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 위 잡초처럼
'만약 외계인을 만나면 어쩌지?'
어린 시절 ET를 보며 상상했다.
쭈글쭈글 번데기 같은 피부, 괴상망측하게 큰 눈, 부조화의 끝을 보여주는 체형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말을 할 수 없는 외계인. 이후 외계인이 나오는 영화나 만화책을 읽은 밤이면 무서웠다.
'만약 외계인을 만나면 어쩌지?' 밤 새, 이불을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마흔을 훌쩍 넘었다. 나는 더 이상 외계인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아니, 외계인이 있다고 믿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2021년 8월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이주를 하고 알았다.
나는 외계인이다.
외국에서 일정 기간이상 살게 되면, 누구나 '이민국'이라는 곳을 가야 한다. 이민국에 가서, 내 신상을 보고하고 당국에 공식적인 장기 체류에 대한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에 추방당한다.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당연한 것이니.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적응되지 않는 곳이 있다. 왜 어릴 때 귀신보다 더 무서운 엄마가 있는 친구네 집을 놀러 가는 거랄까? 아무것도 잘못한 것 없는데 괜히 주눅 드는 곳 말이다. 나의 경우 '이민국'이 그렇다. 이주한 지 3년이 지나도 '이놈의 이민국'은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한국인의 경우, 헝가리에 입국할 때 별도의 비자가 필요 없다. 쉥겐 조약에 따라 90일 동안 비자 없이 체류할 수 있다. 유학이나 취업 등으로 90일 이상 체류해야 하는 경우, 도착하여 90일 안에 이민국에 가서 '헝가리 거주증(Residence Permit)'을 받아야 한다.
나 역시 장기 체류를 위해 헝가리 거주증에 필요한 서류를 모두 챙겨서 이민국을 방문했다. 헝가리 정부에서 초청한 장학생 신분이니 큰 문제없을 것이라 생각했다(없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당신네 정부가 나를 초창했으니!).
항상 그렇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
이민국에 도착하자마자 '오 마이갓'을 외쳤다. 끝없이 이어지는 줄! 건물 밖까지 긴 대기줄이 있었다. 거주증 신청은 고사하고, 이민국에 들어가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목이 빠져라 신청서를 들고 줄 서 있는 외국인들의 사정은 아닌지 모르는지 이민국은 오전 8시에 문을 열고 2시면 문을 닫았다.
2021년 9월 초, 처음 방문한 헝가리 이민국에서 남편과 나는 접수도 못하도 돌아왔다.
"내일 다시 오자. 8시에 문 여니까, 새벽 6시에 와서 줄 서자."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 다음날 새벽 5시 알람을 맞추었다.
익일, 새벽 6시경 도착한 이민국.
우리가 처음일리 없다. 더 부지런하고 더 급박한 상황에 있는 이들이 먼저 와 있었다. 서른 명쯤 되려나. 이들은 헝가리에 오래 체류한 듯 보였다. 오랜 기다림이 익숙한 듯, 간이 의자를 들고 와 핸드폰에 다운로드하여 온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그런 것을 알턱 없는 우리 부부는 떙볕에서 하염없이 기다렸다. 오전 8시 이민국 문이 열리고 하나둘씩 입장. 코로나19 시절이라 거리두기 관계로 최소한의 인원만 입장시켰다. 챙겨간 물과 에너지바를 먹으며 하염없이 기다리는데 이민국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Budapest Alien Policing"
부다페스트 외계인 관리국
Alien = 애일리언 = 외계인 = 외국인
영어로 에일리언의 사전적 의미는 외계에 사는 생명체를 이르는 말이기도 하지만, 사전의 다른 의미에는 조금은 부정적인 의미를 담아 "외국인"이라는 뜻이 있다. 알고 있었지만, 체험하니 기분이 오묘했다.
남편과 나는 외계인 관리국 앞에 있었던 것이다. 처음 보는 외계인에게 이 세상에 친절할 이가 누가 있겠는가?
그 외계인이 나를 잡아먹을지도, 아무 이유 없이 괴롭힐 지도, 납치를 해갈지 모르는 일이다.
가끔 영화에서는 외계인과 친구가 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외계인은 괴물이다. 내가 속한 문화와 사회의 범주를 벗어나는 예측불가능한 폭탄 같은 존재이다.
외국인 역시 동일하다. 헝가리 문화와 사회의 범주를 벗어나는 예측불가능한 이들인 것이다.
헝가리 입장에서는 자신의 나라를 떠나 끝내 헝가리로 이주한 이들에 대한 신분을 철저히 조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수 천년 역사 속 타민족의 침략과 지배를 받았던 이곳에서 외국인에게 친절할 리 만무했다.
주위를 둘러봤다. 전 세계 온갖 인종이 뒤 섞여 있었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언어가 오고 간다.
남편과 나, 우리도 그들 중 하나였다. 동아시아인,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 모국어는 한국어.
우리는 이곳에서 외계인이다.
그날 오후 늦게나 접수를 할 수 있었다. 언제쯤 거주증을 받을 수 있냐는 물음에 "가다려'라는 퉁명스러운 대답만 돌아왔다. 그렇게 기다렸지만 거주증은 법적 기간 내 나오지 않았다. 이민국에 가서 문의를 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같다. '기다려. 좀 늦나 봐. 우리가 바빠.'
그렇게 이민국을 방문한 지 3년. 여전히 그들은 한 번에 거주증을 내어주는 경우가 없다. 제출하라는 서류를 다 제출하고 규정에 따라 진행해도 매번 서류가 누락되었다고 한다. 절대 약자가 이런 걸까? 그냥 그들이 바쁜 것도 내 잘못이고, 이민국일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 것도 다 내 잘못이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쌓이는 분노를 어찌할 수 없다. 그렇게 우리의 첫 번째 거주증은 끝내 헝가리 체류 100일이 조금 지나 우편으로 배송됐다.
이후에도 우리는 수차례 이민국에 방문했다.
원하는 서류를 모두 다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 가도, 그들은 말한다.
'서류가 누락됐는데.'
휴~ 깊은 한숨을 쉬고 외계인인 내가 말한다.
'네, 다시 올릴게요.'
외계인으로 산다는 건 이런 것인가?
이민국에 다녀오는 길에, 아스팔트를 비집고 피어난 잡초를 보았다. 뽑아도 뽑아도 자라는 잡초의 생명력에서 조금의 위로를 얻었다. '그래. 나도 너처럼 끈질기게 살아남을 테야... 너와 나, 우리 외계인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