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9시의커피] 나의 커피로드① 코로나때문에 갈 수 없는 세계를 떠올리며
“탐사가 진행될수록
사물들에 대한 더욱더 많은 새로운 사실들이 인간의 마음과 정신을 꽉 채울 것이다.”
_ 《바이오필리아》, 에드워드 O. 윌슨
여름. 가수 장혜진은 이렇게 묘사했다.
여름 간지러운 감정의 속삭임
이마에 맺힌 그리움 모두
그대가 주는 새로움 _ 노래 <너라는 계절은> 중에서
하지만 올여름은 다르다. ‘코로나와 함께’하는 여름. 코로나19 때문에 갈 수 없는 세계가 너무 많아졌다. <밤9시의커피>도 계획이 어긋났다. 커피가 익어가는 계절, 커피 농민과 산지를 만날 요량이었다. 하는 수 없었다. 갈 수 없는 세계 대신 그해 여름을 떠올리는 수밖에 없었다. 후지와라 신야를 떠올렸다. 그리고 뚜벅뚜벅 걸었던 커피로드를 기억했다. <밤9시의커피> 구석구석 자리한 사진이 그때를 말해주고 있었다. 《인도방랑》의 스물여섯일곱의 신야가 내게 말을 건네고 있었던 그때, 그의 방랑이 나를 붙잡았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청춘이었고, 방랑객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이런 말 때문이었다.
"나는 걸었다. 만나는 사람들은 슬프도록 못나고 어리석었다. 만나는 사람들은 비참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우스꽝스러웠다. 만나는 사람들은 경쾌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화려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고귀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거칠었다.
세계는 좋았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여행’은 무언의 바이블이었다. ‘자연’은 도덕이었다. ‘침묵’은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침묵에서 나온 ‘말’이 나를 사로잡았다. 좋게도 나쁘게도, 모든 것은 좋았다. 나는 모든 것을 관찰했다. ‘실實’을 ‘베꼈다’. 그리고 내 몸에 그것을 옮겨 적어보았다."
그때, 나는 그의 방랑을 따라잡을 순 없었지만, 확인할 수는 있었다. 인도가 아닌 동티모르에서였다. 로뚜뚜 마을의 커피를, 커피 농민들을 찾아 나섰던 여정에서, 나는 그것을 확인했다. 나와 그들, 우리는 연결돼 있음을, 세상은 무수한 점들의 생명과 노동으로 이뤄져 있음을, 그만큼 좋게도 나쁘게도, 내가 발 디딘 곳은 좋았다. 로뚜뚜 마을의 별빛이 나를 감쌀 때, 나는 내 몸에 그것을 박았고, 감사했다.
동티모르 사람들이 사는 나라
그해 여름, 커피 산지를 찾았다. 내가 다루는 커피의 근원을 만나고 싶었다. 바람, 안개, 공기, 땅, 그리고 농민. 글과 사진, 관념으로 알고 있던 그곳을 찾아 떠났었다. 인도네시아 발리를 거쳐 동티모르로 향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직항이 없었기 때문이다. 발리 덴파사 공항에서 2시간여 남짓한 거리. 하지만 그 2시간을 더 날 수 있는 정치적·경제적 힘은 없었다. 항공 노선은 지독하게도 현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티모르 공화국에 착지했다. 동티모르 언어인 테툼어로 ‘티모르 로로사에’(Timor Lorosa'e)라고 부르는 이곳. 남지나 해와 인도양 사이 티모르섬의 동부와 티모르섬의 서부 일부만을 동티모르로 일컫는다. 티모르섬은 호주와 인도네시아가 통치하는 여러 섬에 둘러싸여 있다. 지리적으로는 오세아니아에 속하지만, 정치·경제·문화적으로는 아시아 일부로 본다.
이런 지형 여건은 식민 역사와도 깊은 연관을 맺는다. 1520년부터 400년 이상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다. 독립은 멀고도 험했다. 독립 선언을 했지만 인도네시아 무력침공을 받았고 20년 이상 인도네시아에 강제 편입됐다. 2002년 5월 20일, 독립을 이뤘고 21세기 첫 독립국이 됐다. 박희순, 고창석이 주연한 영화 <맨발의 꿈> 배경이 동티모르다.
