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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요나 Sep 26. 2017

사라진 사람들

기이한 미스테리 현상 베니싱(Vanishing)

우리는 살아가면서 상식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기이한 일들을 겪곤 한다. 전학 간 친구를 길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그 시간에 친구는 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는 소름돋는 현상이나, 방금까지도 사용하고 있던 가위가 감쪽같이 사라지더니 며칠 뒤 서랍 속에서 발견된다든가, 분명히 닦아서 싱크대 안에 넣어 둔 접시가 영영 사라지는 일 등이다.

찾으면 찾을수록 더 미궁 속으로 빠지는 물건의 행방을 옛 조상들은 ‘도깨비가 가져갔다’라고 말했다. 도깨비가 장난을 치려고 가져갔으니 물건을 돌려달라고 빌면 다시 돌려준다는 이야기였다.
영어로는 이러한 일을 ‘베니싱 현상’이라고 부른다. ‘사라지다’는 뜻의 ‘Vanishing’에 ‘Effect’를 덧붙인 것으로, 사람이나 사물이 홀연히 사라져버리는 미스터리한 현상을 말한다.

베니싱 #1. 인체 자연 발화 사건
 
만약 방 안에서 사람이 사라진다면 어떨까. 그것도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온 몸이 타버렸다면? 하지만 주변 가구들과 신고 있던 신발은 멀쩡한 상태였다고 한다면 오싹 할 정도로 공포스러울 것이다. 근대에 들어 처음으로 알려진 인체 발화 사건은 1951년 미국 플로리다 주에 살던 67세의 메리 리저 사건이다. 메리 리저는 온몸이 잿더미 상태로 타다 만 발 한쪽만 온전하게 발견됐다. 그녀의 신체가 완전히 연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집 안에는 화재 피해가 거의 없었다. FBI는 살해 가능성에 무게를 실고 조사를 벌였지만 타살에 대한 범죄 정황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1964년 11월 8일 펜실베니아주에서도 인체 발화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51세였던 헬렌 콘웨이는 자신의 집 2층에서 눈 깜짝 할 사이에 재로 변했다. 주위를 지나던 주민이 2층에서 거센 불길을 목격하고 즉시 소방서에 전화를 했고 3분 뒤 소방관들이 도착 했을 때 이미 불은 꺼졌지만 열기는 남아있었다. 헬렌 콘웨이는 무릎 아래의 두 다리만 남고 온 몸이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정약용이 남긴 [흠흠신서(欽欽新書)]에도 인체발화 사건으로 추정되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1815년 12월 겨울, 나주에서 김점룡이란 사람이 불륜을 맺다가 유부녀이던 상대 여성인 한 씨 부인과 같이 타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런데 옷이나 이불, 심지어 방바닥까지도 탄 흔적이 없고 사람 몸만 타버렸다. 당시 사건을 수사하던 포도청 수사관들은 집주인이나 김점룡의 아내, 또는 한 씨 부인 남편인 박기원이 저지른 짓으로 의심하여 조사했지만, 살인방법에 대하여 도저히 입증할 수가 없어서 결국 미제사건으로 끝났다.


‘인체발화사건’의 원인은, 인체에 있는 동물성 지방이 담뱃불 등의 화기에 의해 안으로부터 연소되기 때문이라는 ‘심지효과’와, 우울증과 정신증을 앓던 피해자가 많다는 점에서 뇌의 ‘시상하부’에 이상이 생겨 체온이 급격히 올라갔기 때문이라는 ‘정신이상론’, 신체는 자연적으로 방사능 성분을 갖고 있기 때문에 병이나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그 균형이 깨지면 세포 속 칼륨에서 나온 감마선이 중수소와 충돌하여 핵폭발과 비슷한 반응을 일으킨다는 ‘인간 핵폭발 설’, 기 치료에 쓰이는 ‘쿤달리니’ 에너지가 과도하게 배출되었기 때문이라는 ‘쿤달리니 이론’까지 각종 설왕설래가 많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을 밝혀내지는 못했다.

