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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나 Oct 09. 2023

피렌체의 낮과 밤

11. 우피치 미술관, 아카데미아 미술관, 미켈란젤로 광장

4박 5일의 일정이지만 근교 여행을 계획해놓은 탓에 피렌체의 낮을 즐길 수 있는 것은 딱 하루 뿐이었다. 보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았기 때문에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첫 일정은 8시반으로 예약해놓은 우피치 미술관에 가는 것이었다. 시간에 맞춰 가기 위해 이날도 아침 일찍 울리는 알람 소리에 맞춰 일어났다. 출발하며 시계를 보니 아슬아슬하게 지각을 하게될 것 같아 대문을 나서자마자 질주를 시작했다. 차가운 아침 공기로 폐를 가득 채우고 도착한 미술관 앞은 아직 한산했던 덕에 순조롭게 입장하여 여유로운 마음으로 관람을 시작했다.


우피치 미술관은 르네상스 발상지인 피렌체의 대표 미술관답게 소장품 또한 르네상스 시대의 것이 주를 이루었다. 복도를 슬렁슬렁 따라 걷다 들어간 한 전시관에서 보티첼리의 작품을, 다음 전시관에서 라파엘과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만나는 식이었다. 그렇게 이미 친숙한 작품들을 찾아가 하나하나 눈에 담다보면 어느새 복도의 끝에 닿아있었다.

그런가하면 처음보는 작품을 새롭게 발견하는 재미도 있었다. 무심코 지나가다 발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던 이 그림은 마크 저커버그와 꼭 닮아있었다. 16세기 독일화가 Georg Pencz 작 앉아있는 청년의 초상(Portrait of a Seated Youth)이라고 한다.

흔하리만큼 늘어놓아진 작품에서 시선을 돌리면 바닥과 벽,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대리석으로 무늬를 넣은 바닥이며,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기둥으로 모서리를 받친 벽을 따라 올라간 곳에 있는 천장화처럼 전시관 자체가 작품이 되기도 했다.


트리뷰나(The Tribuna)는 그런 방들 중에서도 단연 화려함의 극치였다. 메디치 가문의 소장품 중 가장 귀중한 것들을 전시하기 위해 지어졌다는 8각형 방의 내부는 실크, 진주, 조개껍데기, 황금 같은 것들로 장식되어 있다. 2009년부터 3년간 복원 작업을 거친 트리뷰나는 더 이상 입장이 불가능하고 밖에서만 구경할 수 있도록 되어있었는데, 그 호화스러움은 멀리서도 느껴지기에 충분했다.

우피치 미술관을 나와서는 바로 아카데미아 미술관으로 향했다. 정오가 다가온 피렌체의 길목은 행인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섞여 활기를 띄고 있었고, 대낮에 만난 창백한 대성당은 청량한 가을 하늘과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미술관 앞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 끼어 잠시 기다린 끝에 입장을 했다. 입구에서 이어지는 짧은 통로를 지나 모퉁이를 돌자 복도의 끝에 다비드 상이 서있었다. 5미터의 크기가 주는 위압감이었는지, 순백색의 대리석으로 빚어낸 사실적인 곡선이었는지, 아니면 그 둘의 합작이었던건지, 실제로 마주한 다비드 상 앞에서는 경건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우뚝 솟은 조각상 밑에서 추억을 남기는 사람들 속에 뒤섞여 나 역시 사진을 찍고, 또 한참을 올려다보고 나서야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해가 아직 떠 있을때 해야할 일이 한 가지 더 있었다.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해질 무렵 피렌체의 모습을 감상하는 것이었다. 해가 한번 저물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어두워져 버린다는 사실을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알고 있는 우리는 석양 시간을 넉넉하게 앞두고 택시를 탔다.


광장에 도착하니 전망 좋은 담벼락은 미리 도착해있던 부지런한 사람들의 차지가 되어있었지만, 뒤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린 끝에 괜찮은 자리 한구석 차지할 수 있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아르노 강과 물에 비친 다리의 상, 붉은 지붕의 행렬에 동참한 두오모와 그 옆에 비죽 서있는 조토의 종탑이 눈 앞에 펼쳐졌다.


이대로도 더할 나위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광장 아래의 카페에서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Lukas Graham의 Love Someone이 첫번째 선곡이었다. 붉은색인지 황금색인지 모를 빛으로 물든 하늘이 해질 무렵의 나른한 분위기를 더했다. 이번 여행을 통틀어 잊지 못할 순간 중 하나다.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진 뒤에도 오래도록 피렌체의 모습을 눈에 담고 나서야 발걸음을 돌렸다. 설렁설렁 걸어 돌아간 도심은 멀리서 바라볼 때와 달리 붐비고 떠들썩하고 상점에서 나온 불빛으로 어지러웠는데, 그 모습이 활기차서 또 좋았다. 우리는 아무 가게에 들어가 젤라또를 하나씩 사들고 인파에 뒤섞여 밤거리를 걸었다.


한편 피렌체의 밤은 골목 골목 숨어있는 식당들을 찾아다니는 시간이기도 했다. 미식이 넘쳐나는 이태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식사 중 하나가 바로 피렌체에서 먹었던 티본 스테이크다. 온종일 걸어다닌 탓에 고기가 절로 생각나던 어느 날 스테이크를 먹기로 하고 식당은 익히 들어 알고있던 달오스떼로 정했다. 예약없이 무작정 찾아가 기다리는 사이 허기는 더 심해졌고, 자리가 나서 테이블에 앉자마자 “티본 1키로요!”를 외쳤다. 곧이어 서빙된 거대한 스테이크는 한조각 썰어 입에 넣자마자 그 명성이 단박에 이해될 정도였다.


달오스떼에서의 성공에 고무된 우리는 구글 리뷰에 의존해 찾아낸 또다른 레스토랑에 방문했다. 하지만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탓일까 식사는 극찬 일색이던 리뷰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런 평범한 경험이 있기에 좋았던 기억이 더 빛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피렌체에서의 마지막 저녁은 음식, 따듯했던 공간과 서비스 모두 완벽한 식사였다. 낭만으로 가득했던 피렌체와 어울리는 마무리였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일찌감치 숙소에 들어왔다. 다음날 아침 일찍 로마로 가는 기차를 타야했기 때문이다. 로마는 이번 여행의 마지막 도시였다. 떠날 채비를 위해 짐을 싸는 기분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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