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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절대낭만 Jonathan Feel Apr 06. 2018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는 마을② : 여름

[서울혁신파크에서 보낸 6년] 여름 이야기 

[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는 마을① : 봄 ]에서 이어집니다. 


여름, 익어가다


이렇게 서울혁신파크의 봄을 거닐다가 다다른 곳은 21동(우체국이 자리한 건물)의 중정(中庭)이다. 내 여름의 비밀스러운 아지트 같은 곳. 요즘 서울에서 쉬이 보기 힘든 중정을 혁신파크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복(福)이다.


건물 안이나 안채와 바깥 채 사이의 뜰을 말하는 중정은 용적률 빡빡한 서울에선 사치스러운 공간이 돼버렸다. 그러니 일상의 작은 사치가 필요할 때 혹은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 나는 커피 한잔을 들고 이곳을 찾았다.

매우 덥지도 않다. 늘 그늘이 만들어져 있다. 이 중정의 중앙에 떡~ 하니 자리 잡은 키 큰 목련 나무는 안정감을 준다. 나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거나 나무의 소리를 듣는 시간. 매미라고 빠지지 않는다. 생명의 소리가 있는 공간, 중정은 가끔 행사의 공간으로도 활용돼 음악 소리도 울려 퍼졌다.


혁신파크에서도 널리 활용되는 공간이 아니다 보니, 커플들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좋다. 나는 그곳에서 어느 예쁜 커플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비밀을 지켜준다. 커플에겐 반드시 비밀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지켜주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2017년 여름, 중정에서 '적당포럼'이 열렸던 날의 풍경

여름은 한편으로 매미의 계절이기도 하다. 그 매미의 노랫소리를 따라가다가, 멈추는 공간이 있다. 미래청 건물 뒤쪽. ‘흡연 구역’으로 불리는 곳이다. 나는 이곳을 '흡연 숲'이라고 불렀다. 이곳에는 혁신파크가 생기기 전부터 터줏대감으로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나무가 있다. 혁신파크에 서식하는 매미들의 오래된 터전.


그러면서 이곳은 만남의 장소다. 담배 한 모금을 피우다 보면 반가운 얼굴들을 숱하게 만난다.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다가 별의별 작당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작정하고 회의를 한다면 나오지 않을 이야기들이 스멀스멀 흘러나온다.


커피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자면 카페를 찾는다. 여름에는 모름지기 아이스커피. 그러다가 필요하면 또 누군가를 부른다. 클러스터 안에 함께 둥지를 틀고 있다는 건 그래서 좋은 것이다. 한 사무실에 있지 않아도 즉흥적으로 그렇게 만나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작당을 한다.


그리고 여름이면 반드시 찾곤 했던 물고기 가든. 물고기와 식물이 공생하는 작은 생태계에 나도 작은 관여를 했었다. 물고기 가든의 두 필지(?)를 할당받은 덕에 수경 재배를 했었다. 나의 작은 식물들에게 물을 주는 기쁨을 누렸다. 여름의 뜨거운 햇살에 죽지 않도록 돌봐줘야 하는 돌봄의 의무를 졌기 때문이었다.


물고기 똥으로도 식물이 살지만, 그 작은 식물들 덕분에 나도 살았다. 물론 수경 재배를 했던 나와 또 다른 농부들 덕분에 식물들도 살았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관계를 맺고 연결된 존재다. 그런 우리는 물고기 가든 앞에서 함께 식탁을 만들고 식사를 하기도 했다.

고기가 익고, 
여름도 그렇게 익어간다. 
내 삶도 뜨겁게 익어간다.

혁신파크에, 그 뜨거운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나는 이제 그 여름 안에 없지만, 
그 여름이 만들어준 나를 품고 살아간다.

혁신파크의 여름을 만나는 어느 날, 
나는 이 노래를 흥얼거릴지도 모르겠다.


여름날 햇빛 속에 옛 동네를 걸어가다 
건널목 앞에 있는 그녀를 보았지

조금은 변한듯한 모습 아쉽긴 했어도 
햇살에 찌푸린 얼굴은 아름다웠지

너의 손을 잡고 말하고 싶어도
소중한 기억 깨어질까 봐
그냥 다시 돌아서

잊어버렸던 첫사랑의 설레임과
떨려오는 기쁨에 다시 눈을 감으면

너는 다시 내 곁에 예쁜 추억으로
날아들어 내 어깨 위에 잠드네


무한궤도, 그리고 너무도 그리운 마왕 (신)해철 형아의 노래였다. <여름 이야기>. 참 좋아했던 노래다. 

https://youtu.be/6c32E_4hq6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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