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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절대낭만 Jonathan Feel Apr 09. 2018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는 마을③ : 가을

[서울혁신파크에서 보낸 6년] 가을날의 동화

[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는 마을① : 봄 ]

[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는 마을② : 여름 ]에서 이어집니다.


가을, 생각하다


(여름의) 뜨거움이 익은 자리, 사색과 사유가 덩그러니 남는다.


“왜 살지?” 
“어떻게 살아야 하지?”


답이 없는 질문을 거듭 던지게 만드는 계절이 가을이다. 맞다. 사업(비즈니스)은 주가 아니다. 삶이 먼저 있고 사업이 있는 것이다.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에 들어오고 사람이 됐는가?” 봄의 약동에 넋이 나가고 여름의 뜨거움에 녹아버린 마음은 찬바람이 불면서 정신을 차린다. 그러면 또 다른 공간을 필요로 한다.

가을이 오면, 나는 또 다른 공간을 찾는다. 봄과 여름이 땅의 기운을 흠뻑 들이켜는 기간이었다면 가을은 다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거나 위로 향한다. 전봇대집을 한번 둘러본다. 이곳이 자연스러운 ‘환대’의 공간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환대가 지닌 사회성 때문이다.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으로 들어가며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 환대는 자리를 내주는 행위이다.”<사람, 장소, 환대>(김현경 지음)


많은 사회문제의 해결 방법은 ‘환대’에서 찾을 수 있다. 환대는 쉽게 생각하면 낯선 이에게 따뜻한 자리와 음식을 내주는 것이다. “타자를 공동체로 초대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자크 데리다는 ‘절대적 환대’라는 개념을 꺼냈다. 신원을 묻지 않고, 보답을 바라지 않으며, 적대적 타자에게도 복수하지 않는 환대. 물론 데리다는 정작 이런 환대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전봇대집도 좋고, 맛동을 ‘환대의 식탁’으로 꾸몄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가졌었다. 환대가 넘치는 동네 식탁으로서 기능하는 맛동. 지역과 혁신파크가 함께 협동조합이나 마을기업으로 만들어 환대의 식탁을 꾸리면 어떨까 상상도 했었다.


우리가 말하는 공공성은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공공의 노력으로 실현된다. 우리를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존엄, 인권과 같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다. 매일매일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는 대접이 우리를 사람으로 만든다.


<장발장>이 그러했다. 뮈리엘 주교는 거지 꼴의 장발장에게 성당 문을 열어주고 먹을 것, 마실 것, 쉴 곳을 제공했다. 주교는 야밤에 갑자기 찾아든 장발장을 겁 없이 식탁에 앉히고 ‘우리의 특별한 손님’이라 불러준다. 환대받을 권리의 보편성이다. 장발장은 이 환대 이후 바뀌었다. 환대는 사람을 바꿀 힘을 갖고 있다.

이것을 생각한 것은 미래청 옥상이었다. 혁신파크 전경을 내려다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곳. 2층을 비롯해 5층과 6층의 옥상을 오가며, 나는 이것저것을 생각했다. 층계를 오르내리며 만나는 반가운 사람들. 그들을 따라 사무실도 구경했다. 혁신파크를 구성하며 만드는 그들의 둥지를 경험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그들은 혁신파크에 들어왔을 뿐이지만, 혁신파크를 꾸미고 문화를 그리고 아우라를 만드는 것은 바로 입주민들, 즉 마을 주민들이다.


옥상에서 바라본 목공동, 제작동 등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저 건물에서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저 건물이 갈라지면서 그 안에서 마징가Z, 짱가 등이 나오면 좋겠다. 한 번씩 그곳을 둘러보고 그 건물 주변의 공간도 함께 아우른다.

가을이다. 
역시 수확물을 거둬야 한다. 물고기가든에서 수확한 작물로 역시 우리만의 파티를 열었다. 그 맛,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가을이 여물고, 생도 여문다.


봄이 그러했듯 가을도 짧다. 
가을은 그렇게, 작정하고 붙잡지 않으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 같은 계절이다. 그런 계절, 소원 하나쯤 빚고 가을을 만끽하는 것. 우리가 가을에 가질 수 있는 행복이다. 돈 따위로 바꿀 수 없는 어떤 절대 행복.


가을이 여물고,
생각이 여물며,
생도 함께 여문다.
혁신파크의 가을은 그렇게 가을날의 동화가 여문다.

그리고 어느 가을, 
나는 뉴욕을 거닐면서 혁신파크와 서울(이라는 도시)을 떠올리며 글을 썼다. 가을이었으니까. 생각하기 좋은 계절이니까. https://s_innopark.blog.me/221097018683

(* 사진은 내가 찍은 것이 없어서 서울혁신파크 페이스북 등에서 업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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