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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요나 Sep 26. 2017

클래식부터 대중음악까지 영화를 말하다. vol.1

영화속의 클래식 음악

멀고 먼 옛날, 영화가 무성에서 유성으로 넘어왔을 때 가장 가치 있는 발견은 음(音)과 음악(音樂)의 활용이었다.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감독의 영화 ‘싸이코(Psycho. 1960)’와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감독의 영화 ‘죠스(JAWS. 1975)’는 음악이 얼마나 완벽하게 영상을 대변할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예이다.
영화 속에서 음악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스크린을 휘돌아다니다가 잠시 숨을 멈추고 웅크리는가하면 또 살그머니 움직인다. 음악은 절대 영화의 맥을 끊지 않고 배우의 대사를 막지 않으며, 관객의 시야를 방해하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와 함께 암전 된다. 이렇게 영화는 관객과 배우와 대본과 영상과 음악이 만나 아름다운 매듭으로 완성되는 동심결인 것이다.


14세기 이후 중세 암흑기의 신학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려는 르네상스운동이 가져온 인본주의는 18세기의 계몽주의 사상과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과학적 합리적인 자본주의를 형성했다. 많은 사람들은 문자 이외에 사실적이고 과학적인 형상으로 현실의 움직임을 기록하고 싶어 했다. 이러한 인류의 오래된 소망을 실현한 것이 바로 영화였다.

토마스 에디슨(Thomas Alva Edison)이 1891년에 발명한 키네토스코프(kinetoscope)는 지금의 만화경과 같은 구조를 가진 장치였다. 최초의 영화 상영기라 할 수 있는 에디슨의 영사기는 움직이는 이미지를 촬영하는 키네토그래프(Kinetograph)와 1인용 관람기인 접안 장치 키네토스코프로 간단하게 구성되어있어서 관객 혼자서 장치를 들여다보며 영화를 관람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한 사람만 들여다볼 수 있는 형태였기 때문에 인기 있는 영화는 항상 긴 줄이 늘어섰다. 이에 에디슨은 대중영사기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바이타스코프(Vitascope)라는 영사 장치의 특허를 냈다.

에디슨은 영화 사운드의 도입과 발전에도 크게 기여를 했다. 1877년 축음기를 발명한 에디슨은 키네토그래프와 축음기를 연결시킨 키네토폰(Kinetophone)이라는 장치를 개발했다. 그리고 최초의 영화촬영 스튜디오인 블랙마리아(Black Maria) 스튜디오를 건립하고 다양한 영화 작품들을 제작하였다.


1894년 에디슨이 만든 키네토스코프(Kinetoscope)를 보고 감명을 받은 프랑스의 오귀스트(Auguste Lumière)와 루이 뤼미에르(Louis Jean Lumiere)형제는 스프로켓 구멍을 이용해 카메라 안에서 필름을 감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1895년 뤼미에르형제는 카메라, 인화 기계, 영사기 역할을 하는 ‘움직임을 담은 기계'라는 뜻의 '시네마토그래프(Cinematograph)'를 만들어 특허를 냈다.

1895년 12월 28일 뤼미에르 형제는 파리의 그랑 카페 카퓌신에서 역사적인 최초의 대중 영화를 상영했다. '담요 위에 뛰어내리기', '아기의 식사', '바다에서 수영하기' 등 일상생활을 직접 촬영한 각 주제별로 40초 남짓한 영화는 관객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1902년 프랑스의 조르주 멜리에스(Georges Melies)가 만든 최초의 '공상과학(Science Fiction)‘ 영화 '달나라여행(Voyage To The Moon)'은 표현주의의 시초가 된 작품이었다. 총 상영시간이 13분인 이 영화에는 최초의 직업 배우들이 출연하고 특수효과를 사용하였으며, 영화에 줄거리를 도입하는 등 영화연출의 기본적인 틀을 창조하였다.
에디슨과 함께 일하던 에드윈 포터(Edwin S. Poter)는 조르주 멜리에스가 만든 영화의 기초를 정리하고 더욱 발전시켰다. 에드윈 포터는 1903년 발표한 영화 '대열차 강도'에서, 무대연극 수준의 단순 촬영에서 벗어나 여러 장면을 나눠 촬영하고 편집하며 이동 촬영을 하는 등 이후 서부 영화의 모체가 되는 촬영 기법을 창안해냈다.


