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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요나 Oct 31. 2018

김용의 ‘소오강호’

천지기운의 조화로운 상징이었던 옛 중국의 음악들

BC 3세기경 거대한 유럽대륙을 하나의 제국으로 형성하고 풍요를 누리던 로마제국이 잇따른 황제들의 부정부패로 몰락의 길을 걷고 있을 때, 중국의 한나라 역시 지방 주(州)·군(郡)의 장관들이 무력으로 군벌화 된 지방할거 세력으로 성장하여 피비린내 나는 춘추전국시대를 예고하고 있었다.

그 대표적 세력은 연주(兗州)의 조조(曺操), 익주(益州)의 유언(劉彦), 기주(冀州)의 원소(袁紹), 양주(揚州)의 원술(袁術), 형주(荊州)의 유표(劉表), 강동(江東)의 손견(孫堅), 예주(豫州)의 유비(劉備)였다.


오나라의 명장 주유는 문무뿐 아니라 “곡조에 문제가 있으면 주랑이 고개를 돌린다.(曲有誤 周郞顧)”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 예로부터 중국인들에게 음악은 천지기운의 조화로운 상징이었다.

음악의 조화는 바람의 조화로 이어지고 그것은 천지기운의 조화로 이어진다. 음악은 눈으로 볼 수는 없어도 바람을 통해 전달되기 때문에 몸으로 느낄 수 있으며, 바람도 볼 수는 없지만 느낄 수는 있다. 바람에 닿은 사물은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음악이 조화를 이루면 비와 바람이 제때 제 기능을 다하게 되어 농사가 잘되고 백성들이 풍요로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적벽대전을 앞 둔 주유가 수하의 부하들 및 제갈량과 더불어 각자 손바닥에 적을 깨뜨릴 수 있는 계책을 적기로 하자, 모두 화공을 뜻하는 ‘불 화(火)’자를 썼으나, 유독 제갈량만이 ‘바람 풍(風)’자를 쓰고 말하기를, “여러분들이 불을 사용하면, 나는 바람으로 그것을 도울 것이오.”라고 했다는 설화도 그만큼 제갈량의 천지기운을 읽을 줄 아는 현명함을 보여주는 대목일 것이다.


중국에서 최초로 악률을 정립한 사람은 관포지교(管鮑之交)로 널리 알려진 관중(管仲)이다. 그는 당시의 수학을 이용하여 궁(宮), 상(商), 각(角), 치(徵), 우(羽)의 오음을 삼분손익법(三分損益法)으로 음정을 정했다. 중국 고대 유가의 경전인 오경(五經)의 하나인 ‘예기(禮記)’중 한대에 완성된 유가 음악사상의 집대성인 ‘악기(樂記)’편은 후대 중국 음악사상의 근간이 되었을 뿐 아니라 동아시아 음악 발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한 무제 때의 음악가였던 이연년(李延年)이 황제 앞에서 불렀다고 알려진 노래 ‘가인곡(佳人曲)’은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는 말의 어원이 된 것으로 유명하며, 2004년 장예모 감독의 영화 ‘연인’에서 배우 장쯔이가 금성무 앞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눈 먼 기녀로 등장한다.


소오강호의 원작 ‘광릉산’


죽림칠현(竹林七賢)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혜강(康)은 위대한 금 연주가였는데 특히 「광릉산(廣陵散)」이라고 하는 곡을 잘 연주했다고 한다. 혜강은 사마씨들의 미움을 받아 사형당하기 직전에도 마지막으로 「광릉산」을 연주하게 해달라고 청원했다. 「광릉산」은 후대에도 여러 차례 개량되어 지금까지 전해져오고 있는데 이곡이 소설과 영화로 널리 알려진 「소오강호(笑傲江湖)」이다.


김용의 무협소설 [소오강호]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소오강호(1990)]는 호금전, 정소동, 서극 등의 연출로 제작되었다. 영화음악을 담당한 황점이 작곡과 작사를 맡았으며, 주인공 ‘영호충’을 연기한 허관걸이 직접 부른 주제가 ‘창해일성소(滄海一聲笑)’는 ‘파도에 웃음을 싣다’라는 제목의 의미처럼 강호의 혼란을 벗어나 모든 근심을 잊고 살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후 정소동 감독의 〈동방불패(1992)〉 등 많은 무협 영화에 쓰였다.
 


남북조시대에는 불교가 융성하면서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과 인도 음악의 영향도 커졌다. 피리로 알려져 있는 악기 필률(篳篥)이 서북의 구자국으로부터 수입되었고 곡항비파(曲項琵琶)와 오현비파(五絃琵琶) 등이 인도에서 수입되었다.


필률의 애간장을 끊는 듯한 애잔한 소리는 1984년 방송된 일본 NHK의 다큐멘터리 [실크로드]의 음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일본의 키보드 연주자 겸 작곡가 키타로(喜多郎)가 맡은 [실크로드]의 테마음악은 1부 중국, 2부 돈황, 3부 사막, 4부 인도로 나누어진 총 4개의 앨범으로 구성되어있으며 대표곡으로 'Caravansary'와 '실크로드 메인테마'가 있다.


1998년 발족된 세계적인 첼리스트 요요마의 ‘실크로드 프로젝트’는 전 세계의 작곡가와 편곡자들로부터 약 70개의 새로운 음악적, 멀티미디어 업무의 중계자나 연주자 역할을 하면서 새로운 음악을 발굴하는 전 세계적인 비영리 문화, 교육적 기관으로, 동서양의 악기와 스타일을 결합하여 ‘요요마 & 실크로드 앙상블’ 연주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인 작곡가로 김동원, 김지영, 강준일이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 하지만 예술은 시대를 넘어 살아움직이며 감동을 준다.

김용의 타계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올랐던 ‘소오강호’의 아름다운 선율을 다시한번 기억하며, 노장의 죽음에 영면하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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