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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a Seed Apr 23. 2024

너도 내 나이 돼봐!

언젠가 한 번쯤은 하게 될 말

언제나처럼 학교 도서관에서 글을 쓰고 있었다.

그날따라 생리통이 너무 심해서 컨디션이 영 좋지 않았지만, 넘겨야 할 원고가 있어 아픈 배를 부여잡고 원고를 마무리하고 있던 터다.


나만 그런가?

생리통이 심한 날에는 진짜 아무하고도 말하고 싶지 않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하기 싫은 이상한 날이다.

이 놈의 과상 망측한 호르몬!!!!


그런 날이었는데

도서관 한편에서 Z가 나를 알아보고 온다.

Z는 도서관에 오면 가방도 풀기 전에 주변에 아는 사람이 있나 살핀다.

도서관에 오면 책을 먼저 열기보다 친구랑 수다를 먼저 떠는 스타일이다.


터키 소수민족 출신인 Z는 영화학 박사과정을 하는 수다쟁이다.

이제 갓 서른이 넘은 그녀는

항상 눈에 불을 켜고

누가 인종차별적인 발언과 행동을 했는지,

여성 인권과 세계 평화에 그 누구보다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매번 대화는 Z가 시작해서 Z가 끝낸다.

예를 들면,

자기 인도 친구가 어떤 어떤 식당에서 인종차별을 당했으니 그 식당은 절대로 가지 말아라.

어떤 교수가 성차별적인 발언을 했다. 그래서 학생회에서 그 교수를 몰아내기 위해 서명 운동을 하는데 참가해라. 등등.... 컨디션이 좋을 때는 듣고 리액션도 하지만 가끔은 피곤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 그녀의 레이다망에 내가 걸렸다.

'아, 오늘은 아무하고도 말 섞기 싫은데....' 하는 차에

Z가 와서 바람 쐬러 나가자고 한다.


Z는 대충 내 나이가 마흔쯤이라고 알고 있다.

그리고 몇 번이 곤 나에게 '나이는 상관없어. 나이가 뭐가 중요해. 나이로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된다는 등' 이야기를 하면서 '게다가 너는 너무 어려 보여서 전혀 40대로 보이지 않는다'라고 하며 나에게 호감을 표시하곤 했다.


그렇게 나에게 호감을 표시하는지라

웬만해서는 함께 하는 편이지만

컨디션이 컨디션인지라.... 그리고 나가면  애연가인 Z 가 담배를 태울 것이 뻔하기에...


"Z, 미안해. 내가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아. 그냥 여기 있을래. 다음에 이야기하자"

고 최대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런 나의 말에 Z가 요란을 떨며 어디 아프나고 물어본다.

그래서 "어, 별거 아니야.. 그냥 생리통"


화들짝 놀라며, 돌아오는 대답....

"아! 그 나이에도 생리통이 있어?"  


아....

그. 나. 이.

라니.... 아, 한방 제대로 맞았다.


식당 종업원이 니 인도 친구 영어를 못 알아듣고 다시 물어보면

인종차별이라고 난리난리를 치는 네가.

학교에서 교수가 니 논문을 반박하면 성차별주의자여서 일부러 그런 태도를 보인다고 난리를 치는 네가....


그런 네가....

나이로 나를 한방 먹였다.


꿀밤을 한대 꽃아 주고 싶었지만

그러는 에너지도 아까워서 썩소를 지으며 속으로 말했다.

"너도 내 나이 돼 봐! 마흔 넘는다고 생리통이 사라지나! 너도 딱 15년 후에, 너보다 딱 15살 어린애한테 그런 소리 들어봐. 어떤 기분인지. 내가 생리통으로 힘들다는데 네가 왜 내 나이를 들먹여!!"



오랜만에 진심으로 기분 나빴다.

그냥 상대가 그렇다면 그런 거다.

늙었다고, 어리다고

못 느낄 감정, 고통, 행복

이런 거 없다.


10살의 상실감이 60살의 상실감 보다 적다고 할 수 없고

70살의 사랑이 20대의 사랑보다 적다고 할 수 없다.


시간이 흐르는 거지, 사람이 변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대로인데, 어느덧 중년이 되어 있고 노년이 되어 있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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