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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쪼 Apr 13. 2018

생장점이 타버린 사람일지라도



나는 식물을 좋아한다. 동물도 좋아하지만 키울 환경이 되지 않으므로 애써 그 애정을 접어두고 식물을 더 좋아하려고 노력하고, 그리고 더 좋아하고 있다. 어느 정도냐 하면 한때 취미가 술 먹고 식물 바라보기였다(물론 술을 마시지 않아도 식물을 오래오래 감상할 수 있다). 새순과 줄기의 모양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두 시간은 훌쩍이다.



지난 주, 친구가 하는 꽃집에 놀러 갔다. 뭘 사야 할지 몰라서 상담을 받았는데 내가 중시하는 것은 ‘관찰할 맛이 나게 새순이 빨리 나는 것’이었다. 뭐니 뭐니 해도 키우는 식물이 쑥쑥 성장하는 모습을 발견하는 게 프로식물러의 기쁨 아니겠는가! (뭐, 상담이고 뭐고 결국 한눈에 뻑 간 다육이;;를 데리고 오긴 했지만.)



새로 산 화분을 베란다에 놓고 완벽한 음악과 조명 속에서 오래오래 관찰했다. 그래, 이런 게 바로 자식 키우는 기쁨이겠지. 그런데, 음? 문득 나는 새순을 내고 있지 않은 식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웬만한 대학에 나와 웬만한 회사에 다니며 겨우 밥벌이나 하고 있는 딸(그나마도 지금 몰래 그만뒀지만). 벌써 3n 살인데 결혼할 생각은 없어 뵈고, 언제쯤 할 거냐고 묻기도 애매한, 언제 찾아가도 그 모습 그대로인 나는 다육이보다 성장이 느린 딸이었던 것이다!



아, 엄마는 나를 봐도 즐겁지 않을 수 있겠구나. 지켜보는 기쁨을 줄 수 없는 자식이라니, 너무 내 생각만 하고 살았나 싶어 조금 반성했다. 내 멋대로 너무 오래 살아왔던 탓에 이런 일로는 좀처럼 반성하지 않는데 프로식물러의 관점에 입각해 생각해보니 이건 굉장히 미안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유칼립투스 줄기에 눈이 갔다. 내 유칼립투스는 생장점이 타버려 위로는 더 자랄 수 없는 아이였다.     



생장점이 잘린 식물은 줄기가 목질화되며 점점 나무가 된다. 생장점이 살아 있는 식물은 위로 쭉쭉 성장하지만 햇볕에 타거나 어떤 이유로 생장점을 잃은 식물들은 나무가 되며 더 단단한 몸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위로 자라지 못하는 대신 더 풍성하게 곁가지를 낸다.



비록 키가 커가는 모습은 볼 수 없어 재미없는 자식일 수 있지만 시선을 조금 낮추면 예쁜 갈색으로 변해가는 목대를 발견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우리 엄마도 프로식물러이므로 이미 나의 그런 점을 봐주고 있으리라 믿는다.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통하는 게 있으니까.



이렇게 오늘도 식물은 나를 키운다. 내가 물을 주고, 창을 열어두고 있지만 사실 식물이 나를 키우고 있다는 것을 안다. 이토록 식물은 거대한 존재이다. 실제 크기와는 상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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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퇴고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퇴고를 하면 더 좋아지리라는 것은 알지만 묵혀두기가 귀찮;;

퀄리티가 떨어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바로 이 이유이겠지만 당분간은 그냥 이래 살랍니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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