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이사
5. 이사 (3)
거실의 한편에 책장과 책상을 놓고 한편에는 침대를 버린 매트리스만 놓았다. 에어컨도 놓고 TV도 놓았으며 책은 벽마다 책장을 놓고 다 꽂았다. 모든 것이 빼곡해서 남는 공간은 거의 없었지만 침실과 서재와 거실과 주방의 기능이 있는 그야말로 멀티 시스템을 갖춘 곳이 되었다.
주부로써 작은집의 좋은 점에 대해 이모는 몇 가지를 꼽았다. 우선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방문을 닫고 있어도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으며 식사를 알리는 말은 약간만 소리를 높여도 되었다. 또 누가 기분이 나쁜지 좋은지 말해주지 않아도 집안의 공기를 통해 알 수 있으며 해결 또한 모든 것이 한눈에 보이니 어렵지 않다. 게다가 청소의 양도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생각해보니 그럴 것 같았다. 그리고 방은 작아서 이모의 말대로 아늑하고 집중이 잘 되었다. 나는 왠지 작은방이 덜 외로웠다.
그리고 반디, 아, 반디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반디는 눈만 돌리면 우리들이 모두 보이는 좁은 공간을 좋아했다. 반디가 가장 좋아한 것은 거실의 매트리스였다. 맨바닥에 앉는 것을 싫어하는 반디에게 거실의 절반을 차지한 매트리스는 그야말로 신나는 놀이터였다. 그동안 가느다란 다리로 침대를 오르내리는 것에 마음이 쓰였는데 이제는 그 걱정을 덜게 되었다.
밤에 모두 매트리스에 앉거나 누워 TV를 보면 약간 흥분을 해서 매트리스에 얼굴을 부비고 뒹굴며 괜히 으르릉 댔다.
그리고 좋은 것은 더 있었는데 언덕위에 아름다운 성당이 있으며 피터의 사무실이 걸어서 20분 거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집엔 옥상이 있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좁은 계단이 가파랐지만 올라가면 탁 트인 공간과 무한대의 하늘이 항상 있다.
이모는 여기에 파라솔을 갖다 놓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내년 봄엔 흙을 퍼다 구석에 쌓고 채소를 심어서 무공해 채소를 먹여주겠다고 큰소리 쳤다. 피터는 이제 냄새 상관없이 다른 집 눈치 보지 않고 삼겹살을 실컷 구워먹을 수 있다고 좋아했다.
또 더 좋은 것은 방음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완벽한 장소라는 점이다. 1층은 조경사무실에 세를 주었는데 6시정도면 퇴근을 하고 늘 상주해서 사무를 보지 않기 때문에 위층의 소음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이제부터는 옥상뿐 아니라 거실에서 줄넘기를 해도 된다고 생각하니 아파트에서는 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았음을 새삼 알겠다.
오늘 하루 반디를 책임진 마리는 반디가 땅에 있는걸 자꾸 주워먹는다고 걱정이 많았다. 이미 먹은 것도 많을거라면서 배를 쓸었다. 반디의 코엔 흙이 묻어 있었고 마리는 그걸 닦아주려고 쫓아다녔다.
밤이 되기 전에 이사가 끝났다. 이모는 약속된 돈의 천원까지를 정확히 세어서 지불했다. 이모는 원래 후한 사람이었다. 아무리 망했어도 일하는 사람들에게 만원단위로 계산하고 소주한잔 하라고 돈을 얹어 주었을텐데 그러지 않았다. 사람은 결국 자신의 몫은 스스로 계산하는가부다.
저녁으로 자장면과 탕수육을 배달시키고 제철인데도 비싸 선뜻 사지 못했던 알이 굵은 복숭아와 새카맣고 굵은 포도를 한 상자씩 들여놓으면서 이모는 야박하게 계산한 대신 이걸 샀다고 말하면서 잘했지 라고 물었다. 이모는 야박한 계산 때문에 계속 마음이 쓰이는게다. 짜장면과 탕수육은 먼저 살던 동네보다 맛있었다.
창문을 열면 밀집한 고층 아파트의 회색공기와는 다른 녹색의 공기가 들어왔다. 그리고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며 그들이 입고 있는 옷과 들고 있는 물건도 다 보였다. 이모는 우리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이 되면 창문을 열고 내다보고 있다가 손을 흔들거나 이름을 불렀다. 이모의 모습은 멀리서도 보였고 목소리도 분명히 들렸다. 또 밤에 피터가 오는 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게 되었다.
11월이 되면서 난방을 하게 되었을 때 넓지 않은 집안은 조금만 보일러를 돌려도 금방 뜨끈뜨끈해졌다. 우리는 불을 뜨뜻이 때고 거실 매트리스에 모두 올라앉아 영화를 보고 간식을 먹었다. 화장실이 하나인 것만 빼면 모든 것이 좋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을 즈음에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