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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a Seed Apr 16. 2022

부다페스트 이주 9개월 차

내가 서울에 두고  온 것과 여기서 찾은 것

"9개월 전 인천공항을 떠나

부다페스트로 올 땐

그땐,

몰랐다."


나이 마흔셋에 서울을 등지고 남의 나라에 가서 산다는 게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얻게 되는 것인지.

힘들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 힘듦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나이를 잊고 새로운 삶을 살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나이를 잊고 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었다.


이제 부다페스트로 이주한 지 9개월쯤 되니 하나씩 몸으로 느끼고 있다.

내가 서울에 두고 온 것과 여기서 찾은 것을.


먼저 내가 서울에 두고 온 것들, 그 구체적 목록들.


1. 새벽 배송과 로켓 배송

유럽이 아무리 느려도, '에이~ 설마.... 요즘 세상에 택배가 안 되는 곳이 어디 있겠어?'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부다페스트에도 택배라는 것이 있긴 하다. 문제는 택배 기사님이 배송을 왔다가 집에 사람이 없으면 그냥 간다는 것이다.


'왜죠? 왜 가죠? 그냥 문 앞에 두고 가세요. 제발요....'  


오래된 유럽의 도시들이 그러하듯, 이곳 부다페스트 역시 구도심의 오래된 건물들은 공동현관에서 문을 열어주어야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다. 이때 집주인이 집에 없어 공동 현관문을 안 열어주면 그냥 물건을 길바닥에 놓고 가야 하는 상황이다. 유럽에서 길에 물건을 둔다? 그건 그냥 훔쳐가라는 신호다. 그러다 보니, 택배를 받으려면 꼭 집주인이 집에 있어야 한다. 물론 사전에 택배를 언제 받을 것인지 물어보긴 하나, 정해진 시간에 올리 만무하고 언제 올지도 모르는 택배 기다리느냐 하루 종일 꼼짝달싹 못하고 집에 붙어있으면 부화가 치민다. 재수 없으면 하루 종일 기다려도 안 온다. 운이 좋아, 택배 기사님이 집 앞에서 전화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영어로 전화를 받으면 끊고 그냥 간다. 더 재수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이다. 결국 택배를 돌고 돌아, 사는 동네와 멀리 떨어진 우체국에 맡겨졌다는 우편물을 받는다. 그럼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서 남의 동네에 있는 우체국에서 그 무거운 짐을 들고 집에 온다. 욕이 나오는 순간이다. X~! XX!!! 진정성을 가득 담아.


아, 두고 왔다. 새벽 배송과 로켓 배송. 나의 사랑스럽던 샐러드 구독, 반찬 구독, 계란 구독 모두 안녕.


2. 인터넷

한국에서 말하는 인터넷과 이곳 부다페스트에서 말하는 인터넷은 아마도 다른 명사인가 보다. 인터넷이 잘 안 된다. 그것도 학교에서 수업을 하는데 인터넷이 안된다. 영화과 수업인데. 영상을 필수로 봐야 하는데 인터넷 연결이 안 된다. 문제는 400년 된 학교 건물의 구조이다(참고로 신랑이 다니는 학교는 돈 많은 사립학교여서 최신식 설비를 갖추어서 이런 걱정은 없다). 천장이 족히 4미터는 넘고, 벽두께가 상상을 초월해서 감히 인터넷도 침범할 수가 없다. 강의실마다 인터넷을 설치하지 않는 이상 동네 카페의 인터넷을 훔쳐 쓰는 것처럼 인터넷이 잡힌다. 놀랍다. 이토록 인터넷이 잘 안 터지다니.


에이, 그래도 집에서는 좀 괜찮겠지 하고 생각했다. 우린 그래도 부다페스트에서 최신식 '미국식'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이사 온 지 9개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신랑과 나는 놀란다. 구글에서 원하는 정보를 검색하고 해당 사이트를 클릭하면 접속이 되지 않아서 당황한다. 혹시 해당 사이트가 없어졌나 걱정하는 순간, 인터넷은 '메롱~ 속았지?' 하면서 해당 사이트가 아주 천천히 슬로 모션처럼 등장한다.


그래, 인터넷 속도. 인터넷 접속. 그 무수했던 무료 와이파이. 너희들도 안녕.    


3. 행정 처리

행정 처리라는 단어를 쓰는데 화가 올라온다. 꾹, 꾹 화를 내린다. 느려 터져도 이렇게 느려 터질 수가 있나! 되뇌자, 되뇌자, 나는 유럽에 있다. 나는 유럽에 있다. 아브라카타브라, 나무아미타불, 아멘.....


작년 9월 초에 거주증(비자)을 신청했다. 법적으로 헝가리에 도착하고 90일 안에 거주증을 받아야 합법적으로 머물 수 있다. 가져오라는 온갖 서류를 바리바리 싸 들고 이민국에 갔다. 예약을 하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돌 콘서트를 연상케 하는 긴 줄이 있었고, 신랑과 나는 몇 시간을 오들오들 떨면서 기다렸다가 간신히 이민국에 들어갈 수 있었다.  


참고로 나는 헝가리 정부에서 초청한 장학생이어서 신분이 철저히 보증된다. 당연히 90일 안에 나올 줄 알았다. 당연한 건 없다. 85일쯤 되었는데 소식이 없다. 이민국에 다시 찾아갔다. 또다시 줄을 섰다. 한 시간, 두 시간, 하염없이 기다린다.  이민국 담당자를 만났더니 아무 문제가 없는데 왜 왔냐고 물어본다. 지금 나와 신랑의 거주증은 공장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이상한 소리를 한다.


