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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요나 Sep 23. 2017

빌보드 키드의 80년대 음악 이야기 vol.2

80년 후반부터 90년 초반까지의 빌보드 음악 이야기


88서울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로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로 들떠있었던 1988년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진정 잊을 수 없는 해였다. 비행기라고는 대한항공(KAL)밖에 몰랐던 한국 사람들에게 아시아나(Asiana)라는 뮤지션스러운 이름의 대형 국적기 항공사가 등장해 1989년에 있을 전국민의 해외여행자유화를 대비했다.

서울 압구정동에 맥도날드 햄버거 1호점이 문을 열자 강남뿐 아니라 강북 아이들도 모두 ‘압구정 맥도날드 앞’을 만남의 장소로 삼았다. 홍대 인디밴드 1세대격인 ‘내 귀에 도청장치’의 모티브가 된 MBC 뉴스 생방송 도중에 괴한이 뛰어들어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라고 소리치는 어이없는 사고도 발생했다.


정치적으로는 노태우가 근소한 차이로 김영삼을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7.7 선언(민족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특별선언) 및 대북경제개방조치를 발표하며 표면적으로나마 민주주의를 표방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와 일해재단 관련 비리 조사를 위해 헌정사상 처음으로 제5공화국 관련 청문회가 열렸고, 젊은 혈기의 투사였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문회 스타로 급부상했다. 결국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는 재임 중 비리에 대한 대국민 사과 및 재산 전액 국가헌납을 발표 한 후 백담사로 낙향하였다.

가요계에서는 가수 이상은이 노래 ‘담다디’로 MBC 강변가요제 대상을 받으며 선머슴 같은 매력으로 인기의 돌풍을 몰고 왔다. 인기의 정점에서 해외로 음악유학을 떠난 이상은은 자신만의 음악 스타일을 지닌 싱어송라이터로 변모하였고, 'Lee-tzsche'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2007년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이상은의 6집 [공무도하가]가 10위에 선정되면서 그녀는 100대 명반의 10위권에 든 유일한 여성 뮤지션이 되었다.
엄인호, 이정선, 김현식, 한영애, 정서용이 모여 결성한 ‘신촌 블루스’가 첫 앨범 [신촌 Blues]를 발매했다. 고급스러운 블루스의 느낌으로 채워진 앨범의 뛰어난 완성도로 대중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고 신해철이 그룹사운드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라는 곡으로 1988년 대학가요제 대상을 수상하며 혜성처럼 데뷔했다. 오프닝의 화려하게 터지는 신디사이저 연주가 특징인 ‘그대에게’는 신해철이 ‘아기천사’라는 팀의 일원으로 자작곡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를 가지고 강변가요제에 나갔을 때 최종예선에서 탈락한 뒤 고심끝에 만들어낸 곡이었다. 우연찮게 1988년 강변가요제의 대상 수상자는 '담다디'의 이상은이었다. 강변가요제의 탈락을 통해 인트로에서 강렬하게 심사위원과 관객들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것을 터특한 신해철은 맨 마지막 순서라는 악재를 졸던 눈이 번쩍 떠지는 화려한 일렉트릭 사운드로 전환하여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받았다. 대학가요제가 열렸던 체조경기장에는 올림픽때 쓰였던 조명들이 그대로 설치되어 있었고 무한궤도는 이 조명과 폭죽들의 효과를 제대로 누리면서 결국 당당히 대상을 수상했다.
이밖에도 고 김광석이 함께 했던 ‘동물원’이 1집과 2집을 발표했고, 박학기도 '계절은 이렇게 내리네’라는 노래가 우리노래전시회 3집에 실리면서 가수로 데뷔했다.

