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Nora Seed
Mar 30. 2022
부다페스트에서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2022-03-23
부다페스트로 이주한 지 약 8개월 차, 이렇게 저렇게 잘 피해 다녔는데 결국 코로나에 확진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코로나 잠복기 동안 몸이 매우 무기력했다. 그땐 PMS일 것이라고 생각하여, 애꿎은 호르몬만 탓했는데 그게 코로나가 온다는 징후였다니.
아무튼 주말 내내 무기력과 싸우다, 지난 월요일 오전 코끝이 찡하더니 코막힘 증상이 시작되었다. 단순 감기인가 싶어 서울에서 챙겨 온 종합 감기약을 꿀꺽 삼키고 잠을 청했다. 코로나는 마치 종합감기약 따위에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오한과 발열을 번갈아가며 선사했다. 둘 중에 하나만 하지. 무지하게 추웠다가 무지하게 더웠다가, 이게 한 시간 안에 사람이 겪을 고통인가? 밤에 잠을 잘 수 없는 극한 추위와 극한 더위를 겪다가 아침이 왔다.
콧물이 중력을 입증하듯, 줄줄 수돗물을 틀어놓은 것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티슈 100장을 밤새 다 쓰는 기염을 토하며 내 코끝은 헐었다. 아무래도 코로나에 걸린 것 같아 이튿날 새벽 검진센터로 향했고, 결국 확진 통보를 받았다. 현재 헝가리는 코로나 규제를 전면 해제한 상태여서 코로나에 확진되었다고 해서 특별히 관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3월 초부터인가 노 마스크가 병원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허용되며 코로나에 확진된 사람은 대부분 집에서 치료하고 회복되면 격리가 해제되어 외부 출입이 가능하다. 중증인 경우에는 응급실로 가지만, 대부분 경증이나 조금 심한 감기몸살 정도이니 재택치료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외국에 살면서 병원 응급실에 가야 하는 것만큼은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 중의 하나였다. 조금 심한 감기몸살이라고 자체 판단하고 집에서 감기약과 진통제로 버텼다.
2021년 8월 처음 부다페스트에 도착했을 때, 한국과는 다른 헝가리의 코로나 대처에 매우 놀랐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코로나 걸린 것이 큰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코로나에 확진되면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작년 여름 부다페스트로 이주하기 직전에 거주하던 아파트에서 확진자가 나왔고 공포도 그런 공포가 없었다. 수 백세 대가 살던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여서 사실 같은 동에서 확진자 나왔으면, 해당 동에 사는 주민들은 거의 확진자와 동선이 겹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녔으니까. 관리사무소에서는 방송을 통해 각 세대별로 문을 열고 환기를 시킬 것을 당부하고 혹시라도 증상이 있는 사람은 꼭 검진을 받으라는 공포스러운 방송을 거의 시간별로 했다. 요란한 앰뷸런스 소리, 확진자가 다녀간 동선을 모두 소독을 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게 조심조심 부다페스트에 왔는데 이게 웬걸? 리스트 공항에서 예약한 숙소로 가는 길에 마스크를 안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속속 들었왔다. 작년 여름, 헝가리는 코로나 규제가 많이 풀려 실외에서 마스크 착용이 의무가 아니었다. 마스크를 안 쓰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얼마만인지, 일상을 보는 것이 이렇게나 신기한 일이지 놀라울 정도였다. 열흘의 자가격리가 끝나고, 부다페스트 시내로 나왔을 때 이미 수많은 관광객(주로 유럽이나 미국에서 온)들이 노 마스크로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마치, 한국에서의 코로나 규제가 꿈 이기라도 했던 것처럼...
그렇게 작년 9월 학기가 시작되고, 같은 과 친구가 코로나에 확진되어 수업에 못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 머릿속에 스치던 생각,
'아, 망했다. 이제 당분간 학교 못 오겠구나. 단체로 코로나 검사받으러 가고, 자가격리가 시작되겠네... 수업은 온라인으로 바뀌겠군... 뭐, 학교에서 지침이 내려올 테니 하라는 대로 해야지...'
이렇게 생각하고 심란한 마음에 수업을 듣는데, 해당 수업의 교수도 같이 수업을 듣는 친구들도 특별한 반응이 없는 것 같았다. 다만 '오, 불쌍한 페이만. 빨리 나아서 학교에 와야 할 텐데...'정도의 대화만 서로 나눌 뿐. 수업이 끝나고 아무래도 이상해서 친구 소피에게 물었다.
"소피, 이제 우리 어떻게 해야 돼?"
"응? 뭘?"
"아니, 페이만이 코로나 걸렸잖아. 우리도 가서 검사받아봐야 하는 거 아니야?"
"오! 켈리 혹시 증상이 있어? 그럼 가서 꼭 받아 봐."
"아니, 나 증상 없는데...."
"오! 그럼 그냥 있으면 돼."
같은 반 친구가 코로나에 확진되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혹시라도 증상이 있는 사람들은 각자 알아서 검사받고 그게 아니면 그냥 평상시대로 학교에 오면 되는 거였다. 이곳 헝가리에서는 코로나는 집단의 문제이기 이전에 개인의 문제였다. 그러니까, 만약 코로나에 확진되었다면 누구한테 감염되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확진된 개인 스스로가 방역에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안 썼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작년 겨울, 유럽에서 한참 코로나가 재 확산되었을 때 헝가리도 예외는 아니었고 마스크 실내 착용이 다시 의무화되었었다. 이렇게 강화되었던 규제는 올 3월 초 전면 노 마스크로 바뀌면서 병원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되는 코로나 이전이 일상으로 돌아왔다. 물론, 공교롭게도 나는 노 마스크를 실행하고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코로나에 걸렸다. 아마도 꽤 많은 무증상자 혹은 경증 환자들이 마스크를 안 쓰고 활보하고 다녔으리라. 하지만 누굴 탓하랴. 아무리 규제가 풀렸어도 마스크를 쓰고 안 쓰고는 나의 선택이었거늘.
그렇게 나는 이곳 부다페스트에서 코로나에 확진되었다. 헝가리 정부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어떤 연락도 없었고 그냥 집에서 감기약을 먹고 한 오일 정도 심하게 아팠다가 회복하였다. 코로나에 확진 혹은 완치되어도 학교에 특별히 어떤 서류를 제출한다던가 하는 일은 없다. 그저 담당 교수에게 연락하여 사정 설명하고 스스로 다 나으면 학교로 복귀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일주일 만에 음성 판정을 받았고 다시 학교에 나갔다. 일주일을 아프고 밖으로 나왔더니, 부다페스트에 봄 햇살이 가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