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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요나 Oct 14. 2018

이효리가 부럽다

6집 [Black]에서 보여준 이효리의 과거, 현재, 미래,


 역시 이효리였다. 명불허전, 활동 재개와 동시에 종방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며 시대를 아우르는 화제의 인물들만 나온다는 jtbc 손석희 사장의 ‘뉴스룸’에서 모셔갈 정도였으니, 이효리는 더 이상 걸그룹 ‘핑클’의 멤버 효리가 아니라 한국 대중문화의 아이콘이자 사회적 영향력의 중심인물이 되어 있었다.

이효리 타투, 이효리 피어싱, 이효리 개량 한복, 이효리 눈가주름, 모든 것이 실검 1위에 올랐다. KBS2 해피투게더, MBC 라디오스타, SBS 무한도전 등 지상파를 대표하는 예능프로그램에서 매일같이 이효리를 볼 수 있었다. 활동 초반부터 ‘송송커플’이라 불리는 송혜교, 송중기 커플의 결혼발표라는 허리케인급 격랑을 맞았지만 거친 풍랑 속을 유유히 빠져나오는 잭 스패로우 선장의 블랙 펄호처럼 이효리는 활동 내내 기사 1면을 놓치지 않으며 노련한 건재함을 과시했다.


하지만 엄청난 파장만큼 인색한 평가 역시 많았다. 이효리 본인이 직접 9곡을 작사하고 8곡을 작곡한 6집 앨범 [Black]은 수록곡 ‘Seoul’이 음원 공개 직후 순위 차트 1위에 올랐던 것 말고는 김빠진 맥주처럼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화려함의 극치였던 음악 프로그램의 출연 무대에서도 ‘White Snake’의 공연시 얼굴 가득 번쩍였던 보석 콜라주 메이크업이 지방시의 지난 컬렉션을 똑같이 모방했다는 지적이 있었고, 난해한 춤과 어색한 노랫말은 과장된 메이크업과 삼박자 불협화음을 이루며 노래도 무대도 뚜렷한 음악성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을 받았다.
 


야심차게 준비한 ‘Seoul’의 뮤직 비디오는 호러 무비와 운동복 광고가 접목된 것처럼 보였다. 제주의 대자연 속에서 마음껏 춤추는 순수한 이효리의 모습과 어두운 서울의 밤거리를 극도로 대비시킨 불편한 편집은 요가와 현대무용을 접목시킨 요란한 춤사위 속에 미숙한 가창력과 밋밋한 사운드가 함께 묻혀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동안 방송가에서 개념 있는 가수로 손꼽히던 이효리는 촛불 시위 등에 음으로 양으로 참가하면서 받았던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던 서울의 지난 어두운 모습을 ‘Seoul’ 담아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Black’의 뮤직 비디오에서는 멀리 미국 사막에 가서도 유기견을 구하는 선행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처럼 소신 있게 행동하는 양심인 이효리가 4년 만에 보여준 자랑스러운 자작물들은 그녀의 음악을 기다리던 많은 팬들에게 적잖은 논란거리를 만들어주었다.


 마돈나의 ‘보그’로 유명해진 ‘보깅댄스(Voguing Dance)’
 https://youtu.be/EsHXyu8hMnM


보깅댄스를 대중적으로 알려지게끔 한 것이 바로 마돈나의 1990년 뮤직비디오 ‘Vogue’였다. 당시 뉴욕의 유명한 보깅댄서들이 직접 안무를 하고 뮤직비디오에 참여하였고 앨범도 대히트를 했던 것만큼, 보깅댄스는 매우 유명한 장르가 되었지만 그 성정체적인 취향의 특성으로 인하여 다른 장르들만큼 널리 대중화가 되지는 못했다.

https://youtu.be/sTJRjrw23P0

보깅과 혼합하여 추는 ‘와킹댄스(Waacking Dance)’는 현 비보잉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라킹댄스(Locking Dance)’와 보깅댄스의 ‘Old Way’ 모션을 발전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7,80년대 디스코 댄스가 한참 유행했을 때처럼 팔을 커다랗게 휘두르고 텐션을 주는 장면이 많다. 와킹댄스가 실루엣 그 자체로 고혹적이면서 여성성을 부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면, 보깅댄스는 절도 있는 모션과 테크닉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또 이효리.
 
