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평일 저녁을 보내는 방법도 있다. 지금은 독서가 메인 취미이지만 한때 나의 메인 취미는 영화 감상이었다. ‘그냥 영화 감상’이 아니라 ‘네이버 영화 전체 랭킹순대로 보기’였는데 이게 또 꽤 즐겁습니다(‘네이버 영화 랭킹’과 ‘순서대로’라는 단어가 반드시 들어가야 간지가 나는 취미인데 막상 이렇게 쓰거나 말해보면 설명이 장황한 탓에 간지가 안 나 늘 당황한다).
나로 말하자면 ‘오늘 뭔가 영화를 봐야겠어!’라고 생각하면 최고의 영화를 선택하기 위해 온갖 것들을 검색해보다가 시간을 다 보내고 결국 영화는 보지도 못 한 채 하루를 마감하기 일쑤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런 규칙을 설정하니 오늘 무엇을 볼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무엇을 보든 꽤 수준 있는 영화를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의 평일은 대략 이러했다.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당일 영화 랭킹을 확인한다. 음, 오늘은 퇴근하고 이 영화를 보겠군. 퇴근 후를 기대하며 열심히 일한다. 안정적으로 영화를 감상하려면 칼퇴근해야 하므로. 별것 아닌 목표였지만 이렇게 일하다 보면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 일도 더 잘됐다.
5시 59분에서 6시 00분으로 컴퓨터 숫자가 바뀐 순간 자리에서 일어난다. 목표는 오직 하나. 영화를 위해 아홉 시간을 견뎠다! 저녁거리를 사서 들어가 영화 감상을 위한 세팅을 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영화를 튼다.
<토이 스토리 3>를 보면서 ‘와 씨, 이게 진짜 애들 보라고 만든 영화인가’ 의아해하며 영화 시작 20분 만에 눈물을 줄줄 쏟았고, <쇼생크 탈출>을 보고 나서는 ‘이것이 바로 영화 평점 전체 1위의 스웩인가’ 감탄해 잠을 설쳤으며(관람객 평점이 무려 9.88이다), <백 투더 퓨쳐>를 보고는 ‘와, 이거 레알 85년도에 만든 거?’ 하며 놀랐다. 그래서 한번은 집에 내려가 부모님에게 이 영화를 틀어드렸는데 두 분 다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한 50위 정도를 넘어서니 슬 안 보고 싶은 것들이 생긴다. <클레멘타인>이라든가 <클레멘타인>이라든가 <클레멘타인>이라든가. 그래서 그 이후로 좀 심드렁해졌는데, 확실히 이 취미를 가지고 있던 동안에는 회사에서도, 퇴근 후에도 삶의 균형이 괜찮았었던 것 같다. 오늘 뭘 봐야 할지 고민하다가 시간을 다 써버리는 옹고집 취향러들에게 이 방법을 추천합니다.
이런 말을 하면 랭킹 1위는 무엇이냐 물어보는 분들이 있는데 내가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당시 1위는 <쇼생크 탈출>, 2위는 <레옹>이었다. 아이유와 박명수가 <무한도전>에서 <레옹> 노래를 발표했을 때는 <레옹>이 1위를 탈환했는데 그런 변화를 보는 것도 좀 재밌었다. 지금 1위는 <쇼생크 탈출>, 2위는 <원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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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오늘 보니 1위는 <덕구>, 2위는 <레옹>, 3위는 <쇼생크 탈출>로 순위가 바뀌었습니다. 참고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