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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요나 Sep 28. 2017

낯익은 그리움 하나 들고서 가을 속으로 걸어간다

가을여행에 어울리는 가을노래


가을에는 항상 떠나고 싶었다.

화려한 차림을 하고 떠들썩하게 무리를 지어 쏘다니던 여름과 달리, 가을에는 혼자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햇살 바랜 바닷가에서 듣는 파도 소리도, 발갛게 단풍 빛으로 물든 가을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모두 계절을 닮아 은근하게 마음속으로 내려앉는 가을이 비어가는 모습이 슬펐다.
가을에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었다.

심장이 터질 듯 열정적인 청춘고백이 아닌,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이름을 작게 불러보고 수줍게 손을 잡고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따뜻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사랑이 하고 싶었다.
가을에는 이별을 하고 싶었다.

무성한 이파리를 드리우던 여름 나무들과 열기를 더하던 밤바람과 땀과 체취가 뒤섞여 끈적거리던 거리의 소음과 냉정하게 이별을 하고 싶었다.


한가로이 햇살 가득한 호숫가를 맴돌던 철새들이 떠나간 빈 자리에 가을이 내려앉는다. 미련없이 비워버린 마음 한켠에도 스산한 가을 한 조각을 띄워본다.

훌훌 떠나야 만날 수 있는 먼 곳에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오늘 우리는 어느 슬픈 도시로, 거리로 여행을 떠난다.

낭만과 젊음이 넘치는 도시 캘리포니아(California)
- ‘California Dreaming’ by 마마스 앤 파파스(Mamas & Papas)
 
국내 팬들에게는 영화 ‘중경삼림(Chungking Express. 왕가위 감독. 임청하. 금성무 주연. 1994)의 타이틀곡으로 잘 알려진 마마스 앤 파파스의 ’California Dreaming‘은 삭막하고 비인간적인 도시를 떠나서 낭만 가득한 이상향으로 가고 싶어 하는 모든 청춘에게 바치는 히피들의 찬가였다.

히피문화와 포크락이 붐을 일으키던 1960년대는 반전과 평화를 노래하는 자유로운 영혼들의 시대였다. 그 중에서도 따뜻한 남쪽 나라 캘리포니아는 사랑과 자유의 정신으로 무장한 젊은이들의 성지와도 같았다.

1965년에 캘리포니아에서 결성된 마마스 앤 파파스는 캐스 엘리오트(Cass Elliott)와 미셀 길리엄(Michelle Gilliam), 그리고 데니 도어티(Denny Doherty)와 존 필립스(John Phillips) 등의 여성 두 명과 남성 두 명으로 구성된 혼성 포크 록 그룹으로, 마마스 앤 파파스라는 그룹명은 오토바이 폭주족들이 남자와 여자를 지칭하는 속어에서 따온 것이다.

마마스 앤 파파스를 결성하기 전에 캐스 엘리오트와 데니 도어티는 빅 스리(Big Three)라는 그룹에서 활동을 하였고, 존 필립스는 쟈니 맨(Johnny Man)이라는 그룹에서 노래를 불렀으며, 미셀 길리엄은 모델로 활동을 했었다. 이들은 1966년 발표한 [If You Can Believe Your Eyes and Ears] 앨범의 수록곡 ‘California Dreaming’이 대히트하면서 세계적인 그룹이 되었다.

노래의 작곡자 존 필립스는 스코트 맥켄지(Scott Mackenzie)가 부른 ‘San Francisco(Wear Some Flowers In Your Hair)’를 작곡해 역시 크게 히트시켰다.

낙엽이 떨어지는 저녁의 거리를 걷다가 길가에 환하게 밝혀진 쇼윈도우 속의 화려한 풍경에 잠시 발걸음이 멈춰지는 것처럼, 낡고 어두운 도시를 떠나 낭만적인 이국의 해변으로 데려다 줄 것 같은 노래가 ‘California Dreaming’이다.


가을과 가장 잘 어울리는 도시 뉴욕(New York)
- ‘Englishman In New York’ by 스팅(Sting)
 
I don’t drink coffee
커피는 필요 없어요.
A walking cane here at my side I take it everywhere
난 산책할 때면 어디든 지팡이를 가지고 다니죠.
A gentleman will walk but never run
신사는 절대 뛰지 않는 답니다.
I’m an alien, I’m an Englishman in New York
난 이방인이에요, 난 뉴욕에 사는 영국인이지요.
 