베니싱 #2. 프로젝트 레인보우의 비밀
 
1940년 10월 2일 미국 버니지아주에 위치한 해군기지 노크항구에서 함장 밀러 로튼 대령과 승무원 45명을 태우고 브레이크호가 출항했다. 하지만 브레이크호는 출항 5시간 만에 무전이 끊기고 행방불명되었다. 같은 날 오후 8시 브레이크호가 다시 노포크항에 나타났다. 브레이크호는 100년이 넘은 것처럼 녹이 슬어있었고 승선했었던 선장과 승무원들은 모두 미라로 발견되었다.
 ‘브레이크호 사건’은 1931년 니콜라 테슬라가 계획을 세우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실험을 진행했다고 알려진 일명 '프로젝트 레인보우'에 미스터리한 부분을 더해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레인보우 프로젝트는 강력한 전압을 발생시키는 변압 장치인 테슬라 코일을 이용해서 선체에 막대한 전기를 흘려보내 특수한 자기장을 형성시켜 레이더에 발견되지 않도록 하는 스텔스 실험이었다.

레인보우프로젝트에 대한 미스테리 일화가 또 있다. 1943년 10월 28일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해군 조선소에서 레인보우프로젝트가 실행되었다. 첫 실험체는 구축함 엘드리지(USS Eldridge, DE-173)호였다. 구축함 주변에는 푸른 안개층이 형성되었고 점차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가 완전히 사라졌다. 전류를 끊자 배는 250마일 이상 떨어진 노포크 항구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엘드리지호 선원의 대부분은 이미 사망하였고 일부는 벽이나 기둥, 바닥과 융합해 녹아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 실제로 필라델피아에서 실험한 프로젝트는 독일 U보트가 새로 배치한 자성추적 어뢰의 추적을 방해하기 위해 선체에 일정한 전류를 흘려 자기장을 상쇄시키려 한 연구였다. 실험은 실패했지만 소문같은 사상자는 없었다. 필라델피아 앞바다에서 사라진 엘드리지호가 노포크 해군기지에 나타난 것은 당시 군함만 다닐 수 있었던 작은 수로를 통해 이동했기 때문이었다.


베니싱 #3. 메리 셀러스트호 실종 사건


1872년 벤자민 브리그즈 선장과 그의 아내, 딸이 함께 승선하고 있는 메리 셀러스트호는 미국에서 제노바까지 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뉴욕에서 출항한 메리 셀러스트호는 제노바에 도착하지 않았고, 출항 한 달 만에 텅 빈 배로 바다 위에서 발견됐다. 탑승자 뿐 아니라 항해일지를 제외한 모든 서류도 사라져있었다. 항해일지에는 11월 25일까지 기록이 남아있었는데, 이는 배가 실종 된 이후 약 10여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메리 셀러스트호는 선장과 가족, 7명의 선원이 모두 감쪽같이 사라진 채 열흘 넘게 혼자 항해를 했던 것이다.

선원들의 개인 용품들은 그대로 남겨져 있었으며 싸움의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메리 셀러스트호에 대한 다양한 가설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 무엇도 사건을 규명할 수 없었다. 몇 달간의 수사 끝에 나온 결론은 ‘원인불명’, 즉 탑승자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메리 셀러스트호 사건은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유명한 베니싱 미제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베니싱 #4. 사라진 이누이트족
 
1930년 캐나다 키발릭 지역에 위치한 안지쿠니호수에는 오래전부터 에스키모 원주민인 이누이트들이 살아가는 마을이 있었다. 사냥꾼들이 몇 주 만에 마을을 찾았을 때, 1200명에 달하는 이누이트 사람들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썰매는 이누이트족의 유일한 이동수단으로 마을을 나가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었는데 썰매들은 모두 마을에 그대로 놓여있었고 썰매개들은 썰매에 묶인 채 굶어죽어 있었다. 불이 피워진 화덕에는 조리중이던 음식이 남아있었고 누군가 바느질하던 옷감은 바늘이 그대로 꽂혀 있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사라진 마을 사람들은 발견돼지 않았고 이 사건은 안지쿠니호수실종사건이라는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

캐나다 경찰은 이 이야기가 프랭크 애드워드가 1959년에 발표한 기이한 이야기들을 모은 책 'Stranger than Science'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면서 안지쿠니호수실종사건이 허구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게 큰 규모의 마을이 외진 캐나다 북서쪽 지역(북위 62 서경 100, 대략 에스키모 포인트로부터 100km 서쪽)에는 존재할 수가 없다."라는 것이 경찰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베니싱 #5. 로어노크섬의 미스테리

