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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절대낭만 Jonathan Feel Apr 04. 2018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는 마을① : 봄

[서울혁신파크에서 보낸 6년] 봄의 왈츠 

다소 지났지만, 2012년부터 서식했던 서울혁신파크(서울 은평 녹번동 소재, 이하 혁신파크)를 떠났다.

그 안에서 몇몇 회사를 거쳤고, 많은 이들을 만났으며, 숱한 계절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또 햇빛, 바람, 비, 눈, 안개, 미세 공해 등을 비롯해 온갖 생명과 사물과 마주했다.  


한 사람을 바꿀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를 댈 수 있겠지만 나는 ‘만남’을 꼽겠다. 만남은 사소하지만 삶의 축적을 통해 벼락처럼 다가오는 기적이다. 우연과 운명이 빚어낸 결과다. 그래서 만남은 한 세계를 바꿔 놓을 수 있다. 서서히 혹은 급진적으로. 서울혁신파크는 그런 만남이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만남이 꼭 사람들만의 것으로 빚어지는 건 아니다. 다른 생명 혹은 사물과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만남은 어디에나 있고, 모든 만남이 매번 사람을 바꾸진 않는다.


그럼에도 혁신파크에 몸을 담았던 세월은 즐겁고 흥미로웠다. 

그곳에는 많은(별의별) 사람들이 있고(그래서 짜증 나고 본의 아니게 수양을 쌓기도 한다) 많은 공간과 움직임과 흐름이 있다.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묘한 에너지가 흐른다. 떠난 마당이라 일정 부분 미화가 따르겠지만, 내게 스며들었던 혁신파크를 계절별로 돌아본다. 물론 일정이나 약속이 있으면 언제든 찾아가는 곳이지만, 이젠 늘 내 발걸음이 머무는 장소가 아니니, 나는 이제 혁신파크라는 고향을 떠난 이방인이다. 고향이 '출생지뿐 아니라 내 삶을 지어 올린 곳까지 포함한'다는 넓은 의미에서. 


밥 딜런이 노래했었다.
"기상예보관이 바람이 부는 방향을 말해주지 못하네."
바람이 부는 방향을 그저 따라가는 사람살이, 기억할 만한 장소를 하나둘 품는 것, 좋은 일이다. 외롭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봄, 약동하다

봄, 나는 혁신파크의 정문 초입부터 압도당한다. 

그것은 생명의 약동이 빚어내는 아름다움 덕분이다. 도로를 오가는 차들이 내뿜는 무미한 열기와 명백하게 분리된다. 어떤 감각도 없고 정서 역시 없는 세계와의 결별. 무채색의 도로는 유채색의 길로 전환한다. 혁신파크에 들어서는 순간, 숨통이 틘다. 나무와 풀, 초록의 공간이 주는 안도감도 있지만, 꽃들의 향연이 눈길을 끈다.


나는 봄과 함께 속도를 늦춘다. 

정문 부근의 피아노숲과 감응하기 위해서다. 나무들의 속삭임뿐 아니라 생명이 약동하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그들은 나의 작은 탄성과 감탄을 먹고사는 것 같다. 어디 나뿐일까. 혁신파크의 봄은 이곳에 발 디디는 모두로부터 탄성과 감탄을 자아낼 것이다. 그리하여 수시로 나는 피아노숲을 들렀다. 아름다움을 외면할 방법이 없었으니까. 아름다움이 피톤치드처럼 흩날리니까.  


절정은 벚꽃이 피고 질 무렵이다. 
짧게 피었다 지고 마는 벚꽃만큼 혁신파크의 봄을 상징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겨울과 여름 사이, 봄은 짧고 찬란하다. 벚꽃의 향연도 지나치게 짧다. 그럼에도 나는 혁신파크의 봄을 벚꽃 없이 생각할 수 없다. 
쓸쓸하고 찬란한 벚꽃이 필 무렵, 내 사유는 벚꽃 아래를 맴돈다. 피아노숲의 벤치와 평상을 좋아하는 이유다. 그 순간만큼은 미세 공해(먼지)니 황사니 따위는 지워버려도 좋다. 피아노숲에는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 초속 5센티미터로 봄이 내린다.


이곳을 기점으로 혁신파크를 천천히 거닌다. 북한산을 바라본다. 봄이 내려왔음을 실감한다. 산책하기 좋은 계절, 조곤조곤 혼잣말을 꺼낸다.


그래, 넌 나의 봄이야.


그리고 가끔은 책을 만났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계절, 작은 도서관들에서 책향을 맡았다.(지금은 없어졌지만.) 책향이 더 짙게 그리울 때는 미래청 2층으로 향했었다. 작정하고 책을 읽기에 좋은 공간이었다. 여전히 나는 도서관이 혹은 책방이 혁신파크에 자리 잡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봄이 흐른다. 
짧아서 아쉽다. 
짧아서 찬란하다.

그리고, 지금 혁신파크에는 또 다른 봄이 찾아왔다. 
1단지가 문을 열었다. 이 봄, 서울혁신파크를 찾는다면 1단지에 발을 디뎌도 좋으리라. 봄은 그렇게 여러 형태로 찾아온다. 
http://s_innopark.blog.me/221240217729


특히, 지금 서울혁신파크 1단지 오픈 주간(4/3~4/6)이 활짝 피었다. 
http://s_innopark.blog.me/221232233657


올해는 못했지만 매년 봄마다,  

혼자 혹은 함께 했었던 '세계 여성의 날' 장미나눔도 잊을 수 없는, 나의 혁신파크 봄이었다.

http://s_innopark.blog.me/220971075150


평양에서도 들려온 '봄이 온다'는 선율이 혁신파크에도 울려 퍼진다. 

내 사랑하는 중정에도 목련이 봄처럼 터졌다.

그렇게 봄이 터지고 있다. 팡팡. 

아름답다. 


[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는 마을② : 여름 ]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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