클래식과 팝, 락, 재즈까지 경계 없는 폭넓은 음악관을 가진 세계적인 뮤지션이자 영화배우이고, 열성적인 환경운동가이며 엠네스티의 인권운동가이기도 한 스팅(Sting)의 예술작품들은 데뷔 4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는 그만의 고유한 정신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스팅이 1988년 발표한 앨범 [...Nothing Like the Sun]에 실려 있는 ‘Englishman in New York’의 뮤직 비디오는 흑백 처리 된 뉴욕 맨해튼의 겨울을 배경으로, 대다수를 위한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소외된 불특정 소수들의 쓸쓸함을 색소폰과 타악기의 재지한 리듬 속에 담아냈다. 노래 제목이 뜻하는 ‘뉴욕에 살고 있는 영국인’은 영국 최초로 커밍아웃을 한 동성애자이며 저널리스트였던 쿠엔틴 크리스프(Quentin Crisp)를 의미한다.

스팅은 노래와 함께 쿠엔틴 크리스트가 직접 출연한 뮤직비디오로 그에 대한 헌정을 표했는데, 이것은 보수적인 영국사회에서 게이라는 성정체성을 떳떳이 밝히고 자존감을 잃지 않고 살아온 노예술가에 대한 경배이자 흔들리는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소수자들에 대한 응원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무려 8백여 가지의 언어가 쓰여 지는 세계 최대의 도시 뉴욕,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뉴욕의 가을 정취를 이 노래와 함께 듬뿍 느껴보기 바란다.


필라델피아(Philadelphia)의 안개 낀 풍경
- ‘Streets Of Philadelphia’ by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영화 ‘록키(Rocky)1’에서 실베스타 스탤론(Sylvester Stallone)이 박물관 계단을 뛰어올라가며 만세를 외치던 곳으로 남아있는 도시 필라델피아는 19세기 초까지 미국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영화가 잊혀 진 것처럼 도시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던 필라델피아는 조나던 드미(Jonathan Demme) 감독의 영화 ‘필라델피아(Philadelphia)’(1993)속에서 다시금 재조명되었다.

영화 속에서 에이즈에 걸린 변호사 역할을 맡았던 톰 행크스(Tom Hanks)는 생애 두 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주제가 ‘Streets Of Philadelphia’로 아카데미 주제가상과 1994년 제 37회 그래미 올해의 노래상을 수상했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1975년 발표한 3집 [Born To Run]이 빌보드 앨범차트 3위에 오르며 '노동자의 대변인’라는 호칭으로 그해 미국의 양대 시사주간지 ‘타임(Time)’과 ‘뉴스위크(Newsweek)’의 표지를 동시에 장식하며 스타로 떠올랐다. 1980년 [The River)]로 빌보드 앨범차트 1위를 차지했고, 1982년 발표한 [네브라스카]가 빌보드 3위 그리고 1984년 발표한 [Born In The U.S.A.]가 빌보드 앨범차트 1위를 차지하며 그는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노래 ‘Born In The U.S.A.’는 베트남 참전 용사의 절망과 고통을 다룬 노래로 미국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곡이었지만, 역설적으로 미국의 ’신애국주의’를 고취시키는 아이러니한 운명의 곡이 되었다.

인적 드문 광장에 비둘기가 날아오르면 한 청년이 힘차게 계단을 밟으며 뛰어오르는 그곳 필라델피아,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Streets Of Philadelphia’를 들으면 안개가 내려앉은 필라델피아의 가을 아침이 떠오른다.


너를 기다리던 그 삼청동길에서
- '삼청동’ by 루시드 폴
 
루시드 폴(본명:조윤석)은 대학교 1학년 재학 중이던 1993년 18세의 나이로 ‘거울의 노래’로 제5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하면서 음악계에 데뷔했다. 1997년 모던 록 밴드 '미선이'를 결성하고 1998년 1집 정규 앨범 [Drifting]을 발표했지만, 멤버들의 군입대로 미선이의 활동이 중단된 이후, 2001년 솔로 앨범 1집 [Lucid Fall]을 발표하고부터 예명을 루시드 폴로 활동하고 있다.

2005년 ‘삼청동’이 수록 된 정규 앨범 2집 [오, 사랑]을 발표했고, 2006년 제3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팝싱글상을 수상했다. 2007년에는 3집 [국경의 밤]을 발표했다. 2008년 자신의 음악 인생(1994~2008)을 정리하는 의미로 가사 모음과 수필을 결합한 책 ‘루시드 폴 詩歌(시가) - 물고기 마음’을 출간했다.

