의 아이콘으로 비칠 것이다.     



H 언니의 언니와 김 계장 그리고 최근 나의 매일을 돌이켜보며 나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될놈될의 법칙’이란 결국 확률을 높이는 게임이라고. 성실하게 스스로 ‘될 놈’이 될 확률을 높인 사람이야말로 끝내는 될놈될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 확률을 높이는 일이란 김 계장이 그러했듯 더 많은 '응모' 혹은 '시도'가 그 시발점이라고(회사 송년회 때 2년 연속 상을 받은 것은 분명 우연의 연속었이지만 말이다).



작가님들에게 섭외 메일을 보내본 것, 재롱잔치 사회자의 말에 열심히 호응한 것, 에디터로서 조금 더 포인트를 살려 댓글을 쓴 것 등이 바로 '응모'의 시작이었다. 하다못해 조카의 운동회에는 귀찮음을 무릅쓰고 주말에 참석한 것, 각종 이벤트에 참여한 것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은 일이었다.



로또를 사지 않고도 1등에 당첨된 사람이 없듯 내가 응모하지 않은 이벤트에 당첨되는 일은 결코 없었다. 그리고 나의 이 나약한 시도들은 주변 사람들의 노력, 수많은 우연과 결합되어 행운으로 돌아와주었다. 그래. 나는 응모밖에 한 게 없지만 행운이 달라붙을 만한 시도를 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될 놈이 될 확률을 높이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 나는 “전 되는 사람이니까요” 하면서 잘난 척을 하고 다닌다. 하지만 나는 안다. 사실 내게 ‘될 놈’이 될 천부적인 재능은 쥐뿔도 없다는 사실을. 주변 사람들의 도움 덕에 이런 행운을 거머쥐었다는 사실을. 늘 노력하지 않고 결과를 얻어낸 사람들을 부러워해왔다. 하지만 이제 어떻게 행운을 불러오는지 그 비결을 알게 된 이상, 이렇게 노력하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그냥 행운이 달라붙을 만한 시도를 해보는 것.




무엇이든 계속 노력해서 확률을 높이다 보면, 그리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다 보면 언젠가 또 무언가를 성취할 날이 오겠지. 2018년에는 어떤 행운이 올까 벌써부터 기대된다. 전 되는 사람이니까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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