에디슨 영화사에서 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던 신문기자 출신의 시나리오 작가 데이비드 워크 그리피스(David Wark Griffith)는 영화 '국가의 탄생(1915)'을 통해 롱숏, 미디엄숏, 클로즈업 등 다양한 촬영 기법과 숏의 변화를 통한 극적 구성과 연속 편집등의 편집 테크닉을 더욱 발전 시켰다.
극영화의 일대 전기를 일으킨 '국가의 탄생'의 성공 이후, 미국의 영화제작산업은 활발하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영화인들은 기후가 맑고 건조하여 필름을 장기간 보관하기에 적합하고 야외촬영에 안성맞춤인 도시 로스앤젤레스의 할리우드(Hollywood)로 모여들었다.

무성영화 시대에도 영화 음악은 존재했다. 1895년 파리에서 최초 상영된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에서도 영상에 맞춰 피아니스트의 음악 반주가 이루어진 최초의 영화음악을 사용하였다. 물론 그 당시의 음악은 영사기의 시끄러운 소리와 관객들의 소음과 신문물에 대한 공포심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1927년 뉴욕의 워너극장에서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 싱어(Jazz Signer)'가 세상에 공개되면서 영화는 무성에서 유성 시대를 열며 시각과 청각을 갖춘 완전한 생명을 얻게 되었다. 이처럼 무성 필름 뒤에서 반주와 효과음으로 시작되었던 영화음악은 유성시대를 맞이하여 마침내 영화사운드의 삼대요소인 ‘대사(Dialogue)’, ‘음향(Sound Effects)’, ‘음악(Film Score)’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영화팬들이 사랑하는 클래식음악
 
<미완성 교향곡(Leise Flehn Meine Lieber)> 윌리 프로스트(Willi Forst) 1933
- 슈베르트 교향곡 제8번 B단조, 아베 마리아-


1933년 독일에서 제작 된 '미완성 교향곡(Leise Flehn Meine Lieber)'은 백작의 딸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했던 슈베르트가 연인의 결혼식에서 연주했던 미완성 교향곡과 슬픈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흑백의 필름 속에서 아름답게 흘러나오는 영화이다. 영화속의 미완성 교향곡은 마치 오래된 레코드판으로 듣는 한편의 아름다운 가곡같은 느낌을 준다.

영화감독인 윌리 프로스트(Willi Forst)는 슈베르트가 남긴 13편의 교향곡중 미완성으로 남은 '교향곡 제8번 B단조'에 대한 의문에 착안하여 영화를 제작했다. 슈베르트 역을 맡은 주연 배우 한스 쟈레이(Hans Jaray)는 배역에 충실하기 위해 슈베르트의 외모와 행동은 물론 생활방식까지 철저히 연구하고 분석했다고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슈베르트가 꿇어앉아 기도하는 장면에서 흐르는 ‘아베 마리아’는 잊을 수 없는 첫사랑에 대한 가슴 아픈 그리움을 위로해 준다.


<밀회(Brief Encounter)> 데이비드 린(David Lean) 1945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2번-

영화 '밀회(密會)'는 '콰이강의 다리(The Bridge On The River Kwai 1957)', '아라비아 로렌스(Lawrence Of Arabia. 1962)', '닥터 지바고(Dr. Zhivago. 1965)' 등의 대작들을 연출한 영국의 데이비드 린(David Lean) 감독이 2차 대전 직후에 만든 초기작품이다.
가정이 있는 두 남녀의 짧은 사랑과 이별의 시간을 그린 밀회는 영화음악을 이용한 청각효과를 연출에 처음 도입한 영화로 높이 평가받고있다. 데이비드 린 감독은 기차의 경적 소리를 음향효과로 활용하는 한편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단순히 배경음악이 아니라 주인공의 회상 장면에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관객들의 시각과 청각이 주인공의 내적 변화에 이입되도록 하였다.
밀회에서 처음 시도한 클래식 음악의 극적인 사용은 프랑스의 누벨바그(Nouvelle Vague) 감독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루이 말(Louis Malle)은 1958년 발표한 영화 '연인들(Les Amants)'에서 ‘브람스 현악 6중주곡’을 사용했고, 끌로드 샤브롤(Claude Chabrol)은 영화 '이중 열쇠'에서 바그너와 모차르트의 음악을 사용하여 영화의 몰입도와 극적인 효과를 높였다.

아카데미상 후보로 선정된 최초의 영국영화인 밀회는 제1회 칸국제영화제 그랑프리상(지금의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등 그 작품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리메이크작품으로 앨런 브리지스(Alan Bridges) 감독이 연출하고 소피아 로렌(Sophia Loren)과 리처드 버튼(Richard Burton)이 출연한 '수요일의 연인'이 있다.


