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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쪼 May 08. 2018

요금 납부는 계속된다

졸쪼의 번역 연습

정말 좋아하는 작가의 책인데 심심해서 번역해봤다. 그냥 술술 읽고 싶어서 정확성을 기하기보다는 기분 따라 대강 얼버무린 부분도 있음. 작가는 가수이자 배우인 호시노 겐으로 국내에는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라는 드라마의 주연으로 알려져 있다. 글도 어쩜 이리 잘 쓰는지. 호시노 겐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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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휴대전화 요금 청구서가 우편함에 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 이거 내야겠는데’ 하고 반사적으로 생각하지만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늘 저녁이다. 오늘도 밤 12시를 웃도는 시간에 돌아왔다. 이 시각에 요금을 낼 수 있는 곳은 편의점 정도이려나. 하지만 지금 밖에 나가는 것도 귀찮고 장도 다 봐버린 터라 다시 나가기는 좀. 일단 방에 들어와 청구서를 적당한 장소, 예를 들면 거실에 놓아둔, 산 지 얼마 안 된 책 위에 툭 놓고 “내일 내야지” 하고 생각한다.



다음 날, 출근 준비 중 청구서를 찾았으나 절대 찾을 수 없다. 책 위에 놓아뒀을 텐데 지금은 그 모습을 감추고 무슨 일인지 그 위에는 친구에게 받은 마이클 잭슨의 가면이 놓여 있다. 서둘러 여기저기 뒤집어엎어봤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 귀신이 숨겨놓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등 뒤가 서늘해졌고, 어느덧 집을 나가야 하는 시각이 되어 일터로 나갔다.



밤이 되어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산 도시락을 침대에 놓고 한숨을 쉰 뒤 가방을 열어보니, 웬걸, 찾기 편하라고 책 위에 올려뒀던 청구서가 가방 속에 구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문득 어젯밤 일이 떠올랐다.



그래, 그러고 보니 잠들기 직전 ‘어차피 내일 밖에 나가니까 가방 속에 넣어두자’ 하고 반쯤 잠에 취해 가방에 청구서를 넣은 일이 떠올랐다. 마이클 잭슨의 가면이 왜 책 위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나의 무의식이 그곳에 놓아둔 거겠지. 그것을 잊고 나는 출근 전에 “없네, 없어”를 연발하며 필사적으로 청구서를 찾은 것인가. 그리고 또 나는 왜 그것을 집에 와서야 깨달은 것인가. 촬영 현장에서 깨달았으면 편의점에서 내고 왔을 텐데. 아 정말. 후회와 자기혐오로 가득 차 어쩐지 졸음이 몰려왔기 때문에 요금은 다음에 내야겠다.



뭐 이런 경우는 종종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를 몇 번이고 반복하고 결국은 요금을 내는 것 자체를 완전히 까먹어 최후통첩이 오면 그제야 부랴부랴 편의점에 달려가 겨우 요금을 낸다. (…)



“그런 걸 ‘한심한 사람’이라고 부르죠.”



K가 나폴리탄을 먹으며 말한다. 여기는 커피숍이다. 동료인 K와 어떤 일을 계기로 만나는 중. 약속 도중에 배가 고파지면 상대에게 실례일 것 같아서 나는 여기 오기 전에 밥을 먹고 왔는데 K는 당당히 나폴리탄을 먹고 있다. 상대가 꾸역꾸역 밥을 먹고 있으니 일 얘기가 잘 진행될 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가벼운 농담조로 휴대전화 요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한심한 사람?”


“밖에서는 딱 부러지게 행동하지만 집 안에서는 나사가 빠진 사람 있잖아요. 일은 칼같이 하는데 생활은 완전 엉망인 사람.”



안타까운 사람이라. 어떤지 침울해지는 단어지만 맞는 말이다. 일은 열정적으로 하지만 실제 생활은 너덜너덜하다.



“이야아, 전부터 (쩝쩝) 좀 생각해봤는데요, (쩝쩝) 호시노 선배 실은 ‘한심한 사람!’ 아닌가? 하고요.”



야, 지금 입에서 뭐가 튀어나왔어. 피망? 피망이다. 나폴리탄에 들어 있던 피망이 입에서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다. 젠장, 병신 취급하는 거냐. 피망이나 튀기는 녀석한테 ‘한심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고도 가만히 있을 정도로 나는 마음이 넓지 않다고!



“야, 좀 다 먹고 얘기하는 게…….”



그렇게 말하자마자 K는 먹는 것을 딱 멈추고 이렇게 말했다.



“한심하다는 말 듣기 싫죠?”



K는 다시 쩝쩝 소리를 내며 나폴리탄을 먹기 시작했다. 한심한 사람이라니, 열받아. 왜 그딴 소리를 하는 거지? 하지만 별로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아아, 말싸움도 못하는 놈. 그래, 이런 면이야말로 한심한 인간의 속성이 아닌가!