발리에서 동티모르로 가는 여정, 쉬이 길을 내주진 않았다. 만만디 습성이라고 할까. 발리와 동티모르를 오가는 하루 한 편 비행기는 연착은 대수, 기다림은 필수였다. ‘메르파티’(Merpati, 비둘기)라는 이름의 비행기는 우리의 사라진 기차 ‘비둘기호’를 연상케 할 정도로 낡았다. 비행기 안에서 바퀴벌레를 만나는 흥미로운 일도 겪었지만, 나는 비둘기 꼬리를 잡고 동티모르로 향했다.
마침내 첫발을 디딘 동티모르 사람이 사는 나라, 동티모르 커피가 자라고 있는 땅.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이방인의 눈에 오랜 식민지배와 내전을 거친 동티모르는 가난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한편으로 사람들의 눈빛과 자연은 가난만이 전부가 아님을 말하고 있었다.
소설가 유재현의 쿠바 기행문 《느린 희망》을 보면, 쿠바인들의 수도 아바나에 발을 디디기 직전, 인상적인 표지판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 표지판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쿠바인들의 수도에 오셨습니다.”
쿠바의 수도가 아닌 쿠바인들의 수도다. ‘人’이라는 말 하나만 덧붙였는데, 느낌이 확 다르다. 국가가 아닌 사람을 앞세우는 발상이라니, 놀랍고 재밌다. 체 게바라가 쿠바 사람들과 함께 이룩한 쿠바 혁명의 영향이 아닐까, 나는 진단했었다. 그 뒤, 어느 공항이든 갈라치면 표지판을 본다. 아직 사람을 앞세우는 표지판을 보진 못했다. 어설프게라도 <밤9시의커피>에선 ‘OO지역 사람들이 만든 커피’라고 알려주면서 자족하는 정도랄까.
물론 동티모르라고 다르진 않다. 땅에 발을 딛자, 가장 먼저 반기는 말은 ‘WELCOME TO TIMOR-LESTE’다. 동티모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래도 저 말이 반가웠다. 내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알려주니까. 아직 그때 그 하늘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하늘은 맑았고, 구름은 복스러웠다. 처음 보는 하늘이자 빛깔이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처음 발 디딘 땅에서 바라본 하늘이었으니까. 키 작은 하늘이어도 좋았다.
동티모르 공항에서 만난 어떤 슬픔
동티모르 사람들의 수도에 있는 딜리 공항은 작고 소박했다. 내가 사는 나라의 것과 비교하는 건 아니지만, 시골에 자리한 터미널 수준이었다. 낯섦과 설렘이 뒤엉켰다. 숨을 한 번 들이키고, 동티모르를 느껴본다. 확연히 다른 공기가 목구멍을 넘어간다. 그렇다고 커피 냄새가 날리는 없었지만 말이다. 우리와 다르지 않지만, 피부가 약간 더 검은 사람들이 공항을 메우고 있다. 그들이 우리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아이들의 시선은 달랐다. 경제적으로 가난한 나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 펼쳐졌다.
애처로움을 품은 눈으로 여행객에게 다가서는 아이들이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십수 년 전, 인도에 첫발을 디딜 때, 밤이었는데 나는 무척 당황했었다. 기브 미 원 달러. 몇 명의 아이들이 나를 에워싸고 하나같이 외쳤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야 좋을지 머리가 텅 비어버린 인도의 첫 밤이었다.
알다시피, 그 아이들은 너무 일찍 어른이 된다. 원하는 바도 아니다. 어른이 이 아이들을 이용해 먹는다. 아이들은 살기 위해 생존 본능을 발동한다. 공항을 나오는 사람들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동정을 살 수 있는지, 곧 알아차린다. 아이가 아이로 자랄 수 없는 환경은 아이를 어른이 되게 만든다. 초롱초롱한 아이의 눈에서 고단하고 애처로운 삶의 이면을 엿봐야 하는 슬픔이 다가왔다. 동티모르 사람을 처음 만나고 접한 감정이었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그랬던가. "유머는 기쁨이 아니라 언제나 슬픔에서 나온다. 따라서 천국에는 유머가 없다." 첫걸음을 떼자마자, 동티모르는 천국이 아님을 확인한 셈인가. 삶은 때때로, 느닷없이, 병적인 유머센스를 발휘한다는 말을 실감한다. 어느 삶이든, 그 근간에는 슬픔이 도사리고 있다.
