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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a Seed Aug 29. 2024

기다렸던 소식이 도착했습니다.

헝가리 정부 초청 박사 장학생 합격

6월 말, 기다렸던 소식이 도착했다.


2024 헝가리 정부 초청 장학금 수여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앞으로 4년간 박사 학위 과정에 필요한 학비 전액, 건강 보험, 숙박비, 생활비 등을 헝가리 정부에서 지원해 드립니다.



이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던 소식인가!

무수히 상상했던 미래의 내 모습에 마침내 도착했을 때, 그 희열이란 형용할 수 없다.

나는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 트럼펠린 위를 날아다닌다. 내가 하늘에 닿을 수 있을 만큼 힘차게 발을 굴러서. 하늘 끝까지 올라가는 기분이란!







2020년부터 지원을 시작했으니, 헝가리 정부 초청 박사 학위 장학생으로 선정되기까지 걸린 시간이 근 5년이다. 2020년에는 아무것도 몰랐다. '한국에서 석사학위가 있으니 박사지원이 가능하겠지?'하고 지원했다가 지원서도 내밀지 못하고 탈락했다. 헝가리에서 박사 학위 지원 요건 중의 하나가 '박사 지도 교수의 입학 허가서'이다.  그런데 일면식도 없는 나를.... 무엇을 보고 어떤 교수가 입학 허가서를 덜컥 내어 주겠는가? 당시 헝가리  유수의 대학 교수들에게 수 없이 이메일을 써서 연구 계획서를 보내 입학 허가서를 요청했지만 그 어떤 교수도 응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원도 못해보고 거절당했다.


2021년에는 계획을 바꿨다. 석사학위부터 다시 시작하는 방법 밖에!

석사과정 장학생에게는 교수 입학 허가서가 필요하지 않았다.

2021년 헝가리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석사학위에 지원했고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 2023년 여름, 나는 우등(Honor)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졸업했다.


그리고 석사 과정 중, 2020년 서울에서 무수히 이메일을 보냈던 한 교수를 수업에서 만날 수 있었다. 훌륭한 인품과 학식을 겸비한 교수였고 그는 이번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나의 박사 학위 지도 교수가 되어줄 것을 약속하는 입학 허가서를 써 주었다. 2023년 석사 졸업 후, 1년 동안 박사 지도 교수와 나는 연구 계획서를 완성해 가며 마침내 2024 헝가리 정부 초청 박사 학위 장학생에 지원했고 마침내 합격 통보를 받았다.


계획했던 것 보나 3년이 더 걸렸다.

43살에 시작하고자 했던 박사과정이, 46살로 미루어졌다.

3년 전, 석사 과정을 다시 시작할 때 나는 꽤나 조급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느긋하다.


43살이건, 46살이건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적지 않은 나이에, 아무도 모르는 나라에 와서

포기하기 않고 여기까지 달려와,  원하던 일을 마침내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아니, 기뻤다기보다  자긍심이 느껴졌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세상 어디에 던져져도 살아남을 수 있으리란 나에 대한 믿음.


 



어찌 보면 꼭 겪어야 할 3년이었다. 헝가리 대학 시스템을 모르고 바로 박사 과정을 시작했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물론 다시 학업으로 돌아간 것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2006년 봄 석사학위를 받고 15만에 다시 시작학 공부이니.... 뇌를 재부팅하는 시간이었달까? 지난 15년 사업을 하면서 재편되었던 뇌 시스템을 다시 학자의 뇌로 되돌리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보다 더 중요한 건 헝가리, 그러니까 독일식 교육과정을 따르는 동유럽 학계의 시스템을 알아간 것이었다. 한국, 미국과는 완전히 다른 교육 시스템이다. 수강신청, 시험신청, 논문 프로세스 등 어디에 힘을 줘야 하고 어떤 것에는 조금 힘을 빼도 되는지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내가 경험했던 한국의 인문대 경우, 대학원 생들에게 학기 중에 후한 학점을 주고 마지막 논문에 엄청난 한방을 기대했다. 상대평가인 학부과정과 달리 절대평가인 대학원과정에 교수들은 대부분 후한 학점을 준다. 출석일수가 모자라지 않으면 대부분 A 학점을 받는다. 그 대신 학위 논문에서 만큼은 엄청난 수준의 연구 결과를 기대했다. 웬만큼 써서는 논문 심사에 지원도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반대로 헝가리는 대학원 과정 중에 듣는 수업에 매우 엄격하다. 출석, 매 수업 과제, 매 수업 참여도, 페이퍼, 중간고사, 기말고사 등을 매주 꼼꼼히 평가해 종합하여 학기말에 학점을 준다. 학위 논문을 위한 지도 교수와의 1:1 수업 역시 매 학기 진행된다. 그리고 2학기 말에 이를 토대로 '논문 주제에 대한 공개 토론회'를 인문대 교수진 모두와 학생들 앞에서 갖는다. 그렇게 학위 과정 중 꼼꼼히 진행해 온 논문은 마지막 논문 심사에 무리 없이 오르고 웬만하면 거의 통과가 된다. 한국 기준으로 '논리적 오류'라고 지적되는 부분도, 여기서는 학위 논문 당사자의 '창의적인 논리'로 커버되고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여져 학위 과정에 성실히 임해 학점을 이수한 자는 어렵지 않게 논문 심사에 통과된다. 물론, 학위 논문에 등급이 매겨진다! 학위 논문에도 매우 우수/ 우수/ 적당함/ 패스 등의 성적이 매겨지고 이는 학위기에 그러니까 졸업장에 대문짝 만하게 새겨진다.


   


쓰고 보니, 지난 3년 허투루 보낸 시간은 없었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 있다. 대부분의 좋은 소식들이 그렇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무 때나 불쑥불쑥 찾아오는 나쁜 소식과는 달리 좋은 소식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다.

아주 오랫동안 기다리고, 상상하고, 원했던 소식이 마침내 도착하는 날이.

잠시 눈을 감고 트렘펠린에 올라가는 상상을 한다. 올라가서 있는 힘껏 발을 굴러 하늘 끝까지 닿아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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