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요나 Apr 05. 2019

서양클래식과 종교개혁

음악의 르네상스를 주도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큰 시대적, 사회적 혁명은 마르틴 루터에 의한 종교개혁이었다. 16세기에 독일 북부지방을 중심으로 일어난 루터의 종교개혁은 이전까지 유럽인들의 생활과 문화를 지배해왔던 로마 가톨릭 교회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자, 신학과 음악사적 면에서 모두 커다란 의미와 업적을 남겼다.


1517년 ‪10월 31일 독일 비텐베르크‬(Wittenberg)의 대학 신학교수이며 신부였던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로마 교황청이 판매하는 면죄부의 부당함을 포함한 95개 조항에 대한 불합리함에 반박하는 공문을 비텐베르크 성당의 문에 붙였다. 당시 루터는 부패가 만연했던 로마가톨릭교회의 타락상에 대해 반성을 촉구한 것이었을 뿐, 애초 종교개혁이라는 역사적인 행동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국 루터의 반박문이 불씨가 되어 사회와 정치적인 문제로 파급되면서 종교개혁이라는 역사적인 대사건으로 전개가 되었다.


루터가 이룩한 공헌 가운데 중요한 것으로는 라틴어로만 되어있던 성경을 번역하여 일반인들도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고, 로마 이외의 나라 사람들도 자국어로 예배를 볼 수 있는 권리를 허용했으며, 신도들이 부르는 찬미가인 ‘코랄’을 만들어서 교회음악의 대중화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신학자가 되지 않았다면 음악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을 만큼 음악을 좋아했던 마르틴 루터는 소년 합창단원 출신의 테너 가수이면서 플루트와 류트 연주자였다.


루터는 음악이 가진 윤리적인 힘과 교육적인 효과를 인정하여, 음악은 슬픔과 즐거움, 절망이나 질투 같은 인간의 모든 심정을 다스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어떠한 악덕이나 악습도 음악의 힘으로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루터는 또한 건전한 음악을 통해 젊은이들의 도덕적인 성향을 보호하며 유지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루터에게 음악은 교회에 있어 전례의식의 중요한 한 부분이었고, 신도들의 신앙심을 고취시키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교회음악
 
르네상스 시대의 음악의 주류는 합창곡이었으며, 기악곡은 아직 미미한 정도였다. 이러한 르네상스 음악의 폭발적인 발전을 가져 온 것이 루터가 만든 교회음악인 ‘코랄’ 이었다. 코랄(Chorale)이라는 명칭은 노래가 합창(Chorally)으로 불리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단순하고 명쾌하며 힘차고 새로운 이 종교가는 처음에 단선율의 음가로 불려 지다가 대위법(Counterpoint, 對位法, punctus contra punctum-point counter point: 독립성이 강한 둘 이상의 멜로디를 동시에 결합하는 작곡기법)과 결합되고 단순화함으로써 마침내 바흐에 이르러 최고의 예술적 완성을 보게 되었다.

서양클래식음악의 발전에 코랄이 끼친 영향은 매우 중요하다. 코랄은 다성 코랄, 코랄 칸타타, 코랄 모테트 등의 합창곡과 코랄 푸가, 코랄 프렐류드, 코랄 판타지아, 코랄 파르티타 등 많은 오르간 음악의 원천이 되었다. 200여 년 후 바흐의 시대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는 교회음악의 성장은 바로 이 코랄의 탄생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종래의 가톨릭교회에서 일반 신도들은 성가대가 부르는 라틴어 다성음악(多聲音樂, Polyphony: 둘 또는 그 이상의 독립적 성부(聲部)를 동시에 노래하는 것을 가리키는 음악용어. 대표적인 곡으로 헨델의 '메시야‘가 있다.)이나 사제들이 부르는 라틴어 성가를 수동적으로 듣는 입장이었다. 313년 기독교 공인 이후, 교부(敎父) 아우렐리우스 암브로시우스(Aurelius Ambrosius)는 암브로시우스 성가(Ambrosian Chant)를 만들어 시편(詩篇, psalms)이나 두 개로 나뉜 찬송가를 합창으로 부르게 하였다.

교황 그레고리 대제(Gregory the Great)는 유대인들의 성가방식과 희랍인의 음악적 기량 및 라틴의 음률적 언어의 특징을 성가에 병합해 그레고리 성가를 완성시켰으며, 그레고리 성가(Gregorian Chant)는 로마를 중심으로 교회음악의 표준과 모형이 되었다. 이처럼 중세기 교회는 훌륭한 그레고리 성가를 발전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예배드릴 때는 훈련받은 합창대가 음악의 주요 부분을 독점하여 부르고 회중은 단순히 응답하는 노래만 불러야 했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라틴어로 되어 있는 어려운 노랫말 때문에 회중들은 그 말의 뜻을 모른 체 노래하거나 방청만 하였다. 따라서 교회음악은 일반인이 참여하여 이해하고 즐기며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사제라는 특권집단의 전유물이었다.