스위스 로잔대학 공대박사, 네이처 케미스트리에 논문을 게재한 석학, 꾸준히 글을 쓰고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높이는 작가 루시드 폴에게 ’삼청동‘은 어떤 의미일까.
불과 십몇 년 전의 삼청동은 갤러리가 많은 경복궁 길을 지나 걸어 올라가면 작은 북카페와 그만큼 작은 몇 개의 식당이 있던 한적한 데이트 코스였다. 돌로 담을 쌓은 오래 된 은행 건물이 낮게 자리를 잡은 그 거리는 여름이면 비쩍 마른 가로수에 내리쬐는 햇빛을 그대로 받고, 가을이면 낙엽이 수북한 돌담길을 따라 북악 스카이웨이로 향하는 차량들이 꼬리를 물던 곳이었다.

가깝지만 이젠 멀어진 풍경 속에 간직한 애틋한 추억이 촌스럽게 살아있는 곳 삼청동. 루시드 폴의 노래를 들으면 낯선 간판들을 지나 밤새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있는 삼청동 그 거리를 걸어가고 싶어진다.


김광석의 모습이 남아있는 ‘시청 앞’
-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by 동물원
 
고 김광석의 친우이자 ‘동물원’의 멤버였던 김창기가 2013년 5월 2집 앨범 [내 머릿속의 가시]의 타이틀곡은 ‘광석이에게’였다. 김창기는 2000년에 솔로 [1집 하강의 미학]을 발표한 후, 13년 만에 [2집 내 머리 속의 가시]를 발표했다.

2집 앨범을 내면서 그는 “처음에는 음악이 현실의 도피처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음악이 내 현실이 되었다. 음악으로 증명해야 했고 증명에 몇 번 실패하면서 자신이 없어지고 두려워졌다. 도망갔던 것이다. 의사로 사는 실생활이 그리 힘들지 않았던 반면 음악은 만들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그러다가 딸아이가 중요한 동기부여가 됐다. 왜 노래를 만들지 않느냐고 했다. 그래서 다시 마음을 잡고 해보기로 했다.”라고 앨범을 내게 된 동기에 대해 말했다.

고 김광석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자면 극복해가는 과정이다. '나에게 남겨진 너의 의미'의 가사처럼 아직도 '호흡이 멈춰질 듯한 순간'이 있지만, 이제는 그것에 휩쓸리지 않고 극복해가며 잘살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극복한 건 아니다, 뭐 이런. 아직도 소주 마시다가 생각나면 울 때가 있다. 난 광석이가 늘 언급되는 것이 좋다. 내 곁에 계속 남아있게 되는 거니까. 그런데 한편으론 내가 광석이를 팔아먹고 있는 건 아닐까 고민도 한다. 또 어떨 때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는 고 김광석이 솔로로 전향한 후 ‘동물원’이 발표한 세 번째 앨범 [동물원 세 번째 노래 모음]에 들어있는 곡이다. 하지만 노래에서는 여전히 김광석의 모습이 느껴진다. 빠앙~하며 들어오는 전철 소리와 사람들의 소리 그 속에 들어있던 너의 모습까지. 세월이 가도 변치 않고 내 기억 속에 남아있던 사람의 뒷모습.

그렇게 우리는 다시 만났고 어색한 시간이 흘렀고 너는 네 길을 갔지. 그래도 이제는 안심이다 너를 보았으니, 영원히 다시는 못 만나는 것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너라는 사람 잘 살고 있어 참 다행이다.

낙엽이 떨어지는 날에는, 무작정 걷고 싶은 날에는 아무 약속이 없는 시청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익숙한 기적소리를 내며 열차가 들어오면 누군가를 만날 것 같은 두근거림에 공연히 옷매무새를 슬쩍 가다듬기도 하고, 오가는 사람들 속에 낯익은 얼굴이 있을까 마주치는 시선에 겸연쩍어지기도 하지만 그것은 마냥 기분 좋은 기다림일 것이다.


가을은 아픈 계절이다. 헤어짐의 계절이고 돌아가는 계절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을을 탄다. 오늘 내가 바라보는 창밖의 풍경이 내일이면 더 허전해져 있을 것을 알기에 오늘의 시간이 저무는 것을 못내 아파한다. 사람이 가고 사람이 와도 마음속에는 늘 그리워지는 한 사람이 있다. 낯선 풍경들을 지나 낯선 사람들을 지나 언젠가는 만나고 싶은 사람.


오늘 낯익은 그리움 하나 들고서 네가 있는 그곳으로 간다. 깊어가는 가을 속으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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