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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나 Oct 09. 2023

바티칸 탐험기

13. 바티칸 박물관, 성 베드로 대성전

여행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싱가폴에 돌아가는 저녁 비행기를 타기 전 일정으로 바티칸 투어가 남아있었다. 투어는 가장 이른 시간으로 예약해 두었기 때문에 7시에는 호텔에서 출발해야 했다. 그러나 여행 기간 중 쌓인 피로와 전날 10시가 넘어서까지 이어진 저녁 코스의 여파로 알람이 울렸을 때에는 항복을 선언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럼에도 몸을 끝내 일으킨 건 세례를 받은 지 얼마 안 된 엄마에 대한 의리 같은 것이기도 했다.


바티칸에 가는 관광객을 수도 없이 봐서 지겨울 법도 했을 것 같은데, 그날 우리를 태운 기사님은 운전을 하는 와중에 길거리를 가리키며 신나게 이것저것을 설명을 해주셨다. 자동차 창문 너머로 거대한 장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사님은 바로 저곳이 바티칸이라고 알려주셨다. 장벽에 둘러싸인 나라라니, 흥미가 당겼다. 기사님이 우리를 내려준 곳은 이태리와 바티칸 사이의 국경이자 바티칸 박물관의 입구였다. 마치 택시를 타고 데이트 장소 앞에 내리는 것처럼, 바티칸 시국(市國) 앞에 내린 것이다.

싱가폴에서 챙겨 온 옷들로 무장하는 것으로는 어림이 없는 쌀쌀한 초겨울의 아침이었다. 오히려 추위 때문에 졸음이 달아난 것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진작 박물관 입구에 도착해 있는 부지런한 사람들은 이른 시간과 추위쯤은 문제없다는 듯 들뜬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날의 투어를 맡아줄 가이드 티나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재빨리 근처의 카페로 피신해 커피를 한 잔 주문했다. 뜨거운 커피가 담긴 컵으로 손을 녹이며 박물관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입장이 시작되었다. 로비에 들어가자마자 커다란 삼성 티비가 보여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고 있으니 티나가 박물관 입장권을 나눠줬다.

본격적인 투어 시작을 위해 피니의 안뜰로 가는 길, 티나는 잠시 자리를 비운 경비의 책상 위에 놓인 열쇠꾸러미를 가리키며 저것만 있으면 바티칸 박물관의 모든 문을 열 수 있다고 알려줬다. 매일 아침 동이 트기도 전, 개관 준비를 하는 경비를 따라다니며 박물관을 구경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대해 들은 기억이 났다. 아마도 그때 쓰이는 열쇠 중 하나인 것 같았다. 커피도 마시고 로비에서 몸도 녹이는 동안 기운이 되살아났기 때문일까, 오픈 준비가 모두 끝난 박물관에서 열쇠를 본 것뿐인데도 마치 흥미진진한 비밀 모험을 떠나는 기분이 되었다.

바티칸은 많은 면에서 독보적인 나라다. 현재 바티칸의 자리에 위치했던 네로 황제의 원형 경기장에서는 수많은 크리스찬이 순교했다. 초대 교황 성 베드로 역시 그런 순교자 중 한 명이었는데, 훗날 그가 묻혔다고 여겨지는 자리에 지어진 것이 바로 성 베드로 대성전이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바티칸은 그렇게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도를 가진 종교의 본산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갖게 되었고, 그 위상이 잘 드러나는 분야 중 하나가 바티칸이 소장한 예술품이다. 바티칸 미술관에는 역대 교황들이 수집하고, 또 신께 바쳐진 예술작품이 모이며 전세계에서 손꼽히는 규모를 자랑하게 된 것이다.


컬렉션이 방대한 만큼 바티칸 박물관에는 54 개에 달하는 갤러리들과 그 아래 테마에 따라 구분된 무수한 방이 미로처럼 얽혀있었다. 우리는 티나를 따라 널리 알려진 작품을 위주로 빠르게 둘러보기로 했다.


