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 [Bringing It All Back Home]1965
25세의 나이에 일찍이 포크음악의 왕좌에 앉아 반전과 저항운동의 상징으로 불리운 밥 딜런은 이제 시대는 변화할 것이며 자신도 그 흐름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첫 번째 결과물인 [Another Side Of Bob Dylan]앨범은 고정 되어있던 포크 음악의 틀을 깨기 시작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밥 딜런은 여름동안 뉴욕 근처의 시골 마을 우드스탁에 있는 알버트 그로스먼(Albert Grossman)의 집에 은신한 채, 변화에 목말라하는 자신의 내면을 악보에 써내려갔다.
그 1964년은 비틀즈와 밥 딜런이라는 락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두 뮤지션이 공식적인 첫 만남을 가진 해였다. 비틀즈도 음악적 과도기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기에, 그들은 서로가 원하는 것에 대해 깊은 공감을 가졌지만, 그 의식의 흐름을 먼저 따라 간 것은 밥 딜런이었다.
밥 딜런이 느끼는 무거운 내적 갈등은 더욱 철학적이고 자아성찰적인 가사로 이어졌다.
레코딩이 진행되는 동안 밥은 속사포처럼 마음 속에 품고 있던 가사들을 노래로 쏟아냈고 밴드는 미처 이를 따라잡지 못할 때가 많았기 때문에, 앨범의 수록곡 ‘Bob Dylan's 115th Dream’에서는 큐 사인이 맞지 않은 딜런과 밴드의 웃음소리가 그대로 녹음되기도 했다.
밥 딜런의 내면과 외면의 갈등은 일렉트릭과 어쿠스틱 연주로 양면화 되어 앨범속에 표현되었다. 이렇게 완성 된 작품이 바로 세간의 비난과 환호를 동시에 받은 명음반 [Bringing It All Back Home]이다.
밥 딜런은 이 앨범이 유명한 로큰롤 뮤지션 척 베리(Chuck Berry)의 [Too Much Monkey Business]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선공개 된 싱글 [Subterranean Homesick Blues]은, ‘비트 제너레이션(Beat Generation: 술, 음악, 마약 등을 즐기며 특별한 목적 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비트족을 칭하는 말)‘의 대표 작가였던 잭 케루악(Jack Kerouac)의 저서 ‘지하의 사람들 (The Subterraneans)’에서 제목을 가져 온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음악에 대한 심도있는 고뇌는 대중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포크 음악의 살아있는 상징과 같았던 밥 딜런을 사랑했던 전세계의 팬들은 앨범 수록곡중에 일렉트릭 록 음악인 [미스터 탬버린 맨(Mr. Tambourine Man)]을 듣고 충격을 받았고, 전자 기타를 매고 무대에 선 밥 딜런을 향해 관객들은 쓰레기를 집어던졌다. 그러나 그 무엇도 진보를 향한 딜런의 발걸음은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결국 시대를 앞선 명곡 [미스터 탬버린 맨(Mr. Tambourine Man)]은 빌보드 차트 1위와 UK 차트 1위에 올랐으며, 2002년 그래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다.
틀을 깬다는 것은 어렵고도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불과 스물 다섯 살의 밥 딜런은 저항과 비판에는 반드시 변화와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깊이 통감하고 있었다.
냉전과 반체제를 향한 투쟁은 이제 저물어버린 20세기의 산물이 되었다. 하지만 요동치는 역사의 흐름 속에 늘 고고하게 깨어있었던 밥 딜런의 음악은 21세기에도 여전히 행동하는 양심의 소리가 되어 그를 사랑하는 모든 팬들의 마음속에 살아 숨 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