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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요나 Oct 05. 2017

밴드혁오의 음악

나만 알고 싶은 밴드혁오

꿈을 꾸었다. 비틀비틀 거리는 사람들 끼리끼리 위잉위잉 소리를 내며 비잉비잉 돌아가는 쌔앵쌔앵 모래바람 속에 머나먼 술탄의 나라 어느 작은 정원에서 모로코식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앉아 물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누군가 ‘Hooka!’라고 외치자 모두 와리가리 놀이를 하며 한명씩 사라졌다. 어쩌면 인생이란 게 이런 건가 봐요. 다들 그렇게 떠나나요. ...


꿈에서 깨어보니 혁오의 음악이 무한반복 되고 있었다.



패셔너블(Fashionable)과 유니크(Unique)로 대명사 되던 흔한 패셔니스타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는 한층 더 진화한 힙스터(Hipster)와 클레버(Clever)들이 차지했다. 그들이 1940년대에서 가져 온 지적 우월감과 개인만족주의의 패션 감각과 타인과 차별화 된 문화, 예술적 지향은 과거로부터 현재를 역주행하며 또 하나의 유행 패턴이 되고 있다.
음악 또한 그러하다. 광란의 샤우팅과 현란한 기타리프에 헤드뱅잉을 하던 시대는 이제 저물었거나 또는 또다시 윤회의 바퀴에서 소생할 날을 기다리며 숨을 죽이고 있다. 그대신 얼마 전 내한했던 콜드 플레이(Cold Play)에게 보여준 국내 팬들의 열광처럼, 대중은 그루브하며 어썸하고 황홀한 운율과 진보적인 네러티브 설정으로 영화처럼 뇌리에 박히며 마치 성가대의 찬양처럼 영적인 힘까지 부여받을 수 있는 신비한 음악을 원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 이들의 음악을 소개하려 한다.

'밴드 혁오’.


이들을 얘기하면 반드시 ‘2015 무한도전 가요제’가 따라서 수식된다. 그만큼 홍대 인디밴드에 불과하던 이들을 메이저 무대에서 유명세를 타게 한 결정적인 방송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한도전에 출연하기 전부터 밴드 혁오는 같은 뮤지션들로부터도 ‘나만 알고 싶은 밴드’로 뜨거운 입소문을 타고 있었다. 밴드 결성 9개월밖에 되지 않은 무명의 인디밴드가 무한도전의 러브콜을 받은 것은 이처럼 이들만의 감출 수 없는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밴드 혁오의 ‘Lonely’와 ‘Panda Bear’가 ‘화이티스트 보이 얼라이브’의 ‘1517’과 ‘Yumi Zouma’의 ‘DODI’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 되었지만 두 곡 모두 사실과 관계없음으로 결론이 났다.
리더 ‘오혁’은 대학교수인 아버지를 따라 생후 5개월 때 중국 연길로 이민을 갔다가 대학입학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음악활동을 반대하는 가족들을 설득하기 위해 YG, SM, JYP등 굴지의 연예기획사의 오디션을 보았고 모두 합격했다. 작사와 작곡 편곡까지 독학으로 공부한 오혁은 ‘샌드위치 딜리버리 클럽(Sandwich Delivery Club)’이라는 밴드에서 활동을 하다가 오혁(리더, 보컬, 기타), 임동건(베이스), 임현제(기타), 이인우(드럼)을 차례로 영입하여 ‘밴드 혁오’를 만들었다.


오혁은 디스코와 포크음악을 좋아하고 임동건은 헤비메탈을 연주했으며, 임현제는 소울과 블루스 음악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밴드 구성원들 모두는 독일밴드 ‘화이티스트 보이 얼라이브(The Whitest Boy Alive)’의 광팬으로, 스스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인연으로 2015년 3월 ‘화이티스트 보이 얼라이브’ 내한공연 당시 밴드 혁오가 오프닝 무대에 올라 ’Lonely’를 불렀으며, 오혁은 밴드의 리더 얼렌드 오여의 얼굴을 팔에 문신하고 있다.

밴드 혁오의 첫 번째 성공 요인은 일렉트로닉 음악에 적당히 하지만 잘 버무려진 미니멀한 사운드일 것이다. 거기에 R&B와 소울 창법을 연습한 오혁의 목소리는 낮은 그루브와 꾸미지 않아 더 관능적인 고음을 오가며 아주 가까이 마이크를 잡는 그의 습관처럼 듣는 사람의 귓가에 은밀하게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처럼 굳이 록이나 발라드의 장르를 정해줄 필요 없이 모든 곳에 있고 모든 것에 어울리는 것이 밴드 혁오 음악의 매력이다.
두 번째 성공 요인은 현실과 이상향의 사람들 사이를 섬처럼 떠다니는 젊은이들이 느끼는 고독과 외로움을 대변하는 가사들이다. 누구와도 달라지고 싶지만, 또 실상은 누구에게서도 멀어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가까스로 붙잡고 있는 나와 너라는 관계의 성립과 단절을 밴드 혁오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사로 풀어내고 있다.


