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9시의커피] 외로운 이들에게 드립니다, ‘베토벤 넘버’
한 콩, 두 콩, 세 콩,……
커피콩을 세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때문이다. 손님이 코로나19 이전보다 뚝 떨어졌다. 카페를 찾아도 카페 안에 머물지 않는다. 테이크아웃만 받고선 나간다.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일상을 잠식했다. 바이러스가 모든 것을 삼켰다. 카페 문을 열고 인사를 건네고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던 일상은 저세상 것이 되었다. 대다수 사람이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대수롭지 않던 일상이 이렇게 중요한 것인지 몰랐다고 말한다. 전쟁의 반대말이 일상이라고 했던가. 우리는 지금 코로나19와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기 위해 분투 중이다.
그나마 단골손님들이 <밤9시의커피>의 온기를 지탱한다. 그동안 쌓아온 신뢰 덕분이다. 방역도 철저히 하고 있다. 어제는 한 단골이 카페를 찾아와 후리지아 한 다발을 건넸다. 그리고 한 마디 툭 던진다.
“아저씨, 봄이 왔는데, 봄 같지 않아서, 일부러 봄을 모시고 왔어요.”
눈물이 핑 돌았다. 후리지아 향이 진해서, 후리지아 빛깔이 찬란해서, 후리지아가 봄을 온몸으로 내뿜고 있어서. 고마워서, 단골을 와락 안았다, 고 하면 코로나 시대에 위험한 처사고. 엄지 척, 고마움을 표했다. 그에게 커피 한 잔을 건넸다. 진짜 봄이 내 가슴에 사르르 번진 기분이었다. 이 엄혹한 시절에도 꽃은 피고, 계절은 흐른다. 눈이 녹으면 물이 되기도 하고, 봄이 되기도 한다. 눈이 녹았다고 생각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봄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후리지아가 계절을 이끌고 왔다.
후리지아 덕분이다. 오늘은 그 봄에 맞는 음악을 틀고 있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제5번. 즉 「봄」이라는 호칭으로 더 유명한 선율이다. 후리지아가 <밤9시의커피> 구석구석까지 봄 내음을 피우고 있다면, 베토벤(의 음악)이 봄 선율을 곳곳에 색칠하고 있다. 어두운 소나타가 많은 베토벤에게 드물게 밝은 곡이다. 앞선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 베토벤만의 인장이 드러났다. 베토벤 자신은 붙이진 않았으나 ‘스프링 소나타’로 불릴 만큼 생동감과 자유분방함이 넘친다. 론도(rondo·음악의 병렬형식)가 명랑함을 더한다.
스프링 소나타는 아이러니를 품고 있다. 베토벤이 청력을 잃기 시작한 시기에 태어났다. 절망이 덮칠 때, 희망의 선율을 선보인 셈이다. 베토벤은 그렇게 스스로 위안을 하고자 함이었을까. 맨 처음, 베토벤이라는 이름 없이 스프링 소나타를 들었다. 작곡가가 베토벤일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1악장이 문을 열자 봄이 내 안으로 들어와 번지는 기분이었다. 그만큼 달콤하고 따뜻했다. 베토벤의 곡이라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랐었다. 아니, 베토벤이 정말 이런 곡을?
더 놀라운 것은 이 곡을 만든 시기였다. 귓병으로 자살을 생각했었던 그가 그 고비를 넘긴 뒤 이 밝은 소나타를 만들었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가 봄을 부제로 달지 않았다. 후대 사람이 이 소나타가 전하는 느낌을 봄의 소리에 빗대 그렇게 호명했다.
이 곡을 듣자면 무거운 느낌이 없어서 좋다. 코로나19로 처진 마음을 일으켜 세우기에 딱 좋다. 움츠렸던 몸을 펴고 귀를 쫑긋 세워 봄을 담아보는 게 어떻겠니? 라고 말을 건네는 느낌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집콕’한다면 <밤9시의커피>는 이 곡을 추천하고 싶다. 베토벤에 대한 어둡고 무거운 선입견을 잊어도 좋을 곡이다. 생명력과 생동감이 스멀스멀 배어 나온다. 베토벤의 운명이나 전원과 다른 베토벤의 또 다른 면모는 부록이다.
