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좌절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는 지금 보다 더 고된 삶을 살았었다고 말하는 널 보면서 몹시 슬퍼졌어. 지난날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때쯤이면 과거에 받은 상처에 담담해져 있으리라 생각했었거든. 그럴 때면 우린 늘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어. 담담해질 수 있는 날이 오려면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버텨내야 하는 거냐고, 날카로운 기억들 속에서 벗어날 수는 있는 거냐고 말이야. 우리는 물음에 대한 대답 대신 능청스럽게 눈을 몇 번 깜빡거렸어. 확신할 순 없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것처럼.
네가 해주었던 말들을 자주 떠올리곤 해.
주저앉지 말고 네가 가는 그 길을 계속 나아가. 네 곁의 모두가 그걸 원할 거야. 힘이 들 때면 잠시 멈춰서도 되고, 쉬어가도 돼. 단지, 너만 가질 수 있는 그 향을 잃지 말고, 숨기지 말고 살아가. 네 곁이 텅 빈 것 같이 느껴져도 너무 걱정하지 마. 언제 어디서든 네 향을 사랑해줄 이가 분명 나타날 테니까.
손대지 않아 꺼져버린 세계를 환히 비추어주던, 사랑의 노고를 증명해주던 너의 마음을 떠올려. 몸담아 헌신했던 노력의 순간들을 있는 그대로 기억해주던 너를, 괴리감이 느껴지는 그 순간마저도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건네주던 너를 떠올려. 난 여전히 네가 해준 그 말들을 잊지 못하고 살아.
아마 그날은 집에 돌아와 이런 편지를 썼던 것 같아.
넌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해 줘. 네가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 보면 괜히 우리의 삶을 총애하고 싶어져. 네가 선한 눈빛으로 바라볼 때면, 굳이 내가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다는 눈치를 보내줄 때면 난 그것만으로도 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 아무 일 없었다는 것처럼 순식간에 내 세계가 평화롭게 변해. 내 세계를 사랑하고 싶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