1988년의 팝 음악계는 1987년을 이어서 조지 마이클의 전성기라고 볼 수 있었다. 조지 마이클의 ‘Faith’는 멋진 청바지를 입고 통기타를 든 그의 마초적인 매력을 한껏 즐길 수 있는 뮤직 비디오와 함께 빌보드 차트 1위 자리를 고수했다. 이후 ‘Got My Mind Set on You’, ‘Father Figure’, ‘One More Try’, ‘Monkey’가 차례로 차트 1위에 오르며 1988년은 조지 마이클의 해가 되었다.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과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식지 않는 열기도 대단했다. 휘트니 휴스턴은 ‘So Emotional’, ‘Where Do Broken Hearts Go’를 차트 1위에 올렸고, 마이클 잭슨은 ‘The Way You Make Me Feel’, ‘Man in the Mirror’, ‘Dirty Diana’로 쉼없이 차트에 오르며 팝의 황제와 황후의 저력을 이어갔다.
영국 출신의 릭 애슬리(Rick Astley) 역시 ‘Never Gonna Give You Up’과 ‘Together Forever’로 산뜻한 유로댄스의 인기를 계속 유지해 나갔다. 여기에 빌리 오션(Billy Ocean)의 ‘Get Outta My Dreams, Get into My Car’와 쿠바 출신의 여걸 글로리아 에스테판(Gloria Estefan and Miami Sound Machine)과 소녀 아이돌계의 라이벌, 티파니(Tiffany)와 데비 깁슨(Debbie Gibson)이 가세하며 댄스뮤직의 유행을 선도했다.

소녀감성의 댄스뮤직과 황제팝의 유행 속에서 유난히 올드팬들에게 인기를 얻었던 곡이 바비 맥펄린(Bobby McFerrin)의 아카펠라송 ‘Don’t Worry, Be Happy’였다. 인도의 영적 지도자 메헤르 바바(Meher Baba)가 던지는 화두였던 이 말은 겉으로는 화려해보이지만, 속으로는 곪을 대로 곪아 터지고 있던 정치계와 사회의 문제들로 지쳐있던 한국의 어른들에게 누군가의 손으로 쓰다듬어주는 위로를 안겨준 노래였다.

이미 고인이 된 로빈 윌리엄스(Robin Williams)와 역시 고인이 된 1대 수퍼맨 크리스토퍼 리브(Christopher Reeve)가 함께 출연한 뮤직비디오는 지금도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웃음 짓게 만드는 그리운 장면으로 남아있다.

'Don’t Worry, Be Happy’와 함께 차트 1위에 오른 비치 보이스의 ‘Kokomo’는 영화 ‘Cocktail’의 O.S.T로, 탐 크루즈와 엘리자베스 슈가 뉴욕의 가난한 바텐더와 부잣집 외동딸로 출연했으며, 영화 전체에 삽입 된 음악들이 대중들에게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이처럼 80년대의 팝 음악계는 마치 포레스트 검프의 초콜릿 상자 같았다. 매주 새로운 신보가 쏟아져 나왔고, 막 접하는 새로운 앨범의 음악들은 상자속의 초콜릿처럼 다채로운 맛과 향을 가지고 있었다.

영국 뉴웨이브 군단의 ‘두 번째 미국 침공(British Invasion)’ 이후 미국의 팝 음악 시장은 팝과 록, 메탈, 영화 오리지날 사운드트랙, 레게음악에 이르기까지 음악의 종합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영국 밴드들의 화려한 외모와 독특한 음악성에 매료당했던 미국인들은 곧 자신들의 정체성을 알리는 신토불이 밴드들을 발굴해 냈다. 우리가 흔히 팝메탈이나 LA메탈이라고 부르는 글램메탈(Glem Metal) 밴드의 시대가 도래 한 것이었다.

록스타의 충격적인 결말이 된 인엑시스


80년대 후반 빌보드 차트의 록밴드 바람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부터 불어왔다. 1977년 호주의 시드니에서 키보드 앤드루 패리스(Andrew Farriss), 드럼 팀 패리스(Tim Farriss), 기타 존 패리스(John Farriss) 삼형제를 바탕으로 결성된 6인조 록밴드 인엑시스(INXS)는 80년에 발표한 데뷔앨범 [INXS]로 일약 호주의 인기스타로 떠올랐다.

1983년 싱글 ‘The One Thing’으로 미국 시장에 데뷔한 인엑시스는 ‘New Sensation’, ‘Devil Inside’, ‘Never Tear Us Apart’ 등의 히트곡으로 미국에서만 600만장이 넘는 판매량을 올렸다. 1987년 발표한 앨범 [Kick]의 ‘Need You Tonight’이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며 맨 엣 워크(Men At Work)의 뒤를 잇는 호주출신 탑 밴드의 반열에 올랐지만, 밴드의 최고 스타이자 프론트맨 이었던 꽃미남 보컬 마이클 허친스(Michael Hutchence)가 1997년 11월 시드니의 호텔방에서 자살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면서 급격히 활동이 위축되었다.