이효리는 앨범을 준비하면서 요가와 가장 어울리는 새로운 춤을 만들기 위해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선택한 것이 ‘현대무용’이라고 했다. 그만큼 이효리는 새 앨범의 음악과 춤의 비중을 동일시했고, 앨범 음원이 채 공개가 되기도 전에 이효리에게 춤을 가르쳤다고 방송공개 된 남자 무용가는 살아온 생(生)중에 가장 유명한 날들을 보냈을 것이 자명할 만큼, 효리댄스는 미리 유명해졌다.

https://youtu.be/p7E4JXnMEec

음악 방송 무대에서도 이효리는 ‘White Snake’와 ‘Black’의 분장과 퍼포먼스를 FKA Twigs와 비슷하게 흉내 냈지만, 가창력과 춤 실력에서 두 사람은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마치 한 사람은 왜 세계적인 뮤지션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무대에서 내려오는 즉시 제주도 소길댁으로 돌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 처럼 답이 정해진 쇼 퍼포먼스가 반복되었다. 흉내도 걸작의 차원에 이르면 오마주가 되지만, 누군가가 알든 모르든 따라하고 보자는 것은 언제라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고 본인의 예술관에도 상처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효리의 흉내 내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Seoul’ 뮤직 비디오


jtbc 뉴스룸에서 선공개가 되어 마치 손석희 사장이 든든한 지원군인듯 포석을 열어주었던 그녀의 뮤직 비디오 ‘Seoul’은 호주 출신 일렉트로닉 뮤지션 Flume & Chet Faker의 ‘Drop The Game’와 한 쌍인 것처럼 닮아있었다. 어두운 서울의 밤거리를 걷는 후드 차림의 여자와 브루클린의 밤거리를 걷는 후드를 입은 남자, 그들은 지나치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을 따라 춤을 추고 흔들리는 모습으로 밤의 암울함 속에 주저앉는다.


똑같은 플롯과 똑같은 스타일을 우연이라고 한다면, 마치 같은 노래를 틀어놓은 것처럼 똑같은 리듬과 멜로디는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이효리 뮤비의 제주도 풍경을 뺀다면, 두 곡은 마치 남과 여의 일란성 쌍둥이처럼 그냥 똑같아 보인다. 두 곡을 동시에 들었을 때의 느낌은 ‘Drop The Game’에 이효리가 피처링을 한 것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https://youtu.be/6vopR3ys8Kw

https://youtu.be/89Rq4_QcBkw

‘Seoul’의 민낯을 들여다 본 사람들이 느끼는 괴리감은, 더이상 100% 창작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시대의 풍조로 당연시 되어야 하는 것인가.

이효리, 여왕의 부활은 결국 책임은 만든 사람이 아니라 어리석은 대중들의 몫이라는 것을 또 한 번 느끼게 하는 소문만 거창한 잔치로 막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효리.

이효리는 제 1세대 아이돌 가수로 시작해서 2003년 솔로 데뷔를 하며 자신만의 이미지를 브랜드화 시킨 첫 여자가수이다. 첫 솔로 앨범의 타이틀곡 ‘10 Minutes’ 성공 이후, 발매하는 앨범마다 독특한 컨셉과 스타일을 대히트시키며 유행을 만들어내는 ‘마이더스의 여왕’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처럼 변화무쌍한 그녀의 행보는 끊임없이 노력하는 뮤지션으로서의 자세와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4집 앨범의 표절판정과 각종 가십에도 불구하고 이효리의 최대장점인 털털한 성격과 사람 좋은 웃음은 그녀를 떠나지 않았다. 독거노인과 결식아동, 동물보호에도 앞장서서 봉사활동을 펼쳐 온 이효리는 사회적 문제에도 늘 관심을 가지며 불합리함에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는 보기 드문 연예인중 한명이다. 나이듦을 인정하고 잊혀지는 것이 무서웠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이효리에게서는 연예인병이 덕지덕지 붙은 성형괴물 같은 방부제스타들이 눈꼴사납게 지어내는 거짓말을 느낄 수가 없다.

누구나 필러와 보톡스를 맞고 양악수술을 하고 금발로 물들인 머리와 엄마 것을 훔쳐 바른 것처럼 진한 립스틱을 바르고 하이힐 위에서 춤을 추는 아이돌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고개를 흔든다. 가나다라도 제대로 말하지 못할 것 같은, 한 음절 노래에도 볼썽사나운 기교를 섞는 아이들만 빼곡한 채널을 돌리다 보면, 이효리처럼 시원털털 사이다 같은 발언과 이효리처럼 치렁치렁 자연스러운 검은 머리가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여섯 번째 앨범이 생각보다 부진했다고 언론과 평단에서 아무리 절하하고 짖어대도 이효리 본인에게는 그저 섬에 사는 ‘소길댁’이 서울 나들이 한번 잘하고 간다고 기억될지도 모르는 일주일이었다.
한강의 모래알처럼 많은 걸그룹들 속에 제대로 기억되는 여자가수로 분명히 남아있는 이효리.
그래서 이효리인 것이다. 여전히. 그것이 사람들이 이효리를 또다시 기다리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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