마르틴 루터는 어렵던 라틴어 성가를 독일어로 번역하여 친숙한 선율에 새 가사를 붙이고 일반인들이 부르기 쉽게 단음의 단순한 민요풍의 선율을 작곡하여 손수 신교회음악의 틀을 갖추었다. 그리하여 일반 신도들도 찬송가인 코랄을 직접 부름으로써 예배에 보다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루터는 1562년에 출판한 저서 ‘독일 미사(Deudsche Messe)’의 서문에서 “도움이 된다고 생각될 때는 교회의 종과 오르간을 울릴 것이며, 소리 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용할 것이다.”라고 기록함으로써, 오르간 이외의 악기 사용을 금지했던 가톨릭교회와는 다른 신교회음악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보여주었다.
 
가톨릭교회의 반(反)종교개혁
 
가톨릭교회는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종교개혁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게 되면서 이에 대처할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꼈다. 네덜란드의 인문학자이자 신학자인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는 “요즘 교회음악은 그리스와 로마 극장에서조차도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것 같은 인위적인 극장용 음악으로 창부나 광대의 춤에나 어울릴 것 같은 호색적이고 음탕한 선율이다”라고 말했으며, 고위 성직자들은 신교회음악에 나타나는 세속성과 교회 내에서 시끄러운 악기를 과다하게 사용하는 것, 노래 부르는 사람들의 잘못된 발음과 부주의 및 불경스러운 태도, 그리고 각 지방마다 서로 다른 악장을 사용함으로써 교회음악의 통일성이 없다는 것에 지대한 불만을 나타냈다. 그리하여 교황 바오로 3세(1534~49 재위)가 트렌토(Trento)에서 소집한 공의회는 교회가 ‘기도하는 집’으로 불려 질 수 있도록, 불순하거나 외설적인 음악과 불경한 언어는 교회 내에서 제거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100여 편의 미사곡과 300여 곡의 모테트(Motet: 중세 르네상스 시대 종교 음악으로 주로 사용되던 무반주 다성 성악곡)를 작곡한 후기 르네상스 교회음악의 거장이자 ‘가톨릭교회음악의 구세주’라고 불리는 이탈리아 음악가 피에르루이지 다 팔레스트리나(Giovanni Pierluigi da Palestrina)는 가톨릭교회의 반종교 개혁의 정신에 맞추어 공의회의 요구에 부합되는 교회음악들을 작곡했다. 몇 세기 동안 가톨릭교회는 팔레스트리나의 미사곡들이 평온함과 속세 초월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고 하여 교회음악의 표방으로 간주했다.

팔레스트리나의 음악은 음정의 큰 도약이 최소한 사용되는 부드러운 곡선의 선율과 불협화음을 절제하고 세심하고 성스러운 라틴어 가사를 중요시했으며, 그 기법의 완벽성 때문에 현대에도 대위법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대표적인 곡으로 사용되고 있다
 

구원의 염원을 담은 종교음악
 


마르틴 루터는 “인간의 영혼을 구하는 신학을 제외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학문은 음악”이라고 정의하였다. 또한 루터에 반대하여 교회 안에서 악기 사용을 금지했던 장 칼뱅(Jean Calvin) 역시 “기도에는 말로 하는 기도와 노래로 하는 기도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노래는 더욱 열광적이고 불타는 것처럼 뜨거운 마음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예배 안에서 노래를 부르면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려는 마음에 더욱 뜨겁게 감동시킬 수 있는 위대한 힘과 능력이 있다.”라고 말함으로써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신비로운 생명력을 가진 것으로 인정하였다.


교회음악은 종교적인 믿음과 심미적인 음악이 함께 어우러진 경건하고도 아름다운 복합예술이다. 바로크 시대의 음악인들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것(Affection: 애착, 애정)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이를 음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이는 그들이 가진 독실한 신앙과 더불어 인간을 고귀하게 여기는 선민주의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렇게 탄생 된 위대한 음악가들의 구원의 기도가 담긴 음악은 별처럼 빛나는 작품으로 전 세계 인류의 가슴에 감동을 안겨주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수능날 빵먹기(feat. 수능금지곡)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