뉴저지에서 온 팝 메탈의 시조 Bon Jovi
 
미국 뉴저지 출신의 대표적인 팝 메탈 밴드이자 꽃미남 밴드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Bon Jovi’는 네 번째 스튜디오 앨범 [New Jersey]을 들고 돌아왔다. 리드 싱어인 존 본 조비(Jon Bon Jovi), 기타리스트 리치 샘보라(Richie Sambora), 키보드 연주자 데이비드 브라이언(David Bryan), 드러머 티코 토레스(Tico Torres)로 구성된 밴드 본 조비는 1984년 첫 싱글 ‘Runaway’가 무려 40주나 빌보드 핫 100에 오르면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이후 스콜피온즈(Scorpions)와 키스(KISS)의 공연 무대에 오프닝을 맡게 되었고, 탄탄한 연주 실력과 시원한 보컬 음색에 출중한 외모까지 갖춘 밴드로 인기를 얻었다. 1985년 두 번째 앨범 [7800° Fahrenheit]을 발표한 뒤, 1986년 발표한 세 번째 앨범 [Slippery When Wet]의 수록곡 ‘You Give Love A Bad Name’, ‘Livin' On A Prayer’, ‘Wanted Dead Or Alive’의 메가 히트로 본 조비는 잘생긴 록밴드의 대명사가 되며 성공가도를 달리게 되었다.

본 조비는 [Slippery When Wet]의 기록적인 성공에 뒤이어서 [New Jersey] 앨범의 ‘Bad Medicine’을 차트 1위에, 그리고 ‘I’ll Be There For You’을 차트 5위에 올려놓는 기염을 토했다.
 

권총과 장미로 상징되는 GN’R
 
1988년 본 조비의 식을 줄 모르는 아성에 도전장을 낸 혜성 같은 신예밴드가 있었다. 그들이 트레이드마크로 삼은 권총과 장미의 문양은 이후 등장한 메탈 굿즈(Metal Goods)의 상징처럼 되었고, 수많은 메탈 꿈나무들이 기타와 함께 권총과 장미가 그려진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유행을 불러 일으켰다.

보컬 액슬 로즈(Axl Rose)와 기타의 트레이시 건스(Tracii Guns)가 각자 몸담았던 ‘Hollywood Rose’와 ‘LA Guns’에서 이름을 따서 만든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는 데뷔 앨범 [Appetite for Destruction](1987)으로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에 오르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펑크와 글램록의 조화 속에 정통 하드록과 미국식 헤비메탈의 계보를 잇는 건즈 앤 로지스는 액슬 로즈의 괴성에 가까운 샤우트 창법과 슬래쉬(Slash)의 경이로운 기타 연주와 함께 LA메탈의 선두주자로 떠올랐다.

롤링스톤지로부터 ‘1980년대 최고의 앨범’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헤비메탈계의 교과서와 같은 작품으로 회자되고 있는 [Appetite for Destruction]는 ‘Sweet Child o' Mine’가 싱글 차트 1위에 ‘Paradise City’가 5위에 올랐다. 연이어 싱글차트 7위에 오른 ‘Welcome To The Jungle’은 1988년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의 영화 ‘더티 해리(Dirty Harry)’에 삽입곡으로 쓰였으며 밴드멤버들이 카메오로 출연해 그들의 인기를 실감케 해주었다.
건즈 앤 로지스가 1992년 발표한 네 번째 정규 앨범 [Use Your Illusion]은 블루스와 클래식음악을 바탕으로 기존의 헤비메탈과 펑크록에 클래식 록큰롤까지 가미한 새로운 방식의 작품이었다. 그리고 [Use Your Illusion I]과 [Use Your Illusion II]로 나누어진 연작 앨범이었던 이 작품은 액슬 로즈가 직접 피아노를 연주한 ‘November Rain’과 ‘Don't Cry’, 그리고 ‘Estranged’라는 팝계에 길이 남을 주옥같은 곡들을 남겼다.