<엘비라 마디간(Elvira Madigan)> 보 비더버그(Bo Widerberg) 1967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이 아름답게 깔리는 영화 '엘비라 마디간'은 1889년 덴마크의 한 숲 속에서 스웨덴 육군 장교 식스틴과 덴마크의 줄 타는 소녀 엘비라 마디간이 동반 자살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다.
엘비라 마디간은 1967년 칸 영화제에서 18세의 신인 피아 디거마크(Pia Degermark)가 여우주연상을 받으면서 스웨덴 영화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삽입곡으로 쓰인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은 이후 ‘엘비라 마디간’이라는 곡명이 부쳐질 정도로 영화음악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귀족 출신의 31세 유부남 장교와 서커스단 출신 18세 소녀의 사랑의 기쁨으로 가득했던  아름다운 피아노 협주곡은 그들이 부딪힌 냉혹한 현실 앞에서 점점 작아지면서 후반으로 갈수록 사라져간다. 엘비라 마디간의 마지막 정지화면은 영화사상 가장 잊을 수 없는 라스트 씬중 하나로 영화팬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시계태엽장치 오렌지(A Clockwork Orange)>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1971
-베토벤 9번 교향곡 2악장, 4악장. 엘가 위풍당당 행진곡 1번-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감독의 1971년 작품 '시계태엽장치 오렌지'는 영국문학가 앤터니 버지스(Anthony Burgess)의 실화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앤터니 버지스는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중에 아내가 미군 병사에게 윤간을 당한 뒤 학살을 당한 끔찍한 기억을 소설에 담아 1962년 뉴욕에서 이 책을 출간했다.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Dr. Strangelove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 1964)'.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A Space Odyssey. 1968)'에 이어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미래 3부작의 마지막편인 시계태엽장치의 오렌지는 어린 청소년들이 저지르는 폭력에 대한 잔인한 묘사가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알렉스가 ‘Singing In The Rain’ 노래를 부르면서 폭행하는 장면에는 언론의 비난이 집중되었다. 영화는 개봉 당시 미국에서 X등급을 받았고, 영국에서는 모방범죄가 여러 건 발생하자 결국 영구상영금지령을 내렸다.

영화 시계태엽장치의 오렌지에서는 주인공 알렉스의 심리적인 변화를 베토벤의 9번 교향곡 2악장과 4악장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하여 시종일관 불안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1번으로 폭력이 결국 폭력을 기생시킨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기성세대를 조롱하는 풍자적 색체를 표현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1844년의 영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 '배리 린든(Barry Lyndon. 1975)'에서도 헨델의 ‘사라방드’와 비발디의 ‘첼로 콘체르토 E단조 3악장’을 사용하여 등장인물들의 내적인 혼란을 의미하는 영상과 고전음악의 조화를 완벽하게 보여주었다.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Kramer vs. Kramer)> 로버트 벤튼(Robert Benton) 1979
-비발디 만돌린과 현과 하프시코드를 위한 협주곡, 두 개의 만돌린과 현과 오르간을 위한 협주곡 G장조-
 


로버트 벤튼 감독의 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는 명배우 더스틴 호프만(Dustin Lee Hoffman)과 메릴 스트립(Meryl Streep)의 절제된 연기와 함께 주제곡으로 사용된 비발디의 ‘만돌린과 현과 하프시코드를 위한 협주곡’, ‘두 개의 만돌린과 현과 오르간을 위한 협주곡 G장조’와 영국의 클래식 작곡가 헨리 퍼셀(Henry Purcell)의 ‘트럼펫과 현을 위한 소나타’가 진한 감동을 안겨주는 작품이다. 뉴욕의 센트럴파크에서 영화 촬영 당시 비발디의 음악을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를 보고 즉석에서 주제음악으로 결정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클래식을 비롯하여 현대적인 팝과 재즈에 이르기까지 영화와 함께한 120년 동안 영화음악은 시대와 환경을 표현하는 문화의 지표와도 같았다. 무성영화 시대에 반주음악으로 시작 된 초기 영화음악은 대중들에게 익숙한 클래식음악이 주류를 이루었다. 하지만 베토벤과 브람스, 슈베르트, 모차르트의 잘 알려진 피아노곡을 주로 사용하던 영화음악계에는 심각한 저작권 문제가 대두되었고, 영화음악은 점차 완성된 기성음악에서 벗어나 구성과 연출에 따라 작곡하는 테마음악으로 바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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