그런데 지금,
커피콩을 세는 것은 따지고 보면 베토벤 때문이다. 뭣 때문이냐고? 그 이야기를 풀어보자.
어쩌자고 베토벤을 틀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도 운명이리라. 루트비히 판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12.17.~1827.03.26.). 그의 아침을 따라가 보자.
기지개를 켜고 일어난 아침. 슬슬 몸을 움직여 침대에서 나온다. 전날 작곡을 하다가 버려진 오선지들이 꾸깃꾸깃 널브러진 바닥을 지나 식탁에 가서 앉는다. 그리곤 통 하나를 연다. 원두가 담긴 통이다. 식탁에 원두를 쏟아낸다. 물을 끓이고선 원두를 하나둘 센다. 육십 알이 될 때까지. 그리고 한 번 더 센다. 육십 개 원두가 맞는지. 검수한 결과 육십 알을 확인하고 끓인 물을 갖고 온다. 육십 알을 갈고 천에 그 갈아놓은 원두를 담고 천천히 물을 내렸다. 똑똑똑 떨어지는 커피는 아침에 생명에게 공급하는 피 같았다. 마치 기름이 있어야 돌아가는 기계처럼 커피가 있어야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듯. 커피 향이 온 사방으로 퍼졌다. 흐뭇한 미소가 돌았다.
베토벤의 아침은 커피와 함께였다. 흥미로운 건 정확히 원두 육십 알을 세고 그 육십 콩으로 내린 커피를 마셨다. 검수는 기본이었다. 한 콩, 두 콩, 세 콩, 육십 콩이 맞는지 거듭 확인해야 직성이 풀렸다. 그는 그렇게 갈고 내린 커피로 하루를 시작했다. 육십 콩을 세는 것은 강박에 가까운 행동이지만 명백하게 리추얼(ritual)이다. 늘 규칙적으로 행하는 의식과 같은 일을 하면서 그는 하루를 작곡할 수 있지 않았을까.
커피에서 ‘60’이라는 숫자는 그래서, ‘베토벤 넘버’(Beethoven number)라고 불린다.
원두 육십 알은 대략 10g이다. 커피 입문자에게 대개 처음 알려주는 커피양이다. 드립 커피 한 잔을 내릴 때 10g 정도에서 시작한다. 물은 120㎖ 안팎이다. 이후 자기 취향 등을 찾아가면서 더 많은 커피양을 추가하기도 한다. <밤9시의커피>는 20~30g을 사용한다. 진하게 마시는지, 연하게 마시는지 등 커피 취향을 묻고 따른다. 베토벤이 작곡한 스프링 소나타가 흘러나오니 문득 그의 커피까지 궁금증이 뻗쳤다. 손님이 없는 까닭이겠지만 ‘베토벤 넘버’의 시간과 향미를 맛보고 싶었다.
종교의식처럼 한 알 한 알 세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귀가 점점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원두를 세는 자신을 어떻게 여겼을까?
오늘 커피는 어떤 맛이 날까, 궁금하기도 했을 테고, 어제 제대로 그리지 못한 오선지를 머릿속에서 선율을 재조합하기도 했을 것이다. 오늘 해야 할 작업과 일과 등을 체크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많은 생각이 오갔거나 아니면 아예 머릿속을 비웠을 수도 있다. 원두 육십 알을 세는 데 필요한 시간은 아마 1분 남짓한 시간. 검수하는데 다시 1분을 썼다고 치면 총 2분에 커피 내리는 시간 3분을 더하면 5분여의 시간.
그 시간, 베토벤은 어떤 감정으로 아침을 채웠을까?