이제 곧 여기 온 지 90일이 넘는데, 아직 거주증을 못 받았는데 문제가 없다니. 따졌다. 만약에 90일이 지났는데도 거주증이 안 나오면 어쩔 거냐고! 세모눈을 뜨고 따졌더니, 동그란 눈을 하고 대답한다.

그럼 거주증이 나올 때까지 헝가리 밖을 안 나가고 기다리면 된다고. 언젠가는 나온다고. 그럼 된 거 아니 나며.

기이한 논리에 답을 못하고 집을 터덜터덜 왔다. 거주증은 91일째가 돼서 나왔다.  


작년 9월 초에 신청한 학생증은 12월이 넘어서 나왔고, 건강보험증은 1월에 나왔다. 신청한지도 잊고 있었다. 신청하고 잊을 때쯤이면 결과물이 온다. 그래 너희들 말이 맞다. 오긴 온다.


뭐, 대충 이렇다. 요약하자면 이곳은 한국에 비해 모든 것이 느리고, 사회 인프라가 구식이라는 것.


그럼, 이제 좋은 얘기.

부다페스트로 이주해서 내가 찾은 것들, 그 구체적인 목록.


1. 사계절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찾았다. 서울에 살 땐 몰랐다. 봄이 왔는지, 겨울이 갔는지. 나는 여기서 계절을 만끽하면서 순간순간을 느끼면서 산다. 봄비 냄새에 취해, 가을의 부드러운 바람 향에 취해서. 이성이 해결하는 여러 가지가 느린 곳이지만, 감성이 요구하는 시간은 충만한 곳이다.

뾰족했던 마음이 순해지고, 유연해지면서 하늘을 보는 시간이 많아지고 풍경을 보고 멍 때리는 시간이 늘었다.  


2. 와인, 치즈, 커피

그래, 한식은 두고 왔지만 내가 너희들을 찾았구나. 에헤라디야~ 좋구나! 와인, 치즈 천국이 따로 없다. 여기서 5000원짜리 와인만 사도 퀄리티가 매우 훌륭하다. 감히 만원을 넘는 와인은 아주 특별한 날에만 마신다.

또 갖가지 치즈, 햄류가 너무 싸다. 마구마구 먹어도 비싸지 않다. 인스타에서 봤던 치즈 플레이트는 이런 곳에서 먹는 것이구나. 서울에서는 고급 치즈 한 덩어리 사려면 만원이 족히 넘었는데 여기는 돈 만원이면 쟁반 하나를 채우는구나~! 신나는 일이다. 매일 맛있는 치즈를 이렇게나 많이 먹을 수 있다니.


그리고 커피.

서울은 물가가 비싸다 보니, 하루에 커피를 세네 잔 사서 마시면 밥 값보다 커피 값이 더 나온다. 애정 하는 학교 므헤이 카페에선 아주 맛있는 카푸치노 한잔이 한화로 2000원 정도 한다. 부다페스트 시내에 위치한 카페에서도 카푸치노 한잔의 가격은 3000원 정도 수준으로 매우 합리적이다. 얼마 전, 친구와 함께 바치 거리에 위치한 리츠 칼튼 호텔 카페에서 홍차와 디저트를 하나 먹었는데 한화로 9000원이 안 나왔다. 럭셔리한 분위기에 고급 서비스, 맛있는 홍차와 이쁜 디저트를 매우 합리적인 가격에 즐겼다.


참고로, 부다페스트의 외식 물가는 한국과 그렇게 차이 나지 않는다. 학교 식당이나, 테이크 아웃 전문점은 일인당 6000원 미만으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고급 식당이 아니어도 자리에 앉아서 웨이터의 서빙을 받아 주문하는 곳은 최소 일 인당 만원 이상이 나온다. 그런데, 최고급 식당의 경우 한국보다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훌륭한 음식을 즐길 수 있다. 포시즌, 리츠칼튼, 인터콘티넨탈, 힐튼 등등 5성급 호텔의 레스토랑들은 평일 비즈니스 런치를 이용하면 일 인당 3만 원 미만에서 코스 요스를 즐길 수 있고 꼭 비즈니스 런치가 아니더라도 일인당 5만 원 정도의 예산으로 훌륭한 식사를 할 수가 있다. 단, 와인을 마시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3.  부모님, 친구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부모님과 친구들, 분명히 서울에 두고 왔는데, 그들을 향한 내 마음은 서울에서 보다 애틋하다. 이상하게 부모님과는 일주일만 함께 있으면 투탁 투탁 싸우고 잔소리하고 그러는데, 또 멀리 있으면 이렇게 애틋할 수가 없다. 역시 찐 가족이다. 멀리 있어야, 멀리서 봐야 좋다. 이곳에 온 이후, 부모님과 나는 서로를 이맇게 사랑할 수가 없다.


그리고 친구들. 인간관계가 그리 넓지 않은 나는 친구의 수도 적다. 워낙 남자 같은 성격이어서 그런 것 같다. 결혼 전에는 그래서 남자 사람 친구들과 친했는데 이제 그 남자 사람들도 다 결혼하고 나도 결혼을 하고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전화하는 것, 문자 하는 것 그리 좋아하지 않고 할 말이 있으면 만나서 하는 편이다. 그래서 무뚝뚝하고 센스 없기도 하다. 가끔씩 베프의 생일도 까먹는 아주 못된 친구이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까지 내 주변에 있는 나의 친구들, 여기서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아끼게 된다. 언젠가 그들이 여기 부다페스트로 오면 함께 다닐 곳들, 맛있는 것 사줄 곳들, 그들의 취향에 맞는 상점들... 등등 그들의 향한 마음이 더 깊어진다.



쓰고 보니, 두고 온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은 것 같은 기분이다.

앞으로 또 무슨 일이 벌어지지 또 모르지만, 그래도 항상 얻는 것을 더 많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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