피냐의 안뜰에 위치한 솔방물 정원은 바티칸 박물관을 찾는 이라면 누구나 지나게 되어있는 곳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읽었던 무수한 후기에서 보고 또 봤던 솔방울 앞에 드디어 우리도 설 차례가 된 것이다. 솔방울을 실제로 마주했을 때 들었던 마음은 '해냈다'는 성취감 조금, 그리고 원하던 것을 이룬 뒤에 따라오곤 하는 아쉬움이었다. 앞으로 남은 몇 시간 동안 바티칸에서 계획한 퀘스트 몇 가지를 차례로 깨고 나면 남은 미션은 싱가폴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는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놓아줘야 할 때가 있는 법. 시한부 모험가의 본분을 다하고자 힘차게 박물관 내부로 입장했다.

티나는 우리를 이끌고 갤러리와 갤러리를 넘나들며 박물관 구석구석으로 안내했다. 키아라몬티 갤러리를 지나 비오 클레멘스 갤러리에 들어섰을 때는 로마와 바티칸의 모습이 내려다보이는 테라스에 잠시 멈춰 섰고, 벨베데레 정원으로 이동해서는 바티칸 미술관의 기원이라는 라오콘 군상을 감상했다. 우피치 미술관에서 모작을 보면서 바티칸에 가면 진품을 볼 수 있겠다고 했는데, 벌써 그만큼의 시간이 지난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보수 작업 요청을 거절하며 있는 그대로 완벽하다 극찬했다는 토르소도 눈에 직접 담는 호사도 누렸다. 


좁은 통로 구조의 타피스트리 화랑과 지도의 화랑은 작품이 걸려있는 벽을 그보다 화려한 천장이 덮고 있었다. 곳곳에 멈춰서서 고개를 젖히고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과 울려 퍼지는 말소리로 어수선했지만, 현란하면서도 아늑한 통로는 그런 어수선함조차 특별하게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라파엘로의 방에서는 4개 구역을 빼곡히 채운 형형색색의 프레스코화로 눈이 황홀했지만 끊임없이 몰려드는 사람들에 밀려 그 맑은 색감을 좀 더 천천히 감상할 수 없었던 게 아쉬웠다. 기도의 힘으로 화재가 진압되는 기적을 그린 보르고 화재의 방까지 떠밀리듯 구경하고 나오니 마침내 바티칸 박물관 관람의 마지막 순서로 시스티나 성당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티나는 성당으로 향하는 복도에서부터 정숙해줄 것을 신신당부했다. 그 존엄을 지키기 위한 법석이 유난스럽다고 느껴질수록 기대치는 높아져만 갔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여행 가는 사람 티를 한껏 내며 <바티칸 미술관에서 꼭 봐야 할 그림 100>을 아껴 읽을 때, 그중에서도 책갈피를 꽂아놓고 몇 번을 읽곤 했던 시스티나 성당에 입장할 시간이었다. 


성당 내부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에만 의존하여 어두웠다. 사진촬영은 물론 이야기조차 허용되지 않는 곳의 고요한 공기는 성당의 신성함을 한층 고조하는 효과가 있었다. 근질거리는 손에 못 이겨 카메라를 슬쩍 꺼내드는 관람객을 제지하기 위해 순찰을 돌던 감시 요원은 여기에 권위적인 분위기마저 더했다. 의도한 바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성당에서 보낸 15분 남짓의 기억은 강렬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공기로 채워진 방의 가장자리를 따라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있으면 머리 위에서 세기의 걸작이 내뿜는 아우라가 느껴지는 듯했다. 천장과 사방의 벽으로 고개를 돌리는 족족 눈에 들어오는 압도적인 작품에 삼켜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성당 안은 고요했지만 동시에 수많은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각자의 감상은 달랐겠지만 하나같이 경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오랜 바람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한 시간, 한 공간을 공유한 익명의 동지들 덕분에 시스티나 성당에서의 시간은 더욱 특별했다.

티나와 다시 만나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향할 때에는 이미 바티칸에 입성한 지 2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박물관을 돌아다닌 터라 몸은 이미 녹초가 된 상태였다. 성전에 입장하기 전 잠시 성 베드로 광장에 나와 쉬는 시간을 가졌다. 흐렸던 하늘이 조금씩 개고 있었다. 찬 공기를 폐 가득 들이마시며 기지개를 켜고 나니 다시 기운을 내 마지막 퀘스트를 깨러 갈 준비가 된 기분이었다.