종이 필터가 없던 시절이니, 천에 갈아놓은 원두를 놓고 드립을 내렸을 것이다. 나는 원두 육십 알을 세고 또 세어서 갈았다. 봄에 어울리는 상큼한 블렌딩을 한 커피인 만큼 봄내음이 확 피어났다. 종이가 아닌 융드립으로 이를 내렸다. 나는 내가 베토벤이라도 된 양 머리도 막 헝클어뜨리고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커피를 세고 갈고 내릴 때만큼은 집중했다. 5분여 시간, 나는 베토벤을 생각했다. 영감이 마구 떠올랐다. 커피와 바로 연관된 작곡은 아니지만, 커피가 깨운 이성이 나를 작곡으로 이끌었다.
후리지아가 베토벤의 스프링 소나타로, 이어서 베토벤 넘버로 넘어갔다. 마침내 나는 베토벤으로 빙의까지 했다.
외로움이 확 밀려왔다. 그렇다. 베토벤은 철저하게 외로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원했던 외로움이 아니었다. 음악밖에 모르는데, 청력을 잃어간다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지만 그것을 누가 또 제대로 알아주겠는가. 그렇다고 동정은 싫었다. 그 외로움은 오롯이 혼자만의 몫이었다. 너무 가혹하고 처절한 슬픔이었다. 그 슬픔을 누구와 나눌 수도 없었다. 그는 외롭고 외롭고 또 외로웠다.
베토벤은 서른두 살, 1802년 오스트리아 빈 교외 마을인 하일리겐슈타트에 요양 중이었다. 외로움과 슬픔, 그리고 죽음이라는 공포와 불안에 잠식당하던 날이었다. 건강도 극도로 악화됐다. 문득 아우인 칼과 요한에게 글을 썼다. 유서였다. 이유는 모른다. 병 때문에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여겨 미리 유서를 썼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을 염두에 두고 작성했다는 설이 있다. 유서는 귀가 들리지 않는 슬픔, 자신 안으로 움츠러들어 혼자 살아갈 수밖에 없는 외로움을 절절하고 토로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끈을 놓지 않는다. 예술이라는 끈을. “나를 삶으로 다시 불러들인 것은 오직 나의 예술뿐이었다.”
여하튼 유서 이후 그는 25년을 더 살았다. 슬픔과 절망, 외로움은 늘 그와 함께였다. 물론 커피도 함께였다. 그가 특히 견디기 힘들었던 건 주변의 손가락질이었다. 남달랐던 그에게 괴팍하고 무례하다며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는 자신을 찾아오는 손님에게 커피만큼은 제대로 대접했다. 원두 세는 것은 여전했다. 손님 수만큼 셌다. 120개, 180개 등 일일이 세어 커피를 내렸다. 쉽지 않은 대접이었다. 당시 커피는 손쉽게 구하는 음료가 아니었다.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가난했던 베토벤에게 커피 대접은 그만큼 고맙다는 의미도 품고 있었다.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지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한다. 자영업자이니 당장 급한 불부터 꺼야 한다. 다행이라면 건물 임대인이 6개월 임대료를 깎아준다고 하니 한숨은 돌렸다. <밤9시의커피>는 바이러스 때문에 더 외로운 사람과 함께하기로 했다. 우리 마을 방역 최전선에서 땀 흘리는 의료진과 공무원, 불안 때문에 얼어붙어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누군가 손길이 그리운 이들에 커피를 돌리기로 했다.
원두 60알씩 세어 커피를 만들었다. 올해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고 3월 26일은 베토벤 기일(193주기)이다. 커피 이름은 그래서 ‘베토벤 넘버’다. 베토벤이 만든 순간들로 함께 봄을 맞이하면 좋겠다. 우리는 서로 연결된 존재임을 새삼 확인하고 있다. 바이러스가 우리의 봄을 지울 순 없다.
우리는 일상을 되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우리는 새로운 전환의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그러해야 하듯이.
(* 커피문예계간지 <카페인>에 기고했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