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위한 결심

- 나는 사랑을 시작할 때 어떤 태도로 임하는가

by 오혜원




*


집 앞 수선집을 가기 위해 현관문을 나섰다. 집과 오 분 거리도 되지 않는 짧은 거리였다. 쌀쌀한 계절에 도달한 겨울 날씨는 자꾸만 얼굴의 근육마저 쭈뼛거리게 만드는 것 같았다. 가까운 장소마저 집 밖을 나서는 것이 일처럼 느껴지는 사람을 아는가? 한여름부터 구멍 나기 시작했던 앞치마의 주머니가 더 이상 주머니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까지 미룬 한 사람이 여기 있다. 이 게으름뱅이의 습관이 결국 앞치마를 이 지경까지 만들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의 앞치마 안부를 물어볼 정도… 랄까나.

다시는 반복하지 않아야지, 다짐할 때 어느새 수선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뻑뻑하게 굳은 철제 미닫이문을 오른쪽으로 밀어보았다. 그때 급히 전화를 마무리하던 수선집 사장님의 모습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 뭐 때문에?”

“앞치마가 다 뜯어졌는데, 맡기려고요! 오늘 안에 될까요?”

“오늘은 다 마감했는데… 끝났어.”

“!!! 네에.. 다음번에 올게요.”

“미안해~”


역시나 오늘도 늦어버렸구나. 직감할 수 있었다. 오늘이 아니면 다음 주는 정말 시간이 없는데. 마음속으로 어떡하지, 되뇔 때 수선집 입구에 나란히 걸린 각각의 옷들이 두 눈에 한 움큼 들어왔다. 어느 날 맡겨두었다가 어느 날 마무리된 옷들이구나, 속으로 생각했다. 순간의 아쉬움과 더 일찍 집 밖을 나서지 못한 하루를 떠올리며 미닫이문을 열 때, 해주가 떠올랐다. 더 정확히는, 해주와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떠다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맡기지 못한 앞치마를 손에 들고, 결심 없이 둥둥 떠다니던 사랑에 대한 기억들이 여기 있다.


*


해주는 어떤 사랑을 마치고도 또 다른 사랑을 처음처럼 시작하고, 그 마음을 순수하게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마음을 가졌던 게 언제였나, 싶어 해주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한껏 그리워졌다. 지하철도, 버스도 끊긴 새벽에 누군가가 보고 싶어서 택시를 잡고, 한 시간 거리를 내달리는 것에 의문을 품지 않고, 좋아하는 사람을 떠올리다 마음대로 볼 수 없는 나날 때문에 울음을 참고, 어떤 마음을 재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일에 겁내지 않는 해주의 모습이 놀랍기까지 했다. 아니, 어쩌면 부러웠던 걸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마음을 좋아하게 두도록 두는 사랑의 태도가 나의 사랑을 돌아보게끔 했다.

나의 지난 연애들을 떠올려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내 마음의 이득만을 챙겨 왔던 것 같다. 언제부터였을까. 오래된 과거를 떠올리면 늘 나에게 사랑은 폭주하는 기관차 같은 거였다. 널 좋아하는 마음. 그거면 된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나에게도 분명히 있었다. 사랑하는 마음을 들이고 겪으면서 마음속에 진짜 마음을 가둬놓고 있다고 어느 날부터 깨달았던 것 같지만.

어느 날 스스로에게, 또는 삶 안의 사랑에게 늘 묻고 싶었던 질문이 있다. 왜 좋아하는 만큼 사랑을 표현하면, 그 사랑을 부담스럽다고 여기게 되는 걸까. 아마 나는 이 질문으로부터 영영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사랑은 그렇구나, 체념하게 되었을 때부터는 사랑하는 마음을 정해두고 좋아하기 시작했다. 상처받고 싶지 않은 거였다. 일종의 자기 방어 같은 거겠지, 생각했다. 너만큼만 대할 거야, 네가 주는 것만큼만. 그렇게 미워하는 마음으로 사랑을 대했다. 다치지 않기 위해 자꾸만 쟀다. 그런 날들을 겪다 보면 의구심을 품는 날이 반복됐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이렇게 어려웠던 건지, 누군가를 온전히 좋아하는 마음은 어떤 거였는지. 그럴 때면 사랑하는 마음도 가짜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사랑을 하는 나조차도.

사랑에 대한 확신을 무르게 만들고 있을 때쯤 해주를 만났다. 그런 해주를 떠올리며 편지를 쓴다.




해주에게

어떻게 하면 너처럼 될 수 있는 걸까.

네가 하는 사랑을 나도 닮을 수 있을까, 생각했던 날이 있어. 너는 사랑하기를 겁내지 않는 사람이잖아. 봤던 영화나 책을 읽고도 새로운 것을 마주하는 사람처럼 사랑 앞에서는 늘 용감해지는 사람이잖아.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 마음을 멸시하고 미워하기 시작했거든. 지나간 사랑을 더듬으며 혼란 속을 방황할 때 너를 만난 거야. 사랑하는 마음을 할애하기를 멈추지 않는 너를. 그때 나는 아주 예전과는 다르게, 사랑을 하는 내가 참 무모하다고 생각했었어. 내 상상과는 다르게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이 자꾸만 펼쳐지고, 그러면서 무력해지는 것을 반복했거든. 사랑하기를 미뤘던 걸까. 무엇보다 겁나는 마음이 컸겠지.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는 일은 그저 끝일 뿐이지, 실패라고 말할 수는 없는 건데.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건 그때의 단짝 친구를 잃는 일이잖아. 내 모든 것을 알아도 수상하지 않고, 더 알게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것. 그래서 사랑하는 마음이 특별하다고 정의하는 것 같아. 그러므로 헤어짐을 고하는 순간조차도 나의 삶을 뺏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던 거겠지. 어떤 시간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일이니까.


여전히 신기하다. 너와의 대화로 내 생각이 뒤바뀔 줄 누가 알았을까. 사랑이 시간을 빛내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어. 결국 사랑이 문제였던 게 아니구나. 그때 나는 더 깨달았던 것 같아. 하염없이 우스꽝스러워도 괜찮고, 무모한 짓을 늘어뜨려 놓아도 웃음이 끊이지 않는 일이 사랑이겠구나, 하고.

너로 인해 나의 겨울은 삶을 더 촘촘히 바라볼 수 있게 되었어. 이제는 삶도 사랑도 허투루 대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마음을 알려줘서 고마워.

지난한 시간 속을 거닐게 되더라도 사랑 덕분에, 너의 삶 한 장면을 다정히 바라보게 되는 날이 많기를.




2026. 01.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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