성전 내부는 말 그대로 휘황찬란했다. 다른 성당에서도 흔히 보던 대리석이나 스테인글라스, 혹은 성화(聖畫) 수준이 아니었다. 10층 건물 높이의 천장까지 황금빛으로 채운 성 베드로 대성전의 화려함은 신의 영광과 가톨릭의 권위를 세상에 전하는데 아주 효과적인 수단으로 보였다. 건설에 120년이 걸리고 공사비 충당을 위해 면죄부까지 발행해야 했다는 내막에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였다. 아름다움이 신을 향한 경배의 척도가 된다면 이곳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곳임에 틀림없었다.

성전 곳곳을 채운 성물들 역시 비범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성 베드로의 의자라고 명명된 의자는 그가 앉았다는 의자의 나무 조각이 재탄생한 것이라는 사연이 있었고, 37톤에 달하는 청동 조형물 발다키노의 아래에는 성 베드로의 무덤이 있다고 했다. 2천 년 전 순교한 베드로 무덤의 진실을 확신할 수 없을진 몰라도 성전의 한 구석에는 인노첸시오 11세 전 교황의 유해가 조금은 으스스한 모습으로 전시되어 있기도 했다. 

성전 중앙부를 받치는 쿠폴라의 둘레를 따라 새겨진 마태복음의 문구는 이 공간의 기원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이런 정체성 위에 세워진 성 베드로 대성전은 크리스찬에게 얼마나 벅찬 경외감을 안겨줄까. 그 느낌을 아마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예수님의 희생과 인간의 참회의 역사가 고스란히 체현되어 있는 이곳은 비종교인인 나에게도 다른 종류의 감동을 남겼다.

성전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피에타상 앞이었다. 순백색의 대리석으로 그려낸 희생과 연민은 성전에 있는 그 어떤 것보다 절절했고 아름다웠다. 주변을 에워싼 인파에는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지만 피에타상과 마침내 마주했을 때의 기억만큼은 정지된 순간처럼 또렷하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아들의 시신을 품에 안은 어머니 앞에서는 누구라도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바티칸에서의 모든 일정을 끝내고 다시 성 베드로 광장으로 나왔다. 앞서 들렀을 때는 보이지 않던 오벨리스크가 눈에 들어왔다. 고대 이집트 태양 숭배의 상징인 돌기둥이 바티칸에 있다는 사실이 어딘가 어색했지만 광장의 한가운데에 태연하게 자리한 모습이 한편으로는 자연스럽기도 했다. 오벨리스크의 꼭대기에 십자가를 꽂아 슬쩍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린 수법은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듯했다.


기념품 가게에 들러 엄마에게 선물할 묵주를 하나 사는 것으로 모든 임무를 완수한 모험가는 이제 정말로 바티칸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을 하나 넘는 것으로 우리는 로마로 되돌아왔다.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시시한 국경 넘기였다. 

로마에서의 마지막 식사 메뉴를 고심하던 끝에 결국 찾은 곳은 근처의 중국집이었다. 지난 2주 간 내리 먹은 이태리 음식이 질리지 않는다고 스스로 믿는데 거의 성공하는가 싶었던 우리지만 구글맵에서 중국집을 발견한 순간 익숙한 조미료 맛의 유혹을 떨칠 수 없었던 것이다. 한적한 골목 한켠에 자리한 가게는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중국 남자아이가 유창한 이태리어로 주문을 받고 아이의 아빠는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곳이었다. 예로부터 로마의 강점은 융화하는 힘이 아니었던가. 중국어와 이태리어가 섞인 대화가 오가고 성모 마리아상과 홍등이 나란히 걸린 식당에서 먹었던 볶음밥은 로마 여행의 마무리로 완벽한 식사였다.


뜨끈한 음식을 배불리 먹고 나오니 목덜미까지 파고드는 찬바람에도 기분이 좋았다. 쌀쌀한 공기를 만끽하며 조금 걷다가 호텔로 돌아가는 택시를 불렀다. 이제는 정말 돌아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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