안지쿠니호수사건의 바탕이 되었을 사건이 바로 1590년에 실제 했던 ‘로어노크섬 미스터리’이다. 1584년 107명의 영국인들이 신대륙의 로어노크섬에 상륙하면서 현재의 버지니아에는 미국 최초의 영국 식민지가 세워졌다. 1585년에 식민지 개척을 위한 함대가 로어노크로 파견되어 식민지 건설을 시작했지만 영국과의 거리가 멀어서 보급에 어려움이 있었고, 원주민들이 이들을 공격해서 초기 식민지 건설은 실패로 돌아갔다.

1587년 존 화이트가 이끄는 120여 명의 남녀가 두 번째로 로어노크에 도착해 식민지 개척을 시도했다. 화이트는 성과를 보고하고 보급물자를 가져오기 위해서 다시 영국으로 돌아갔는데, 이후 영국과 에스파냐의 전쟁이 계속되어 화이트는 3년간 영국에서 꼼짝없이 기다리다가 1590년이 돼서야 로어노크 섬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화이트가 로어노크에 돌아왔을 때는 나무기둥에 ‘크로아토안(Croatoan)’이라고 적힌 문구만 남아있었고 100여명의 영국 사람들은 홀연히 사라졌다.

‘잃어버린 식민지(The Lost Colony at Roanoke)’라고 불리는 로어노크 미스터리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제기되었는데, 그 중 가장 현실성 있는 것이 본토 정착설이다. 남겨진 영국 정착민들은 화이트가 돌아오지 않자 남아 있는 배를 타고 가까운 미국 본토에 상륙하고 먹을거리와 생활필수품을 쉽게 가공할 수 있는 에팔레치아 산 속으로 이동했다는 설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 그들은 토착민이 되었고, 속속 신대륙으로 이주해 오는 이민자들과 섞여 산사람들만의 생활법과 풍습을 만들어 나온 것이 현재의 에팔레치아 산맥의 고유한 문화를 이루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라진 사람들의 노래 힐 빌리(Hilibilly)


실제로 유럽 각국에서 모여든 초기 에팔레치아 지역 이주민들은 자기 나라에서 가져 온 악기들(기타, 벤조, 바이얼린, 아코디언)로 자국의 구전 가요나 민요, 찬송가등을 불렀다. 이주자들 마을마다 고유의 분위기가 있는 이 음악은 ‘힐빌리(Hilibilly)’라고 불렸다. 하지만 힐빌리에는 ‘시골뜨기, 촌놈’이라는 뜻으로 남부 사람들을 경시하는 의미가 있었기 때문에, 서든 뮤직(Soutern Music), 마운틴 뮤직(Moutain Music) 등으로 바뀌어 불리어지게 되었다.
1920년대부터 힐빌리는 블루스, 재즈 등과 자연스럽게 섞이면서 특유의 향수어린 음악을 만들어갔다. 테네시 주 내시빌의 WSM 사에서 주최하는 컨트리 앤 웨스턴 음악의 최대 행사였던 ‘그랜드 올 올프리(Grand All Orphrey’)를 통해 1930년대부터는 다른 지역의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사라진 사람들의 노래


홀연히 사라진 사람들은 산맥을 울리는 음악이 되어 돌아왔다. 정말 그런 것일까라고 질문할 수도 있겠지만, 바다를 건너 먼 타국의 섬에서 쓸쓸히 죽어가던 사람들의 구슬픈 노래가 블루그래스라는 음악이 되어 남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환상적이며 또한 낭만적인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훨씬 많다. 보이는 것만 믿고 싶은 사람들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어느 괴짜가 지어낸 공포호러물이라 여긴다. 하지만 이제까지 모르고 있던 세계, 그 이계(異界)에서 온 또 다른 존재를 우리는 오늘 어딘가에서 만날지도 모른다. 베니싱 이펙트(Vanishing Effect), 그 곳에는 사라진 사람들의 세계 그리고 죽은 자들의 기이한 세계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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