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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쪼 Jun 28. 2018

혼자라고 무너질 수는 없으니까

30대 1인 가구, 행복한 혼자를 위한 습관을 말하다 2

거지 같은 하루였다. 완전 큰 대포가 펑펑 터진 건 아닌데 신경에 거슬리는 일들이 연달아 일어난 날. 분명히 무시를 당한 것 같은데 따지기에는 너무 사소하고, 그런데 머릿속에서는 지워지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은 다 멀쩡한데 결국 나만 못 견디겠는 그런 날, 분명 원인은 있는데 말은 못 하겠고, 꾹꾹 참고 있는데 주변에서는 ‘쟤 왜 저래?’ 하며 수군거리는 그런 날 말이다. 결국 돌아오는 버스에서 찔끔 눈물이 났다. 앞에서는 의연한 척도 잘하는데 버스나 지하철만 타면 뭔가가 울컥 치밀어 오른다. 이런 날에는 빨리 집에 가는 게 최고다. 집에서는 나의 또 다른 자아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할 얘기를 위해서는 잠깐 플래시백이 필요하다.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전 회사에서 누가 오타를 냈나 뭐 그런 상황이었던 것 같다. 당사자는 허겁지겁 책을 펼쳤고 “헉!”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아니나 달라, 누가 봐도 대단한 오타가 그 자리에 있었다. 오타는 단순히 오타 하나가 아니다. 초판을 3,000부 찍으면 오타가 3,000개가 되는 것이다. 옆에서 보고 다들 “2쇄 때 수정하면 되지 뭐” 하며 위로를 건네고 자리에 앉았다. 나도 대강 비슷한 말을 한 것 같다. 몇 시간 뒤, 그분은 평소와 다름없이 커피를 마시고, 일을 하고, 농담을 건넸다. 나 같으면 적어도 며칠은 온몸의 모공이 열린 듯한 열감을 느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그날 이후 주변을 관찰해보니 나처럼 오타에 괴로워하는 사람이 몇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 같은 실수인데 나만 이렇게까지 괴로워하는 것일까? 다들 자기만의 멘탈 케어법이 있는 건가? 그래서 한동안 주변 편집자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리고 이런 결론을 내렸다. 저분들은 다양한 사회적 자아를 가졌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괴롭지 않은 것이라고.



내 주변 편집자들은 대부분 가족들과 같이 살거나 결혼을 해 아이가 있거나 퇴근 후 하는 활동이 확실히 있었다. 이분들에게도 오타는 큰일이지만 가족 문제, 아이 문제, 회사 업무, 업무 외적 활동, 그리고 개인적인 고민 등 다양한 자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책임이 있으니 이미 벌어진 오타 하나에 오래도록 묶여 있을 여유가 없는 것이다. 이건 건강한 삶을 사는 데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라는 카피가 명카피인 데에는 다 이런 진리가 있었던 것이다. 얼마 전 개그우먼 박나래도 외부 강의에서 이런 말을 하지 않았나.



“누가 개그우먼으로서의 저를 비하해도 상관없어요. 저에게는 개그를 하는 박나래, 디제잉을 하는 박나래, 술을 마시는 박나래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어떤 자신을 건드려도 나머지 자아가 있으니 괜찮습니다.”



반면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한 바구니에 담긴 단 하나의 계란이었다(물론 멘탈이 약한 탓도 있다). 가족들과 떨어져 살았고, 친구들은 멀리 살거나 대부분 결혼을 했다. 만나는 사람도, 퇴근 후 따로 하는 활동도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회사에 갔다가 텅 빈 집에 돌아와 영화나 책을 보고 잠들었다. 그리고 다시 출근.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나에게 부여된 사회적 롤은 ‘편집자로서의 김은경’이 전부였다. 이런 패턴이 계속될수록 일에만 점점 몰두했고 편집자로서 한 실수는 회사 안에서도, 회사를 벗어나서도 오래도록 나를 괴롭혔다. 오타를 낸 동료들에게는 “그 오타와 자신을 동일시하면 안 되는 거 알죠?”라고 말했지만 정작 나는 그 실수에서 자신을 분리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들어가다가 결국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퇴사 초반에는 그간의 패턴과 비슷하게 살았다. 책을 보고, 영화를 보고, 맥주를 마시고, 이따금 약속을 나갔다. 한 달 정도 요가도 다녔다. 그러다가 남는 시간을 겉잡을 수 없어서 글을 열심히 쓰기 시작했다. 소소하게 그림도 그렸고, 글쓰기 강의를 했으며 대단하지는 않지만 앞으로 이런 걸 해보면 좋겠다는 사업 계획도 세웠다. ‘회사원’이라는 계란이 깨지자 빈 바구니에 자잘한 잡동사니들을 끼워 넣기 시작한 것이다. 강사로서의 나, 쓰는 이로서의 나, 사업가(실은 아르바이트 수준이지만)로서의 나 등 자잘한 자아가 바구니를 채웠다. 영화 보고 잠자기에 바빴던, 편집자로서의 도피처 같았던 내 거실이 사무실로 바뀌었다. 그렇게 약 반년을 지냈다. 그러자 이 공간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나는 외부에서의 자신을 쉽게 떨쳐내고 강사, 쓰는 이, 사업가로 자연스레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버스에서 찔끔 울며 돌아왔는데 집에 돌아와 이 글을 쓰니 비로소 마음이 편안하다. 이렇듯 회사를 쉬는 동안 나 자신에게 부여한 다양한 사회적 자아는 단단한 보디가드들이 되어 위기 상황에 나를 보호해준다. 그 다양한 자아들이 손때를 묻혔던 이 공간에 돌아와야만 효과가 더 분명하다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여전히 나는 혼자이지만 비로소 혼자가 아니게 되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이젠 무너지지 않을 근자감마저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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