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권장하는 영화 중경삼림
중경삼림(Chunking Express. 1994. 홍콩) 왕가위 감독. 금성무 임청하 양조위 왕정문 주연.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내 사랑은 만년으로 하고 싶다.”라는 대사로 유명한 영화 <중경삼림>은 감각적이고 현란한 퇴폐미의 절정을 보여준 왕가위 감독의 1994년 작품이다. <중경삼림>은 <동사서독>을 제작하고 있던 왕가위 감독이 두 달간의 짧은 공백 기간 동안 찍은 영화로, 촬영을 하면서 만들어 낸 살아 있는 대사들과 흔들리는듯한 핸드 헬드 촬영기법 등이 홍콩의 밤거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연스러운 조명과 어우러져 독특한 영상을 만들어냈다.
사랑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유통기한이 지난 통조림을 사 모으는 금성무는 금발의 가발을 쓰고 언제나 레인코트를 입고 다니는 임청하를 바에서 우연히 만난다. 잠이 든 임청하를 대신해서 금성무는 혼자 TV를 보면서 혼자 이인분의 음식을 먹고 임청하의 구두를 벗겨주고 떠난다. 함께 있지만 혼자일 수밖에 없는 그들 앞에 습관처럼 되풀이되는 이별, 그것의 또 다른 이름은 고독이다.
캘리포니아로 가기를 꿈꾸는 왕정문은 삼촌의 음식점에서 경관 633(양조위)을 만난다. 같은 공간 안에 있어도 서로를 볼 수 없는 두 사람에게 사랑이란 혼자 타는 에스컬레이터처럼 일방통행일 뿐이다.
캘리포니아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남긴 채 떠났던 왕정문이 돌아왔을 때 양조위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두 사람은 이제 서로를 마주보며 사랑하게 되는 걸까.
왕가위의 영화는 답을 주지 않는다. 고독이라는 더깨를 꼭꼭 뒤집어쓰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진실되게 나를 전부 보여주어야 하는 대상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것은 이 또한 지나가버릴 허상이기 때문이다.
영화 중경삼림을 이야기할 때 그 현란한 야경과 함께 왕정문이 식당에서 항상 틀어 놓던 ‘Mamas & Papas’의 ‘California Dreaming’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영화의 주 무대인 중경맨션은 홍콩 침사추이 남부에 위치하고 있는 오래 된 게스트 하우스 건물이다. 저렴한 숙박비 때문에 세계에서 모여든 배낭 여행객들이 많이 묵는 곳으로 유명하며, 그 중에서도 서남아시아인들의 장기 숙박이 많은 곳이다. 영화에서 왕정문이 창문으로 양조위를 바라보는 길고 긴 에스컬레이터씬으로 유명한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홍콩 섬에 있는 관광지인데, 영화 속 장면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홍콩에 가면 꼭 한 번씩 들르는 명소가 되었다.
‘나’를 찾아서, 또는 ‘나’를 위해서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 그리고 지나간 사랑이라는 기억의 흔적을 한 권 더해야 할 사람들에게 영화 <중경삼림>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