비틀비틀 걸어가는 나의 다리 오늘도 의미 없는 또 하루가 흘러가죠. 사랑도 끼리끼리 하는 거라 믿는 나는 좀처럼 두근두근거릴 일이 전혀 없죠.(위잉위잉. 20. 2015.)


그런 슬픈 말을 하지 마요 아마 그럴 줄은 알았는데 이젠 좀 잔잔하다 했었는데. 뒤도 돌아보지 않아 그런 마음을 낮추지 마요 저기 다가온다 기대했는데. 또 한 편 언젠가는 떠나갈걸 이젠 슬쩍 봐도 알아.(와리가리. 22. 2015)


저기 수근거리는 사람들의 고민거리는 뭘까 지금 날 보고 웃는 건지 아니면 나를 안 보는 건지 언제부턴가 주위에 남는 친구가 많아 어깨에 슬쩍 손을 올리는 너희들은 도대체 누구야.(Hooka. 22. 2015)


밴드 구성원이 모두 93년생인 밴드 혁오가 2014년 발표한 [20]이라는 싱글 앨범에는 열아홉 살 때부터 스물한 살까지 써온 아픈 청춘의 상실감과 세상 밖에서 겪는 혼란스러운 질문이 여섯 곡의 노래에 담겨있다. 이중에서 ‘위잉위잉’을 제외한 ‘Lonely’, ‘Feels Like Roller-Coaster Rider’, ‘Ohio’, ‘Our Place’, ‘I Have No Hometown’ 등 다섯 곡은 모두 영어 가사로 이루어져 있다. 이에 대하여 작사를 한 오혁은 영어로 가사를 쓰면 좀 더 감정을 솔직하게 담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말로 쓰는 것은 자신이 발가벗겨지는 것 같아 창피한 느낌이 든다는 것은 오랫동안 외국 생활을 했던 그를 생각하면 얼핏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2015년 1월 발매한 [Pandar Bear]는 영어노래 ‘Bamboo’와 ‘내가 누군지 물어보지 좀 마.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르니까 이방에서 내가 사라진대도 그 아무도 없어진지 모를거야’라는 가사로 이루어진 ‘Pandar Bear’ 두곡이 담겨있는 다분히 염세적인 청년기의 히스테릭한 반항이 가득한 앨범이다.

2015년 5월에 발매된 싱글 앨범 [22]는 평단과 팬들에게 극찬을 받으며 재발매 요청이 수도 없이 들어 온 밴드 혁오의 보석 같은 가치가 다시 한 번 빛을 발한 앨범이다. 어쿠스틱한 록기타 리프에 빠져드는 곡 ‘와리가리’와 ‘공드리’외에도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이나 포티셰드(Portishead)를 연상시키는 곡 ‘Hooka’와 믹싱과 효과음을 실험적으로 사용한 아트록의 기초버전격인 ‘Mer’에 이르기까지 다변화적인 느낌으로 가득 차 있다.


20세에 시작 된 밴드 혁오의 음악적 탐구는 25세에 이르러 평단의 제대로 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2017년 4월 발매 된 [23]은 데뷔한지 2년하고도 반 만에 발표하는 첫 번째 정규 앨범으로 ‘가죽자켓’과 ‘Tomboy’를 비롯하여 ‘Burning youth’, ‘Tokyo Inn’, ‘Wanli万里’, ‘Die Alone’, ‘Paul’ 등 한국어, 중국어, 영어 가사로 쓰인 총 열 두곡의 노래가 수록되어있다.

앨범의 더블 타이틀 곡인 펑크 성향의 '가죽 자켓'과 발라드곡 '톰보이'의 낯선 대비가 보여주듯 혁오와 그의 멤버들 역시 첫 번째 정규 앨범이라는 부담을 극복하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무정부주의와 서정성 사이를 오가는 가사 역시 혁오만의 분위기에 너무 힘이 들어가버렸다. 하지만 이렇듯 각종 장르를 차용하고 있는 앨범의 어수선한 분위기조차 혁오만의 스타일이라고 받아들이는 팬들의 사랑은 여전히 건재하다.

밴드 혁오는 앨범 발매 직후부터 일본, 홍콩, 대만, 태국,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국가들에서 단독 공연은 물론 미국, 캐나다, 유럽을 포함해 총 28개의 도시에서 해외 투어를 진행 중이다. 그리고 12월에는 성대한 국내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당분간 한국에서 혁오를 넘어설 밴드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한류가 아닌  작은 록밴드로 의기충만한 세계투어를 하고, 대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이너 뮤지션이라는 이름으로 메이저 무대에 오르는 25세의 소년들. 역시 밴드 혁오는 한국에서 가장 힙하고도 클레버한 뮤지션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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