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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a Seed Jun 25. 2022

나는 처음 태어났는데 왜 두 번째예요?

왜 때문이죠?

" 이치에 맞지 않는 것투성이다.

아니, 내가 딱 처음으로 세상에 으앙~하고 나왔는데. 두 번째란다. 기가 막혀서.


태어나니

사람들은 나를 둘째라 부르고,

나는 항상 두 번째다.


간식을 줄 때도 두 번째에 주고,

용돈을 줄 때도 두 번째에 준다던가 하는 식이다.

게다가 내 뒤로 두 명이나 더 있는 건...... 어쨌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엄마는 공정하고 공평하게 우리를 똑같이 사랑한다고 매번 말하지만.

내 입장에서 엄마의 사랑 100퍼센트 중 75퍼센트를 뺏긴 셈이다.

엄마의 공정함에 난 항상 25퍼센트만큼 사랑받는 느낌이었다.


엄마는 항상 다른 형제자매의 엄마였다가

딱 1/4 만큼만 내 엄마가 된다.


엄마를 사랑하는 내 마음은 100프로인데

엄마의 사랑은 25프로 라는걸

엄마는 왜 모를까?" 




나는 둘째로 태어났다. 사춘기 때까지는 이렇게 저렇게 내 속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 엄마에게 투정도 많이 부렸는데 어느 정도 머리가 크고 나서는 그만두었다. 포기했다고 하는 편이 맞겠지. 그때 나는 저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도 없었고, 무엇보다 애를 넷이나 키우는 엄마와 단둘이 앉아서 엄마가 주는 25프로의 사랑에 대해서 또박또박 감정에 휩슬리지 않고 말할 시간 자체가 없었으니까.


유학을 오기 전, 나는 사십 년 동안 묵혀두었던 내 속내를 엄마에게 말하기로 결심했다.


"엄마, 얘기 좀 해."


일흔이 된 엄마는 조금 긴장한 눈치였다.


"엄마, 정서방이랑 나랑 유학 가려고 준비 중이야. 유럽으로. 공부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은 없어. 현지에서 취업하고 거기서 살려고."


"그래. 너희 똑똑하니 어디 가서든 잘 살 거야. 좋겠다. 부럽네."


"응. 잘해야지. 그리고 엄마, 아무래도 유럽으로 가면 엄마랑 아빠랑 자주 못 볼 거야. 한국 나오는 게 어디 쉽겠어... 그래서 엄마, 유학 가기 전에 자주 내려올게. 한 달에 한 번은 나주에 내려올 생각이야."


"그래, 그럽시다. 근데 바쁜데 그게 되겠어?"


"응. 일정 조정해봐야지. 그리고 하나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응. 말해봐"


"엄마, 앞으로 나랑 만날 때는 내 얘기만 했으면 좋겠어. 엄마는 자식이 네 명이지만, 나는 엄마가 한 명이야. 나랑 있을 때는 내 엄마만 해줘. 그리고 또 동생들이랑 있을 때는 절대 내 얘기, 정서방 얘기하지 말고 걔네들 이야기만 해. 나랑 어디를 놀러 갔다느니, 정서방이 무슨 선물을 해줬다느니, 그런 얘기 하지 말라고. 동생들이랑 있을 때는 동생들 이야기만, 나랑 있을 때는 나랑 엄마 이야기만 해.


동생들이랑은 내가 이야기해. 내 이야기는 내가 해. 엄마가 전달하지 않아도 돼. 내가 보니까, 가족 사이의 오해나 갈등, 문제들이 다 여기서 오는 것 같아. 엄마한테는 다 똑같은 자식이어서, 자식들이 다 같은 마음인 줄 아는데. 절대 아니라고. 알겠지?"


"그래, 알겠어"


"응, 엄마. 가족끼리도. 이제 우리 다 출가했잖아. 가족끼리도 선을 지켜야 잘 지낼 수 있더라고."


그렇게 사십 살의 나는 용기를 내어 엄마에게 부탁했다. 내 엄마만 되어 달라고.

그 이후 우린 아주 잘 지낸다. 엄마와 나는 만날 때마다 알콩달콩 우리 이야기를 하면서 달달한 데이트를 한다. 스타벅스에서 바닐라 라테와 케이크를 먹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고, 맛집 가서 밥 먹고 함께 쇼핑하고 마사지받으면서.  좋은 추억이 겹겹이 쌓여가니 예전에 서러웠던 기억들도 조금씩 사라진다.


부모가 되는 일, 그리고 자식이 되는 일.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없지만, 그래도 내 존재의 근원인 그들을 빼고 나를  설명할 수 없으니.... 되도록 좋은 기억만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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