딜리 공항에서 우리의 도착을 기다리던 일행을 만났다. 첫 기착지인 마우베시로 향했다. 험한 길을 달려야 하는 여정이었다. 차창을 통해서도 가난이 덕지덕지 묻은 풍경이 지나갔다. 여느 동남아시아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사람들의 모습 또한 엇비슷해 보였다. 오세아니아에 속한다지만, 그 모습은 영락없이 동남아시아인이었다. 물론, 당시 나의 차별적인 시선이었다. 분명 동티모르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들었다면 불쾌했을 것이다. 다른 나라 사람이 한국, 일본, 중국 사람을 구분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구분할 수 있는 것처럼. 제각기 다른 문화와 생각을 갖고 사는 이들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 멋대로 재단한 셈이었다.
나는 발걸음을 디뎠고, 세계는 좋았다
도로포장 상태는 시원찮았다. 바깥 풍경은, 만만디 그 자체였다. 덥고 경제적으로 가난한 나라의 여유로움 혹은 나른함이 도시를 휘감고 있었다. 느릿했고, 무심한 듯 흘러가고 있었다. 곳곳에서 노점상이 진을 치고 있었고 허름한 상점들도 도열해 있었다. 집도 대충 지은 듯 허술해 보였다. 이런 시각은 지나치게 깔끔하고 정결하게 구획된 자본의 질서에 익숙해진 탓이었을 것이다.
먼지 풀풀 날리는 도로를 달리는 차에서 나는 하나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듯 밖을 바라보았다. 나와 동티모르는, 동티모르 사람들은 어떤 우연으로 이렇게 마주한 것일까. 어떤 우연한 일이 닥칠까, 궁금하고 설렜다. 테튬어라는 언어를 사용하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최하위권인 나라의 사람들. 오랜 식민의 기억과 독립의 짜릿함도 잠시, 그들은 어쨌든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는 구체적인 존재들이었다. 이방인의 편협한 관점으로 그들을 재단하려는 사고를 막아야 했다. 나는 이것만은 세상 누구나 똑같으리라 믿는다.
'하루를 잘 살아내는 일이 가장 어렵고 중요하다는, 변치 않을 사실.'
우리 모두는 똑같은 하루를 보내고 맞이하고 있다. 나는 의도적으로 동티모르 사람들의 삶에 틈입한 이방인이고 동티모르 사람은 자신의 삶에 이방인을 맞이했지만, 따지고 보면 서로 우연한 일들에 휘말린 동지일 뿐이다. ‘커피’라는 필터를 통해 우리는 우연하게 만나게 된 셈이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나도 그렇다. 커피가 우리를 만나게 해 준 셈이었다.
차는 계속 바퀴를 굴리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커피가 자라는 곳을 향해서. 문득 차 안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동티모르에서 머문다면 어떨까? 동티모르에 온 사람들을 환영하는 인사말을 건넨다면 어떤 말을 건넬까?
상상 속에서, 어느새 동티모르에 정박한 사람이 된 나는, 동티모르에 온 사람을 위해 커피를 내렸다.
그리고 그에게 동티모르 커피 한 잔을 주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여러분이 마시는 동티모르 커피가 자라는 나라에 오셨습니다.”
‘커피’라는 말에는 모든 것이 들어있었다. 땅, 햇빛, 구름, 비, 안개 등과 같은 자연 그리고 사람들. 한잔의 커피는 그렇게 사물과 동물의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우연처럼 휘말리고 결합한 관계의 결정체였다. 그 관계는, 다시 “우리, 커피 한잔 하자”는 말로 흘러나온다. 관계는 관계를 낳고 있다.
여기는 동티모르. 나는 걸었고, 세계는 좋았다.
커피문예계간지 <카페인> 기고문
<창백한 푸른 점 위에 커피로 연결된 우리 : 나의 커피로드② 풍경은 나를 축복했다!> https://brunch.co.kr/@jonathanfeel/105나의 커피로드② 풍경은 나를 축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