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고 아름다운 겨울나라의 눈
왜 이렇게 심장이 뛰는지 모르겠다. 너를 생각하면 내 심장이 자동으로 반응을 하는 것같다. 네가 있는 쪽으로 네가 가버린 그 방향을 난 아직도 바라보고 있다. 네가 다시 돌아온다면 난 새벽두시부터 널 기다릴테다. 숨을 쉴때마다 행복할테다. 창밖을 스치는 가는 바람 소리에도 네 움직임을 느낄테고 사거리 그 카페 그 자리에 미동도 없이 앉아 네가 걸어오는 발걸음을 듣고 있을테다.
하루에 스무잔의 커피를 마시고 스무잔만큼의 눈물을 흘리고 스무날동안을 뜬 눈으로 새운다.
내 한숨이 조각 조각 심장처럼 바스라져 내린다. 첫 눈이다.
눈은 소리 없이 내린다. 통, 통, 통 처마자락을 튕기며 때로는 우박 같은 소리로 밤잠을 깨우는 빗소리와 달리 눈은 무게를 더할수록 더 고요히 쌓인다. 마치 보이지 않는 요정들이 함박바구니를 흔드는 것처럼 커다란 눈송이들이 하늘에서 일제히 떨어지는 모습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름답다.
함박눈 내리는 날이 따뜻한 이유
속담에 “함박눈이 내리면 따뜻하고 가루눈이 내리면 추워질 징조”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눈의 상태를 보고 날씨를 예측하는 것으로서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말이다.
함박눈은 온도가 비교적 높은 온대지방에서나 상층의 온도가 그다지 낮지 않은 곳에서 내리는 습기가 많은 눈인 반면에, 가루눈은 기온이 낮은 한대지방이나 상층으로부터 지표면 부근까지의 기온이 매우 낮은 곳에서 눈의 결정이 서로 부딪쳐도 달라붙지 않고 그대로 내리기 때문에 형성되는 건성(乾性)의 눈이다.
이처럼 눈은 상층대기의 온도분포에 따라 그 성질이 달라지기 때문에 온도가 낮을 때는 가루눈이 내리고 온도가 높을 때는 함박눈이 내리게 된다. 따라서, 떡가루와 같이 고운 싸락눈이 내리면 상층으로부터 한기가 가라앉기 때문에 추워질 징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눈의 종류에는 상공 1.5km의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따뜻한 공기에서 만들어진 ‘함박눈(Snow Flake)’이 있다. 함박눈은 여러 개의 눈 결정이 달라붙어 눈송이를 형성하여 내리는 눈으로, 습기가 많은 눈으로 결정의 모양은 육각형이다.
함박눈보다 기온이 추울때 내리는 눈이 ‘싸락눈(Snow Pellets)’이다. 백색의 불투명한 얼음알갱이들이 상공 1.5km의 기온이 영하 20도 이하의 찬 공기에서 만들어지며, 결정은 기둥모양이다.
뭉쳐지지 않는 눈에 ‘가루눈(Powder Snow)’이 있다. 함박눈에 비하여 미세한 눈 조각의 상태로 내리는 눈이다. 습도와 기온이 낮고 바람이 강할 때 만들어진다.
내리는 눈이 녹아서 비와 섞여 내리는 것을 ‘진눈깨비(Sleet)’라고 하며, 땅에 쌓여 있는 눈이 강한 바람에 날려 불리는 눈을 ‘날린 눈(Blowing Snow)’이라 부른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눈 결정 모양은 눈송이 하나에 6개의 가지가 달려 있는 육각형 모양이지만 실제로는 바늘 모양, 기둥 모양, 장구 모양, 둥근 모양, 불규칙한 입체 모양 등 다양하다. 마치 사람의 지문이 모두 다른 것처럼 똑같은 종류의 눈이라도 눈이 만들어 내는 결정은 모두 제각각이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별 모양의 눈 결정은 상공 1.5㎞의 기온이 영하 10~20도 사이일 때 만들어진다. 이보다 낮은 기온일 때는 기둥형태나 판상형 결정이 만들어지고 영하 10도보다 높을 때는 바늘이나 육각기둥 모양의 결정이 만들어지게 된다.
