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9시의커피] 1월 4일, 카뮈를 그리며 커피 한 잔
카페인은 사람들을 절망으로 유도하지.
화나게 만들어. 심장박동을 빠르게 하지.
_ 영화 <커피와 담배> 중에서
전보가 그렇게 왔다. '내 탓은 아니'지만, 가지 않을 수 있나. 사장은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지만, 휴가를 내고 버스를 탄다. 피곤했을까. 계속 잠을 잔다. 도착해선 엄마의 시신도 보지 않는다. 눈물? 글쎄, 눈물샘이 마른 건가. 엄마의 주검이 담긴 관. 경비가 커피를 권한다. 홀짝. 커피엔 역시나 담배. 그래도 엄마 시신 앞인데... 잠깐 망설인다. 그렇다고 꺼릴 이유도 분명하지 않다. 담배 한 모금. 후~ 커피가 담배를 부른 것인지, 담배 피우기 앞서 커피를 애피타이저로 마신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맞다. 뫼르소다. <이방인>.
커피, 태양, 담배, 바다, 정사... 그리고 숱하게 명명된, 어쩌면 누군가에겐 지겨울 법한 부조리. <이방인>을 떠올리자면, 그렇다. 태양이 너무 강렬해서 살인을 저질렀다는, (문학) 역사상 가장 병맛(!)스러운 살인의 이유를 들이댄 뫼르소. 다양한 병맛 짓으로 그야말로 인생사 병맛을 실감케 한 재능은, 온전히 그에게서 나왔다.
그렇다. 그, 알베르 카뮈.
그는 커피 한 잔과 함께(물론 담배도 곁들여서) <이방인>을, 뫼르소의 병맛 짓을 휘적거렸다. 파리 생제르맹 거리에 위치한 '레 되 마고·Les Deux Magots(2개의 도자기 인형)'와 '드 플로르·de Flore'에서였다. 생제르맹 교회 앞 광장에 위치한 카페들.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카뮈는.
담배를 뻑뻑 피워가며 커피의 힘을 빌어가며, 뫼르소를 탄생시켰다.
부조리의 탄생! 커피로 조리한 부조리?
물론, 이곳에는 카뮈와 한때 절친이었던 사르트르를 비롯하여 보부아르, 랭보, 베를렌, 알퐁스 도데, 앙드레 지드, 헤밍웨이, 피카소 등 내로라하는 문인·사상가·철학자·예술가 등이 즐겨 찾았다. 오죽하면 "카페 드 플로르로 가는 길은 자유에 이르는 길이었다. 드 플로르가 집이었다"(사르트르)는 얘기까지 나왔겠나. 지금은 관광객들이 호기심으로 머무는 장소가 됐다지만. 뭐, 그럼 또 어떤가.
카뮈는 반항 그 자체였다.
저 포스를 보라.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반항 아니면 죽음을.
그는 부조리에서 세 가지 귀결을 이끌어냈다. 반항, 자유, 열정.
사회주의자였던 그를 오해하는, 아니 그를 이용해 먹은 한국 기득권층의 아전인수, 방약무인도 있었다. 일종의 유언비어. 스탈린주의에 반대했던 그를, 반공주의자로 끼워 맞췄다. 한때 공산당원이었으나 전향했다며, 지들 입맛에 맞춰 카뮈를 이용했다. 카뮈는 말하자면 반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 반전체주의적 사회주의에 가까웠다(고 알고 있다). 폭력에 근간한 정복자의 모습을 한 절대주의적인 이데올로기에 대한 두드러기. 부조리에 반항하되, 반항의 기원을 잊지 말아라! 알제리 독립을 반대(?)했다는 입장에 대해선 해석이 물론 분분하지만.
커피가 카뮈를 꼬드겼다.
약간 과장하자면, 커피 없이 <이방인>이 나왔을까.
다른 판본으로 말하자면, 그의 지성과 글쓰기를 자극한 것은 커피였다(고 우겨본다). 그래서 지금 어느 커피하우스에서, 또 다른 카뮈가 담배 한 모금과 함께 커피의 힘을 빌어 지금의 부조리를 끄집어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참, 한국에는 카뮈가 없겠다. 카페 안 흡연이 금지돼 있으니. 커피와 담배의 탁월한 앙상블은 짐 자무시가 설파(영화 <커피와 담배>)한 바 있다. 자무시는 "최고의 아침 식사는 커피와 담배"라고 말했다지.
1959년 한 인터뷰에서 "내 나이 마흔다섯, 아직 놀랄 정도로 활력이 남아 있습니다"라고 자신만만하던 카뮈는 이듬해 초, 소설(<최초의 인간>) 원고를 품고 가다가 교통사고로 아듀. 마흔여섯, 요절이었다. 커피가 그를 죽인 것은 아니었다. "나는 가난 속에서 자유를 배웠다"라고 말한 이의 부조리한 죽음. 특히 카뮈는 평소 어린아이의 죽음보다 더 분노할 것이 없고,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보다 더 부조리한 것이 없다고 친구들에게 말하곤 했다는데 그 부조리에 당했다. 인생은 어쨌거나 아이러니하고 부조리하다는 것을 몸소 증명한 셈인가.
그런데 갑자기 왜 카뮈를 꺼내냐고?
새해가 열리면서 카뮈가 떠올랐다. 방 한 구석에 있던 일러스트 <이방인>도 다시 집어 들었다.
맞다. 1월 4일 카뮈 기일. <이방인>을 언급하기엔 나의 내공이 아직 얕고. 커피(카페)가 카뮈에게 어떤 영향을 줬을까, 혼자 떠올려봤다.
여전히 세계는,
내가 알고 품고 있는 것보다 두껍고 낯설다. 그렇다고 합리성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아니, 도대체 '합리적'이라는 것의 기준을 알 수가 없다. 우리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합리성을 언급하지만, 그 온도는 제각각이다.
카뮈에게도, 세상은 결코 합리적이지 않았다. 비합리가 지배했다. 그래서 이 세계는 합리적이지 않으며 이것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전부라고 꺼냈다. 부조리한 세계. 그렇다면 부조리의 반대는 조리? 아닐 것이다. 카뮈는 '반항'이라고 답했을 것이다. "부조리한 것은 바로 이 비합리와 명확함에 이르려는 필사적인 열망과의 맞대면인 것이다."(<시지프 신화>)
그럼에도 그는 부조리한 세계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말이 그것을 증명한다.
"인간에게는 경멸해야 할 것보다 찬양해야 할 것이 훨씬 더 많다." 그렇게 믿고 싶다. 환멸을 견디는 법. 어린 시절,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던 카뮈는 동네 축구를 하면서 주로 골키퍼를 맡았다고 한다.(실은 가난 때문이었다. 축구화 밑창이 가장 덜 닳을 수 있는 포지션이 골키퍼여서.) 그는 어른이 된 뒤 이렇게 회고했다. "골키퍼를 하면서 공이 기대하는 방향으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빙고. 삶도, 세상도 마찬가지 아닌가. 기대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법이 없다. 부조리한 세상에 반항해야 하는 이유를 1월 4일에 곱씹는다. '고진감래'의 옛 정의는 지금과 맞지 않다. 고생 끝에 낙 없다. 고생을 진탕 하면 감기몸살이 온다. 오늘, 커피 한 잔, 와인 한 잔 나누면서 카뮈를 이야기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