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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라 Mar 01. 2017

반디와의 10년

1. 만남의 법칙


1. 만남의 법칙 (5)


  밤이 되어 모두 모이면 불편한 손과 팔로 하루 종일 얼마나 용감무쌍하게 일과를 처리 했는지에 관한 무용담을 들었고 가끔은 그게 사실일까 싶은 의문도 가졌지만 확인까지는 할 수 없었다.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활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모가 아무리 열심히 머리를 감기고 옷을 갈아 입혔어도 피터와 요섭은 왠지 꼬질꼬질했다. 

  한 팔을 쓰지 못하면 다른 팔의 기능이 살아나야 하는데 이상한 것은 사람마다 좀 달랐다. 요섭은 한 팔로 점점 모든 것을 하게 되었다. 처음 며칠은 기록이 나지 않더니 점차 오른손만으로 게임을 두 손으로 할 때만큼 점수를 냈다. 그러나 피터는 점점 두 손이 다 없는 사람으로 되어갔다. 왼손이라 어렵기는 해도 왼손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조차 못했다. 실밥을 뽑고 나서도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해서 이모가 애를 먹었다.

  1달이 지났을 때 요섭은 기브스를 풀었고 피터의 손은 말끔하게 나았다. 그리고 반디는 의사로부터 완치판정을 받았다. 물론 우리 가족 중 누구도 피부병에 걸리지 않았다. 

  반디는 더욱 명랑해졌고 이젠 집에 완전히 적응해 있었다. 반디와 키가 맞는 모든 나무재질가구에는 반디의 이빨자국이 생겼다. 내가 읽던 책의 귀퉁이도 잘근잘근 씹어 놓았으며 피터의 지갑까지 건드렸다. 

3분의 1은 화장실에서, 3분의 1은 거실 신문지 위에서, 그리고 나머지는 아무곳에나 생리현상을 해결하였고 그때마다 칭찬과 야단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물론 칭찬은 과장되고 오래, 꾸중은 아주 약하게 조금.    


  반디의 가족은 두 달이 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처음 한 달은 누군가 나타날까봐 조바심을 냈고 다음 한 달은 약간의 조바심에 설마가 섞였으며 두 달을 얼마 안남기고는 우리는 할 만큼 했으니 이제 나타나보기만 해라였다.

마리와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붙였던 종이를 떼어냈다. 그냥 내버려두어도 괜찮다고들 했지만 우리는 기를 쓰고 떼러 다녔다. 어떤 것은 반쯤 찢어져 있었고 어떤 것은 이미 없어져 버렸지만 그동안 비가 몇 차례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남아 있는 것들도 있었다. 

사실 마리와 종이를 붙일 때 일부러 바람에 날아가라고 슬쩍 슬쩍 붙였었다. 우리가 붙인 종이들은 하나도 바람에 날아가지 않고 붙어 있었으며 멀리서도 유독 눈에 잘 띄였다. 

그건 상당히 신경 쓰이고 불안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종이 앞에 서서 심란한 표정을 주고받았다. 만일 반디의 주인이 나타났다면 그는 우리에게 상당한 미움을 받았을 테고 우리는 반디의 소유권에 대한 어느 정도의 주장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반디의 피부병을 치료하고 요섭과 피터가 부상에서 회복되면서 마치 우리들이 가족이 되기 위한 시험을 치룬 느낌이 들었다.

살다보면 만남은 어떤 형태로든 늘 이루어지지만 그 만남이 오래가려면 반드시 치루어야 할 대가가 있다. 그 대가는 기꺼이 맞서서 이겨내고 넘어서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은 삶의 법칙과 아주 많이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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