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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쪼 May 10. 2018

페미니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페미니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처음 보는 사람이 오프라인에서 이런 질문을 한다면 어떻게 대답하실지? 관심 있는 회사의 채용 공고가 떠서 정보를 검색하던 중 이런 면접 후기를 발견했다.



‘페미니즘에 대해 질문함.’



음. 크리에이티브한 활동을 요하는 직무라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지만 면접관과 동등한 권력관계가 아닌 상황에서 면접자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 솔직하게 내 의견을 말해야 할까, 아니면 면접관의 첫인상에 맞추어 적당히 타협한 답을 내놓아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 역시 페미니스트다. 페미니즘을 둘러싼 모든 움직임이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페미니즘을 지지한다. 초등학교 때는 수영장에서 누군가가 내 몸을 더듬고 간 일도 있었고, 중학교 때는 치과 의사가 내 가슴을 더듬으며 진료했으며, 고등학교 때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바바리맨을 강제로 목격하는 등 원치 않게 직, 간접 성추행을 당해온 내가 페미니즘을 지지하지 않는다면 이것도 우스운 일이다.


    

예전에 본 한 영상이 기억난다. 영미권의 한 토크쇼였는데, 남자 연예인이 나와서 본인을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했다.



“별게 페미니스트가 아니에요. 비욘세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제이지보다 낮은 출연료를 받고, 콘서트를 포기하고 자녀를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이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당신도 페미니스트인 거죠.”



그래, 이게 바로 페미니즘의 본질이구나. 그 후로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비욘세와 제이지를 대입해보는 습관이 생겼다. 비욘세는 미니스커트를 입었다는 이유로 성추행, 성폭행을 당해도 마땅한가? 비욘세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제이지보다 낮은 임금을 받아야 하는가? 비욘세는 여성이기 때문에 명절에 콘서트를 취소하고 시댁에 가 전을 부쳐야 하는가?



이렇게 대입해나가다 보니 뭔가 이상하다. 알바비 몇십만 원을 떼이면 피해자로서 노동청에 신고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에서 왜 성폭행이나 성추행 피해 사실만큼은 입 밖에 내는 순간 ‘꽃뱀’이나 ‘김치녀’ 소리를 듣는가? 여성의 인권은 어째서 노동권보다 낮은가.



물론 변화의 물살에는 부작용이 따르게 마련이다. 페미니즘을 남혐이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고, 남녀 간의 분쟁을 조장한다는 의견도 있으며, 거짓 폭로나, 여성의 시선으로 봐도 ‘어, 이건 좀 과한데’라고 생각될 정도의 격한 표현도 보인다. 하지만 역사를 돌이켜봤을 때 강도 10의 격한 움직임이 있으면 사회는 겨우 0.5 정도 변한다. 강도 10의 격한 움직임이 현실을 10만큼 바꿔놓는 일은 무력이 동원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이는 바꿔 말하자면 세상을 0.5 정도로 바꿔놓으려면 10의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분명 지금의 페미니즘은 정착 단계라 다양한 부작용을 안고 있지만 나는 적어도 이 부작용들을 해결해나가는 것이 부당한 현실을 견디는 것보다 덜 암울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면접에서 이런 얘기를 주절거리면 상대는 분명 나를 기 쎈 언니라 생각하겠지.



“별게 페미니스트가 아니에요. 비욘세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제이지보다 낮은 출연료를 받고, 콘서트를 포기하고 자녀를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이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면접관님도 페미니스트입니다.”


 

그래, 대외적으로는 이렇게 얘기하자. 사실 이것이야말로 부작용이 싹 걷힌 페미니즘의 본질인걸. 미세먼지 없는 하늘 같은 상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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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예전에 쓴 글입니다. 제가 면접을 갔을 때는 페미니즘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고, 그 회사에도 떨어져서 올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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