눈의 아름다움에 매료당한 작가들
눈 내리는 겨울의 풍경을 가장 아름답게 묘사한 것으로 꼽히는 소설 ‘설국(雪國)’은 196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대표작으로 근대 일본 서정 소설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섬세한 필치를 통해서 소설의 서막부터 그려지는 환상적인 리얼리즘은 문필적 아름다움의 극치이다.
기차의 유리창에 비치는 여인의 모습과 바깥 저녁 경치의 묘사가 어우러져 ‘그녀의 얼굴에 불이 켜졌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바깥 경치 속의 등불이 마치 여인의 얼굴에 흐르듯 지나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 여자의 눈이 황혼의 물결 속에 떠오른 요염하도록 아름다운 ‘야광충’ 같다고 그려낸다. 함박눈이 내려 쌓인 시골역사의 하얀 겨울밤과 기차창문에 비친 여인의 얼굴을 이토록 섬세하게 표현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은 눈과 여자라는 아름다움의 정점을 가장 극적으로 표현해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눈 내리는 홋카이도를 대표하는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의 영화 ‘철도원(1999)’은 제117회 나오키상 수상작인 아사다 지로(淺田次郞)의 단편소설 ‘철도원(鐵道員)’이 원작이다. 1951년 12월 13일 도쿄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아사다 지로는 다단계 판매와 패션 부티크 경영 등 다채로운 직업을 전전하다가 '몰락한 명문가의 아이가 소설가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글을 읽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36세 때인 1991년에 ‘빼앗기고 참는가(とられてたまるか!)’로 데뷔하여, 1995년 장편소설 ‘지하철을 타고(地下鐵にのって)’로 제16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하고, 1997년 첫 단편소설집 ‘철도원’으로 나오키상을 수상하였다.
영화 ‘철도원’은 설원 지역인 일본 북부 홋카이도의 작은 역사(驛舍)를 배경으로, 아내와 딸을 잃고 혼자 살아가는 지방선 철도원의 일에 대한 사랑과 삶의 회한을 그린 작품으로, 설원의 아름다운 풍경과 류이치 사카모토의 아름다운 영화음악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애절한 영상미를 보여준다.
일본 감독 이와이 슌지의 첫 번째 장편영화이며 감독이 직접 연재했던 소설을 작품화한 ‘러브레터(Love Letter. 1999)’는 한 여성이 죽은 약혼자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여성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죽은 약혼자의 어린 시절 첫사랑의 비밀을 알게 된다는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첫사랑의 기억을 그린 이야기다.
영화 ‘러브레터’는 해방 이후 최초로 한국에서 정식 극장 개봉한 첫 번째 일본영화로 기록되었으며, 일본 여배우 나카야마 미호가 주인공 와타나베 히로코와 약혼자의 첫사랑 이츠키를 1인2역으로 맡아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영화음악은 이와이 슌지 감독과 여러 차례 작업을 함께했던 ‘레미디오스(Remidios)’가 담당했다. 테마곡인 ‘A Winter Story’는 잔잔한 피아노곡으로 영화의 슬픔과 아름다운 정서를 가득 담아낸다.
사람들은 겨울이 되면 눈을 기다린다. 하얀 벨벳에 휘감긴 마법 같은 세상. 그 고요하고 풍성한 아름다움에 모두들 매료당한다.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헤치며 언젠가 아주 오래전에 걸었던 그 길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누구는 누구를 미워한다고 세상은 계속해서 떠들어대도 외로운 마음과 상냥한 눈물이 모여 오늘 밤 첫 눈이 내려’안녕바다가 부른 ‘첫 눈’의 가사처럼, 이 겨울에 내리는 눈은 외로운 사람들의 마음을 덮어주었으면 좋겠다.
상냥한 눈물이 모여 아픈 사람들을 위로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당신도 나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오늘 밤은 그런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