“근데 선배, 자동이체하면 되잖아요.”



“어?”



“은행 계좌에서 자동으로 요금이 이체되도록 하면 되잖아요. 매달 편의점에 안 가도 되니 내기도 편하고요.”



흠.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표시로 콧소리를 냈다. 자동이체. 나는 옛날부터 이 시스템이 싫었다. 나는 돈이 좋다. 이렇게 말하면 저금이나 실컷 하는 구두쇠 인간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실상을 조금 다르다. 나는 돈을 모으는 것보다 쓰는 것을 좋아한다. 예를 들어 외식을 할 때, 식당에서 굉장히 맛있는 밥을 먹었다고 해보자. 나에게는 식사를 하는 것까지가 아닌, 식사 후에 돈을 내는 것까지를 ‘외식’으로 친다.



좋은 물건과 맞바꾸어 돈을 낸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매우 멋진 행위라고 생각한다. 맛있는 밥을 만들어준 사람에게 나를 만족시켜준 만큼의 돈을 내고 싶다. 직접, 돈으로.



그것은 밥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물건 역시 같다. 갖고 싶은 CD가 있으면 값싼 중고가 아닌 새 제품을 정가에 산다. 당연한 말이지만 중고품을 사면 그 물건을 만든 사람은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자동이체라는 방법도 결국은 현금이 아닌 데이터상의 거래임과 동시에 ‘지불’이라는 행위에 나 자신이 제외되어 있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그 방법을 이용하지 않고 있다.



“‘흐음’이라뇨. 선배, 설마 자동이체가 실제 돈으로 왔다 갔다 하는 방법이 아니니 싫다는 거예요?” 



그래, 바로 그거다.



“하아, 선배. 그러니까 그런 부분이 한심하다는 거예요. 요금은 제때 내면서 고집을 부려야죠.”



에?



“선배가 어떤 마음인지는 알겠는데, 어떤 정당한 이유가 있더라도 휴대전화 요금도 제때 안 내는 사람 말에 설득력이 있겠어요?”



“미안하다.”



맞는 말이라 바로 사과하고 말았다. (…)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집에 와서 텔레비전의 스위치를 누르고 있었다. 어쩐지 할 일이 많아져서 다 귀찮아졌다. 텔레비전에서는 <사랑 여행>이라는 프로그램(여행+짝짓기 버라이어티)이 시작되고 있었다. (…) 여행을 하면서 울고, 연애 때문에 침울해져서 눈물을 흘리는 젊은이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떠올랐다. 저들은 저렇게 오랜 기간 여행하는 중에 휴대전화 요금을 어떻게 내는 걸까? 아, 자동이체다!



잠깐, 저렇게 여행이나 하면서 연애나 하고 있는 저 젊은 애들은 휴대전화 요금을 제때 내고 있고, 열심히 일하느라 연애할 틈도 없는 나는 정작 휴대전화 요금을 제대로 안 내고 있다고? 아뿔사.



재빨리 통신사에 전화하려는데 내 휴대전화는 이미 사용 정지를 먹었다. 차를 타고 몇 분이나 달려서 공중전화에 동전을 넣어 전화를 걸었다.



“아, 여보세요. 저는 호시노라고 하는데요, 요금 납부 형태를 자동이체로 바꾸고 싶어서요.”



“오늘 접수는 종료되었습니다. 영업시간 내에 다시 걸어주시겠어요?”



“…….”



나는 수화기를 한 손에 든 채로 무너져버렸다. 그래, 밤 11시를 넘었는걸. 회사는 이 시간이면 거의 문을 닫는다. 아, 또 늦어버렸어. 아니, 그보다 집을 청소해서 청구서를 찾은 다음 편의점에서 요금을 냈어야 했는데. 아아, 대체 지금 뭘 한 거지. 나는 한밤중의 공원에서 눈물을 흘렸다.



결국, 다음날 아침 일찍 통신사에 연락했으나 자동이체는 서류를 제출한 다음 수속을 밟아 약 두 달 후부터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두 달이라는 말에 기운이 빠졌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평생 이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큰맘 먹고 서류를 제출하기로 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자동이체 관련 서류가 우편함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작성해서 반송해야지”하고 생각했으나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늘 저녁이다. 오늘도 밤 12시를 웃도는 시간에 돌아왔다. 



지금부터 열심히 작성해도 우체국에 부치려니 귀찮다. 일단 서류를 적당한 장소, 적당한 장소, 예를 들면 거실에 놓아둔, 산 지 얼마 안 된 책 위에 툭 놓고 “내일 써야지”하고 생각한다.



다음 날, 출근 준비 중 서류를 찾았으나 절대 찾을 수 없다. 책 위에 놓아뒀을 텐데 지금은 그 모습을 감추고 무슨 일인지 그 대신 친구에게 받은 마이클 잭슨의 가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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