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졸쪼 Jul 14. 2018

영화 <킬링 디어> 후기

영화 <킬링 디어> 후기






모 작가님이 초대해줘서 이동진의 라이브톡에서 봤다. 이 이야기는 심정적으로는 이해가 가지만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해?”라는 구체적인 질문에는 답하지 못할 구성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더 기묘한 이야기.

성공한 외과의사 스티븐은 마틴이라는 소년과 때때로 만나고 있다. 소년은 스티븐이 과거 수술 도중 사고로 죽인 남자의 아들이고, 스티븐은 그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마틴을 대한다. 몇 번인가 가벼운 만남을 가진 후 점차 자신에게 집착하는 마틴에게 스티븐은 부담감을 느끼고 그를 멀리하던 중, 자신의 세 가족이 서서히 신체가 마비되는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아들의 병실에 돌연 나타난 마틴은 스티븐에게 세 가족이 신체 마비 후 어떤 식으로 죽어가리라는 예언을 남기고, 한 명이 죽어야만 이 저주에서 풀려난다는 룰을 알게 된 가족은 서로를 짓밟으며 누가 죽어야 할지 그리고 자신은 어떻게 살아남을지 방법을 강구하게 되는데...

이 이야기는 시종일관 불편하다. 한 남자의 사망이라는 사건으로 엮인 두 주인공의 태도, 서로를 무시하는 가족들, 저주에 걸린 현실을 부정하는 과정, 곧 이를 인정하고 살아남기 위해 서로에게 갑자기 친절해지거나 잔인해지는 모습 등 무엇보다 끈끈해야 할 가족이라는 사회적 결합은 생존이라는 인간의 본성과 부딪혀 더 산산이 부서진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남동생에게서 죽음의 징조가 시작되자 눈앞에 있던 누나가 한 행동. 평온하게 휠체어를 끌며 2층의 아빠에게 이렇게 소리친다.

“아빠! 밥이 죽어가고 있어!”

대사 하나하나가 칼날 같고 감독은 그 칼을 천천히 휘두를 때와 빠르게 휘두를 때를 매우 영리하게 분류해 사용한다. 영화를 보던 내내 계속 불편했는데 또 보고 싶다. 불편하지만 흡인력 있는 영화. 요르고스 란티모스 천재.



작가의 이전글 나의 무기는 내 안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