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라 Mar 01. 2017

반디와의 10년

1. 만남의 법칙


1. 만남의 법칙 (4)


  요섭의 왼팔이 부러졌다. 농구장에서 슛을 하고 떨어졌는데 바닥에 팔이 먼저 닿았다고 했다. 점심시간이어서 나는 교실에서 인형을 그리고 있었는데 애들이 달려와 전해주었다. 처음 들었던 말은 니 사촌 김요섭이 팔이 잘라졌다 여서 나는 얼마전 보았던 사극이 생각났다. 요섭을 보러 뛰어가는데 자꾸 사극이 생각났고 낭자한 피와 공중에 날아가던 잘라진 팔이 떠올라서 겁이 났다. 

요섭은 체육관 중앙 계단 위에 앉아 있었다. 멀리서 봐도 고통스러운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잘라진게 아니고 요섭이 잡고 있었다. 팔은 포크처럼 안쪽으로 둥글게 휘어 있었다.     

병원에서 뼈를 맞추는 동안 처절한 비명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피터는 다른 병원으로 갈걸. 뭔 뼈를 저리 오래 맞추냐면서 흥분했다. 

의사가 나오면서 다행히 금방 맞췄다고 하자 피터는 머리가 땅에 닿도록 인사를 하면서 감격스러운 나머지 의사의 손까지 잡았다. 

  기브스를 하고 나온 요섭은 왠지 의젓해져 있었다. 입술은 하얗게 말라있었는데 어땠냐고 묻자 그 까짓거 참을만 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네 비명 소리가 가슴을 찢어 놓는것 같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그냥 삼키기로 했다. 그 대신 대단해, 잘 참았다, 역시 요섭이야. 이런 말들을 해주었다. 

  마리는 요섭의 팔을 보고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요섭은 더 의젓하게 굴었고 우리는 병원이 떠나가게 지른 요섭의 비명소리에 대해선 영영 함구해야 할 필요성을 마음속에 새겼다. 

  반디와 요섭에 이어 사고를 친 사람은 피터였다. 요섭이 다친 날 밤 피터는 장례식장에 문상을 갔다가 새벽에 돌아왔다. 돌아온 피터의 오른쪽 손은 붕대로 감겨 있었다. 착한 고인을 욕하는 사람들에게 화가 나서 탁자를 내리 쳤는데 잘못 겨냥해서 유리컵을 쳤다고 했다. 12바늘이나 꿰맨 손바닥은 보기에도 끔직했다.

피터의 눈에 눈물이 글썽했다. 측은하고 안쓰러운 목소리로 고인을 많이 사랑했었냐고 이모가 묻자 아파서 그런다고 소리를 질렀다. 술에 취하면 마취를 할 수 없어서 그냥 꼬맸다고 한다. 요섭은 마취 안하고 뼈 맞추는게 더 아프다고 무겁게 한마디 했다. 오늘은 끔직한 날이다.

  왼팔을 못 쓰는 요섭, 오른손을 못 쓰는 피터, 그리고 보호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반디. 아침이면 이모는 피터와 요섭을 순서대로 세워 놓고 머리를 감기고 세수를 시켰다. 왼손을 써야하는 피터에게는 더 손이 갔다. 

마리는 젓가락질을 못하는 피터가 가여워서 반찬을 수저위에 놓아 주는 것을 자청해서 맡았다. 또한 요섭의 책상정리와 옷 입는 것을 도왔다. 

  마리는 뭐든 요섭과 반디에게 양보했고 요섭은 같은 환자이지만 반디를 더 중한 환자로 여겼다. 사실 반디는 약물 목욕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보호를 받았다. 

그것은 피부병에 걸린 반디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새로 생긴 막내에 대한 애정이었다. 피부병은 그저 보호받아야 할 가장 적은 이유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반디와의 10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