또한 ‘You Could Be Mine’은 영화 터미네이터2: 심판의 날(Terminator 2: Judgment Day)에 삽입곡으로 쓰였으며, 곡의 뮤직 비디오에는 아놀드 슈왈제네거(Arnold Schwarzenegger)가 터미네이터 역할로 직접 출연하였다.

포이즌의 음악보다 더 마약 같았던 백스테이지 스토리


건즈 앤 로지스의 성공에 뒤이어 독약 같은 마성으로 팬들을 휘어잡는 메탈 밴드가 등장했다. ‘Every Rose Has Its Thorn’은 글램 메탈 밴드 포이즌(Posion)의 두 번째 앨범 [Open Up and Say... Ahh!]에 실려있는 파워 발라드곡으로 3주 동안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차지했다. 국내에서는 길게 혓바닥을 내밀고 있는 기괴한 모습의 얼굴을 담은 앨범의 아트웍이 혐오감을 일으킨다고 해서 혓바닥 위에 스티커를 붙인 채로 판매가 되었다.
포이즌은 1983년 미국 펜실베니아의 멘체스버그에서 보컬 브렛 마이클스(Bret Michaels), 기타 맷 스미스(Matt Smith), 베이스기타 바비 달(Bobby Dall), 드럼 리키 로킷(Rikki Rockett)이 함께 결성했다. 글램 메탈을 이른바 헤어 메탈(Hair Metal)이라고 부르게 된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것이 바로 포이즌의 데뷔 앨범 [Look What the Cat Dragged In]이었다. 앨범 자켓 사진 속의 멤버들은 각양각색의 컬러를 입히고 크게 부풀어 올린 헤어스타일과 짙은 화장을 하고 매혹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이들의 화려하고 중성적인 차림은 오히려 소녀팬들에게 크게 각광을 받아, 이후 등장하는 팝 메탈 밴드들의 비주얼에 큰 영향을 주었다.
포이즌의 결성에는 건즈 앤 로지스와 극적으로 관련이 되는 일화가 있다. 기타리스트를 구하기 위해 오디션을 보던 포이즌의 세 멤버들에게 두 명의 후보가 남겨졌었고, 그들은 더 화려하고 감각적이라는 이유로 씨.씨.데빌(C.C. DeVille)을 선택하고 나머지 한 사람을 탈락시켰다. 바로 그들이 탈락시킨 후보가 후에 건즈 앤 로지스에서 세계적인 기타리스트로 이름을 알린 슬래쉬(Slash)였던 것이다.

이 결정은 훗날 두 밴드의 운명을 크게 갈라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씨.씨.데빌은 1991년 MTV어워즈에서 마약에 취한 채로 엉뚱한 곡을 연주했고 화가 난 보컬 브렛 마이클스와 크게 싸움을 하고는 팀을 탈퇴했다. 교체 된 마성의 기타리스트 리치 코젠(Richie Kotzen)은 누구못지않은 수려한 용모로 포이즌과 딱 어울렸지만, 드러머 리키 로킷의 약혼녀와 문제를 일으키고 그 역시 팀을 떠나게 되었다. 이후 블루스 사라시노(Blues Saraceno)로 한차례 더 기타리스트의 교체를 겪은 후 씨.씨.데빌은 다시 포이즌으로 돌아왔고 그들은 글램 메탈의 선구자로 불리며 현재도 여전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화려한 외모와 무대 퍼포먼스 그리고 두성을 울리는 가창력을 자랑하던 글램메탈 밴드들은 80년대를 화려하게 꽃피우고 90년대의 시작과 함께 저물어갔다. 지나치게 외모에 집중하는 그들의 음악을 폄하하거나 계집애들이나 좋아하는 밴드라는 조롱을 하는 사람들 역시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 시대를 열고 풍미하는 것이 단지 외모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위에 거론한 대표적인 밴드 외에도 머틀리 크루(Motley Crue), 신데렐라(Cinderella), 워렌트(Warrant), 익스트림(Extreme) 같은 걸출한 밴드들이 보여준 음악은 가히 존경을 받을만한 80년대의 감성이자 글램 메탈이라는 하나의 장르를 확립시킨 열정의 산물이었다.
함께 음악을 들었던 사람이 떠나가도 우리에게는 그 음악이 남는다. 그리고 음악은 추억이 된다. 오래된 그 시절을 기억하며, 80년대로 가는 음악여행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행복한 시간이 되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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