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보고 싶은 사람들
어릴 적 아이들에게는 침대에서 자는 것이 대로망이었다. 특히 이층침대는 동화 속에나 나오는 환상의 모험나라와 같았다. 침대가 있는 친구네 집에 놀러 가면 그 푹신한 매트리스 위에서 한번 뒹굴어보는 것이 소원이었고, 이층침대의 이층에서 잠을 자는 것은 그 침대의 주인인 아이만 가질 수 있는 특권인양 부러웠었다. 우리 집처럼 온돌 방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는 것은 시시하게 느껴졌고 촌스러운 무늬의 무거운 목화솜 이불보다 나풀나풀한 레이스가 달린 침대보와 이불이 덮고 싶었다.
어느 날 읽은 동화책 ‘완두콩 공주’에서 ‘이웃나라 왕자님이 진짜 공주님과 결혼하기 위해 신부감 후보들을 모아 침대 맨 아래 칸에 완두콩 한 알을 넣어두고 이불을 산만큼 첩첩이 쌓아올린 위에서 잠을 자게 했다. 단 한명만이 아침에 일어나서 허리에 뭔가 배기는 것이 있어서 잠을 못 잤다는 말에 그 공주가 진짜라고 판단하고 결혼을 했다’는 이야기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짜 공주가 있다는 말도 그랬거니와 그 완두콩이 뭐 길래 그렇게 허리가 아팠다는 것인지, 그리고 왜 허리가 아파야 진짜 공주인지가 궁금했다. 추리력이 좋아서 완두콩을 넣어두었다는 것을 파악한 것이 영리해서 진짜 공주 대접을 받게 된 것일까?
오랜 세월이 지나고 공주는 제일 좋은 것만 먹고 제일 좋은 것만 입고 제일 좋은 천으로 만들어진 제일 좋은 이불에서 잠을 자는 행복한 존재였기에 그 작은 콩알의 존재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농담처럼 사람들 앞에서 어머니가 말하시던 “우리 딸은 공주처럼 자랐어.” 이 말이 얼마나 고마운 말이었는지, 이 말을 듣게끔 곱게 자라게 하기 위해 우리 어머니가 뒤에서 얼마나 고생을 하셨는지 깨닫게 되었다.
목화솜을 틀어서 일일이 햇볕에 말리고 속천으로 이불을 싸고 앞 뒤 천을 달리하여 모양을 내어서 굵은 이불 바늘로 손수 이불을 지어 가족들의 잠자리를 마련하시던 어머니.
연탄 화덕 앞에 쪼그리고 앉아 밥과 국과 반찬을 만들어 상을 차리고 나면 한쪽에서 누룽지를 긁어 드시거나 식은 밥에 남은 반찬으로 혼자 끼니를 때우시던 어머니의 모습. 새벽마다 몇 번씩 연탄불을 갈고 불구멍을 맞추어 열기를 조절하시고, 아침밥을 차려놓고 아직 컴컴한 바깥으로 일 나갈 채비를 하시던 우리 어머니.
사람들이 자라온 환경이나 살아온 배경은 조금씩 다르더라도 내 어머니를 기억하는 모습은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구멍이 나서 몇 번씩 기운 양말에 가족 누군가의 헤어진 런닝을 입고 늘 ‘나는 배부르다’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우리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요즘은 연탄을 때는 집도 거의 없고, 대부분 보일러를 돌리면 뜨거운 물이 훌훌 나오는 집에서 방마다 침대를 놓고 산다. 아이들에게 ‘침대 밑에는 괴물이 산대’라고 시작되는 동화책을 읽어주면서.
코트깃을 세우고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구수한 된장찌개를 떠올리며 집으로 총총히 발걸음을 돌리는 쌀쌀한 저녁, 오늘처럼 유난히 어머니가 그리워지는 가을밤에는 촉촉한 눈물 한 방울과 함께 추억에 젖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